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of the Earth 81] 초국적 기업의 초법적 범죄를 막아라

순다르반 숲은 벵갈호랑이를 비롯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서식처다 ⓒSoumyajit Nandy_Wikimedia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이 매출 순이익, 세금납부,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의원들은 기업이 매출액 및 서버 위치 등과 관련된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조세회피를 위한 것이 아니냐며 강하게 질타했지만 기업은 영업기밀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날 핵심 증인으로 참석한 존 리 구글 코리아 사장은 유독 화학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전 대표이기도 하다. 올해 1월 옥시 관계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으나 징역 6년을 받은 신현우 전 대표와 달리 핵심 책임자로 분류되는 존 리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검찰이 외국인 임원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잘못된 판결”이라며 이는 “다국적 기업에 아무런 죗값을 묻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최대한의 영업 자유,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창출 활동을 하는 기업이 규제 사각지대를 악용해 막대한 금액의 조세를 회피하거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이 아시아 지역에 집중되면서 대규모 환경파괴 및 인권침해 문제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업이 현지국의 사법관할권이나 법률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를 규제할 여러 규범들을 고안해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ILO 다국적기업의 원칙과 사회정책에 관한 삼자선언’,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자율적 규제 방안으로 실질적인 문제해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 협약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해온 세계 시민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UN에 초국적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다. 인권과 관련하여 초국적 기업 및 기타 사업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구속력 있는 수단을 논의하기로 한 결의안 26/9호를 채택하고 정부 간 실무그룹(IGWG)을 구성해 해당 임무를 위임한 것이다. 이에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차례의 IGWG 회의가 열렸고, 올해 10월에 열리는 4차 회의에서는 조약 초안(Zero Draft)에 대해 논의한다. 
 
환경연합이 회원단체로 속해 있는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 아시아태평양(Friends of the Earth Asia Pacific)>은 IGWG 4차 회의를 맞아 아시아 지역에서 기업의 초국경적 활동이 야기한 환경파괴 및 인권침해 사례를 조명하고 아시아 각국 정부가 조약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아래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의 사례를 통해 구속력 있는 조약의 필요성과 지구의 벗 아시아태평양이 UN에 요구하는 핵심 내용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 - 석탄화력에 위협받는 맹그로브 

 
주민들은 150킬로미터 이상을 행진하며 순다르반 숲을 위협하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에 항의했다 ⓒ350.org
 
방글라데시와 인도에 살고 있는 6억 인구의 생계를 지원해주고 벵갈호랑이, 갠지스와 이라와디 돌고래, 민물악어 및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토착종 테라핀의 서식지가 있는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 순다르반의 맹그로브 숲이 람팔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람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1320MW 규모의 ‘마이트리 슈퍼화력발전소프로젝트(Maitree Super Thermal Power Project)’는 인도 국영 화력발전기업과 방글라데시 전력청(BPD)이 만든 합작회사로 인도의 수출신용기관인 Exim Bank of India가 대부분의 자본을 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센터는 람팔발전소가 순다르반 생태계에 미치는 대기 및 수질오염 등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센터는 2016년 람팔 석탄발전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 지역을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목록’에 등재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2018년 현재 순다르반에서 불과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석탄발전소가 건설 중에 있다.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은 엄청난 억압을 받고 있으며 불법체포 및 폭력적 공격마저 당하고 있다. 
 

스리랑카 - 사탕수수농장과 토지강탈  

 
1억5200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민관 사탕수수프로젝트가 스리랑카 데히가마-리디말리야다(Dehigama-Rideemaliyadda)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마하웰리 당국을 통해 기업에 99년간 1만8000헥타르에 이르는 토지를 임대하기 위한 조치를 이미 취하였고 경찰력을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농지, 숲, 물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스리랑카 기본법에 어긋나며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권, 환경,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또한 숲에 있는 코끼리의 서식지가 파괴됨에 따라 인간과 코끼리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물과 생물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싱가포르 지주회사인 가젤벤처가 시행사인 비빌리 슈가 인더스트리 지분의 88퍼센트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동의한다 해도 지역사회에 돌아가는 지분은 고작 1퍼센트에 불과하다.
 

구속력 있는 조약이 필요

 
지구의 벗 활동가들이 IGWG 3차 회의에 참여해 구속력 있는 조약(UN Binding Treaty)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Victor Barro_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위의 두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시아 지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수많은 대규모 개발 사업이 현지국의 사법 관할을 쉽게 우회할 수 있는 해외 기업에 의해 주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같은 국제금융기관들이 원조라는 이름하에 제대로 된 환경사회영향평가 없이 문제가 되는 사업에 자금을 대고 있으나 이에 대해 책임을 묻는 법적 장치는 부재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최근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 국영 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역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딱히 없다. <지구의 벗 아시아태평양>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속력 있는 조약에 핵심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영기업을 포함하여 초국적 기업들이 국제법정에서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적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국영기업을 포함하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어디에서든지 인권과 환경권 침해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 국제금융기관 역시 인권과 환경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피해자들에 대한 정의를 실현해주는 국제고충처리제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 기업의 이익추구로부터 사람과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법적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글 / 김혜린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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