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 어느 엄마와 아기를 위한 진혼제

가습기살균제 사망 산모와 태아 2주기 진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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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씨가 아들 재상을 목마 태우고 제상을 바라보고 있다  

 

유난히 눈이 많고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계속된 겨울이었지만 입춘과 설이 지난 2월 중순의 햇살은 어느덧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의 개명사를 찾아가는 길.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봄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정작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흙으로 지은 작은 암자의 처마에 줄지어 달아놓은 여러 장식들이 오늘 이 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南無甘露王如來’(나무감로왕여래), ‘南無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나무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등 불교용어가 적힌 크고 작은 종이 스무 장 정도가 세로로 길게 달린 채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어지러이 나부낀다. 그 앞 땅바닥에 소반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한 곳에는 짚신 세 켤레와 종이로 만들어진 검은색 한복 세 벌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다른 상에는 여성용과 남성용의 울긋불긋한 종이 한복 두 벌과 사과와 배, 감을 올린 접시 하나 그리고 북어 한 마리를 올려놓은 접시 하나가 놓여 있다. 바닥에는 종이로 만든 버선 두 켤레가 놓여있다. 궁금한 얼굴을 하고 들여다보는 나에게 바쁘게 오가던 보살님이 말을 건넨다. “왼쪽의 한복 2벌은 돌아가신 애기엄마와 죽은 태아를 뜻하고, 오른쪽의 검은 한복 3벌은 죽은 사람을 데리고 오가는 사자를 뜻해요.” 

 

원통한 엄마와 아기의 영혼을 달래다

2년 전 오늘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아기엄마 현주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7개월 동안 품고 있던 태아는 엄마보다 4일 먼저 떠났다. 살아남은 그녀의 남편 성우 씨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재상이 그리고 현주 씨의 시댁과 친정 부모님이 오늘 이곳에 모여 그녀와 아기의 혼을 달래는 진혼제(鎭魂祭)를 갖는다. 원통한 영혼이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 잘 달래어 하늘로 보내주려는 취지다. 영혼을 데리러 저승사자 3명이 왔고 같이 먼 길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노잣밥을 넉넉히 준비했다며 보살님은 밥과 국을 소반에 내려놓으신다.   

 

오늘 재(齋)는 성우 씨가 주지스님께 부탁해 진혼제를 잘 하신다는 스님 한 분과 바라춤을 춰줄 춤꾼 한 분을 모셔왔다. 참석자들은 부처님을 향해 몇 차례 절을 하고 이어 왼쪽에 차려진 제사상 위의 망자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30분여 동안 스님들의 독경이 이어졌다. 따분했던 모양인지 안에 있던 여섯 살짜리 재상이가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 뭐하는 거냐며 호기심을 보인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안에서 뭐 했느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이내 외할머니가 우신다고 말한다. 재상이도 뭔가를 기억하는지, 재를 시작하며 절을 할 때 재상이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며 할머니는 전한다. 진혼 독경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다시 한 번 한 순배씩 절을 올렸다. 재상이도 불려가서 절을 올렸다. 재상이가 엎드린 머리맡의 상 위 작은 액자 속에서 현주 씨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결혼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그 옆에는 ‘亡 夫人淸州郭氏賢珠’(망 부인청주곽씨현주)라고 쓰인 제문이 세로로 붙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던 재상이 동생은 사진도 이름도 없다. ‘亡 順興安氏落胎靈駕’(망 순흥안씨낙태영가)라고 쓰인 제문만이 한 생명이 이 땅에 잠시 왔다 갔음을 말해줄 뿐이다. 아기의 제문은 엄마와 손을 잡고 있는 듯 현주 씨 제문과 나란하다. 밖에서 내내 서있던 황망한 표정의 현주 씨 친정아버지가 잠시 절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한 번 그리고 딸의 젯상 앞에서 두 번 절을 올린다. 

바라춤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처음엔 고깔모자를 쓰고 양손에 심벌즈 반쯤 크기의 자바라를 들고 챙챙 소리를 내면서 부처님 앞에서 추었다. 춤꾼이 복장을 바꾸느라 잠시 쉬는 사이 참가자들이 젯상에 절을 했고, 이어 두 번째는 하얀 소복만으로 이번엔 제상 앞에서 추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좁은 절당 한쪽으로 옮겨 앉고 앳된 여성 춤꾼은 제상 앞에서 천천히 슬픈 바라를 춘다. 바라춤은 불교의식의 하나로 재(齋)를 올릴 때 추는데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뜻도 있어 현주 씨와 아기의 진혼제에 초대되었다. 출가한 비구니가 바라를 추었다면 ‘승무’라고 불렀을 것이다. 사찰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소리, 바라춤 음악소리, 춤꾼의 소복이 스치며 내는 소리 그리고 남은 식구들의 울음소리와 한숨 소리, 그 소리들로 서러운 현주 씨의 영혼이 그리고 가여운 아기의 영혼이 조금씩 달래졌을 것이다. 

진혼제가 모두 끝났다. 목탁을 든 스님이 먼저 절당을 나서고 이어 성우 씨가 제문을 들고 뒤를 따랐다. 처마에 매달았던 비품들을 모두 마당 한쪽에 모아 불에 태웠다. 불길이 치솟으면서 스님의 목탁소리도 점점 커졌고 불이 사그라지면서 목탁소리도 잦아들었다. 보살님은 서둘러 밥과 반찬 그리고 과일들을 담아서 절간 입구에 갖다 놓았다. 저승으로 떠나는 먼 길에 싸가라는 뜻일 게다. 

 

현주 씨의 마지막 일주일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시간

현주 씨는 2년 전인 2011년 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4일 전인 2월 4일 26주차의 뱃속의 아이는 죽어서 나왔다. 성우 씨는 임신한 상태였던 아내 현주 씨에게 이상이 생긴 날을 기억하고 있다. 아내는 배가 자주 뭉치고 몸이 붓는다고 했었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 열 그리고 가슴통증도 호소했다. 2011년 1월 17일, 다니던 산부인과로 갔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약 2주일이 지난 2월 1일 오후. 아내는 갑자기 숨이 차다고 했고 119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리고 현주 씨는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2월 3일 저녁 현주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환자면회가 안 되는 곳이라 밖에서 대기하는 보호자를 위해 산모 뱃속의 아기 박동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줬는데 2월 4일 갑자기 박동소리가 희미해졌다. 급히 제왕절개가 시술됐지만 아기는 죽어서 나왔다. 엄마의 폐기능이 크게 떨어져 태아가 가사(假死)상태에 처한 것이라고 의료진은 설명했다. 현주 씨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강제로 산소를 주입하여 혈액을 순환시켜 호흡하게 하는 기계인 에크모가 두 번이나 가동됐다. 그리고 결국 2월 8일 현주 씨의 호흡이 멈췄다. 신장 165센티미터, 몸무게 75킬로그램, 술, 담배도 전혀 안하고 건강했던 그녀가 살았던 마지막 일주일은 그렇게 참혹했다. 

경기도 화성에 살던 성우 씨는 평소 아내가 자주 다니던 충북 옥천의 작은 사찰 개명사에 현주 씨와 아기의 위패를 모셨다. 아들 재상이는 부산 친가에 맡겼다. 힘들어하는 성우 씨에게 스님은 개명사 근처 마을의 빈집을 소개했고 그는 자주 그곳에 머물며 현주 씨를 찾았다. 현주 씨가 떠난 지 6개월이 지난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원인미상 폐손상으로 산모들이 사망한 사건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고 밝혔다. 뉴스를 접한 성우 씨는 망연자실했다.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아파트 공기 좋지 않다며 직접 구입해 가습기 물통에 넣어주곤 했던 가습기살균제가 아내와 아기를 죽게 했단 말인가. 

2012년 1월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의뢰로 한국환경보건학회 의료진이 성우 씨 네를 찾아 방문조사를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가족단위로 이루어졌지만 대개 가장 위독한 가족구성원의 치료와 처지에 매달려 상대적으로 경증인 다른 가족 구성원을 살펴볼 겨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성우 씨 네도 그랬다. 성우 씨도 기침을 자주 하는 편이고 재상이가 기침감기를 달고 살아 부산에서 동네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의료진은 빨리 재상이를 대학병원에서 진단해보라고 권했고 2012년 3월 14일 성우 씨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재상이가 ‘간질성 폐렴’이라는 진단서를 받았다. 아산병원의 진단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010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가습기살균제를 꾸준히 사용한 환아로 2011년 2월경 급성 호흡부전으로 모친 사망하였습니다. 환아는 흉부 CT검사상 상기진단(기타 명시된 간질성 폐질환)이 의심되고 있는 환자로서, 현재는 증상 없으나 정기적 외래 경과관찰 필요한 상태입니다.”     

2011년 11월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가 열린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 강당 입구. 한 노인이 다가와 피해자 기록지에 적었다. “우리 며느리를 누가 죽였노.” 부산에서 올라온 그 노인은 현주 씨의 시아버지였다. 가을비가 제법 내리던 그날, 현주 씨의 시아버지는 광화문 네거리로 자리를 옮겨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내내 현주 씨의 영정을 들고 서 계셨다.

 


글•사진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choiyy@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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