[특집]기후변화협약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속내 _ 정익철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희비가 교차하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하나는 교토의정서에 대한 러시아 하원에서 대통령까지의 발 빠른 비준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부시 대통령 재선이다. 물론 ‘한 국가의 대통령 재선이 환경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다시 당선된 부시나 그 각료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보면 우리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상반된 정치상황을 살펴보고 이들의 결정이 향후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자.

기후변화협약 역사적인 첫걸음
지난 9월 30일 열린 러시아 각료회의에서 세계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위한 교토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승인한 뒤, 이 안을 러시아 하원(두마)에 제출하였다. 국가두마는 10월 22일 총회를 열어 찬성 334, 반대 73표의 압도적 지지로 비준안을 통과시켰고, 러시아 상원(연방회의) 역시 5일 후 10월 27일 전격적으로 교토의정서 비준안을 승인했다. 마침내 11월 5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교토의정서는 채택 7년만에 발효조건인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55퍼센트를 채움으로써 내년 초 역사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선진국들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6가지 주요 온실가스들을 1990년 배출 수준보다 5퍼센트 가량 더 감축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한편 러시아는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7.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비준을 함으로써, 교토의정서의 발효요건인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의 55퍼센트를 넘게 됐다. 교토의정서는 비준국가가 55개국 이상이고, 비준한 부속서 I 국가들의 온실가스가 1990년 기준 부속서 I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총량의 55퍼센트 이상이 된 후 90일 후에 발효되도록 규정한 바 있다. 그린피스 기후정책 자문 스티브 소이어는 러시아의 비준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기쁨을 표출했다. “오늘밤 보드카를 들고 두마를 위한 축배를 들자.”



러시아 비준의 속내막
그동안 러시아가 교토의정서 비준을 계속 미룬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교토의정서가 효력을 발생할 때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특히 대통령 경제보좌관인 안드레이 일라이오노프는 “러시아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경우 201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쿼터를 매입해야 하므로 10년 안에 국내총생산(GDP)을 2배로 증가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여 교토의정서의 비준이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가 연간 경제성장률 7.2퍼센트로 10년 안에 GDP를 두배로 늘릴 경우 온실가스 배출 쿼터는 2007년이나 2008년이면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크렘린의 경제학자들이 동참했고,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에너지장관을 비롯한 많은 러시아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작년 말까지 푸틴 정부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 국내 정치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2003년 말 실시된 국회의원선거에서 집권당의 승리를 위해 교토의정서 비준의 연기가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분위기의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작년 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기후변화회의에 참석했던 몇몇 대표자 사이에서 모스크바가 유럽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얻기 위한 정책을 쓸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이는 결국 지난 5월, 푸틴 대통령이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지에 대한 보답으로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서두르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또한 국제적 압력이 교토의정서 비준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렵다는 내부 목소리가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9월 30일 개최된 각료회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다.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이 날 각료회의에서는 러시아의 비준 거부가 계속된다면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을 면하기 어렵고, 그러한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각료들의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많은 분석가들은 러시아의 교토의정서 비준이 ‘유럽 국가들과의 모종의 거래’에서 비롯된, 지극히 정치적 판단 결과로 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대한 대가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통과시킨 것과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는 유럽의 배려가 있었으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 예로 거래되는 이산화탄소 가격이 톤당 10달러 선일 때 러시아는 이를 손해로 계산하고 있다. 향후 협상을 통한 가격 상승으로 톤당 70~100 달러 선에 이를 때는 자국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케리나 부시나 초록은 동색
2001년 부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교토의정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비준을 거부했다. 때문에 부시의 재선은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합류하기를 기다리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좌절감을 줄 만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케리가 당선됐어도 별 뾰족한 변화가 왔을 것이란 기대도 하기 힘들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평이다.

물론, 케리는 이번 유세과정에서 부시의 교토의정서 거부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무시한 처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부시와는 달리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신뢰를 보이고 있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국제적 연대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케리는 1992년 리우회의에 참석했고, 1997년 교토협약시에는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하기도 하였으며, 2000년 헤이그에서 열린 기후협약에도 참여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협력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토의정서 문제로 들어가 보면 문제는 약간 다르다.

케리는 그의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린 문건(「The Kerry-Edwards plan for clean coal」)을 통해 교토의정서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교토의정서는 미국이 실현불가능한 감축안이고, 모든 국가에 부과된 감축의무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국가(교토의정서에서 밝힌 2008년~2012년의 1차 기간 감축대상 국가에 중국과 인도가 빠져있음을 지적)들이 포함된 실행가능하고 효과적인 새로운 협약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1997년 7월에 통과된 「상원결의 98」(미국이 가입할 기후변화협정에는 모든 개발도상국들이 포함되어야 하고, 동 협정이 미국의 경제에 심각한 손실을 가져올 경우에는 이의 비준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상원 결의사항) 통과에 한 표를 던진 케리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케리가 교토의정서 비준을 바라는 친환경론자들의 표를 의식해 교토의정서의 비준은 언급하지 않고, 부시의 비준거부만을 부각시킨 것을 보았을 때,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케리가 당선되었더라도 미국의 교토의정서 비준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미국, 가장 거대한 이기주의자
지난 2001년 대통령 취임 후, 부시는 교토협약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3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미국 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가 1차 감축대상국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감축목표와 감축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설사 감축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한 미국의 목표량이 자국 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올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는 2002년 2월 자체 대안을 내 놓았다. 그의 대안에 따르면, 강제 규제보다는 방출량 신고 및 ‘크레디트’ 교환 등을 통한 자율 규제에 의한 기업의 오염물질 배출량 축소 유도, 대체에너지 개발, 오염물질 배출량 축소기술 연구개발 등이다. 자국의 경제성장을 꾀함과 동시에, 현재 국내총생산 백만달러당 183톤인 배출량을 2012년 151톤으로 18퍼센트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부시의 대안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실질적으로 미국은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키는 꼴이 된다. 즉, 미국 국내총생산의 성장에 따라,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퍼센트 정도 늘게 된다. 교토의정서가 규정한 미국 배출 목표의 35퍼센트를 넘어서는 양이다. 부시는 며칠 전 재선이 확정된 후 발 빠르게 교토의정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교토의정서의 미국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4천억달러의 비용이 소요되고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부시를 비롯한 그의 측근 대다수가 석유업계 출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에서부터 지금의 부시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부시 일가는 텍사스에서 거대 석유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이 돈으로 주지사, 대통령까지 당선됐다. 많은 미국 정책이 환경문제를 등한시하고, 석유사업 옹호에 치우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부시 2기 정권에서도 화석연료를 통한 경제성장을 향한 정책 방향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프카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 전쟁이 모두 자국의 이러한 정책방향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역사가 시작됐다
다행스러운 점은 러시아의 비준으로 교토의정서가 곧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협약이라는 큰 틀의 국제법에서, ‘교토의정서’라는 실행법의 발효로 지구환경을 위한 범지구적, 구속적, 효율적 실천이 뒤따르게 되었다. 미국의 불참으로 당장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지만 지구촌은 이제 자기를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건지려는 역사적인 첫 걸음을 시작했다. 과연 미국은 국제질서를 바로 잡는 초강대국으로서의 권위와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제적 합의의 틀 속으로 들어오게 될까, 아니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힘세고 이기적인 부자로 남고 말까.


정익철 jungjic@yahoo.com
(사)시민환경연구소 해외연구원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