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골프장 막아낸 시민들

미산골프장.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들어설 뻔했던 골프장의 이름이다. 지난 2009년 3월 2일 경기도 도시계획위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산골프장 인허가 신청을 취소했다. 그리고 3월 17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사과했다.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온 나라에 삽질하는 소리가 가득한데, 골프장 허가가 취소됐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6년 4개월. 신청과 부결, 재신청과 부결이 반복된 미산골프장, 지난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지난 2002년 10월. 안성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산사태로 2명이 사망해 사방사업을 했던 골프장 예정부지(산16, 17번지)에서 국비로 대규모 숲가꾸기를 시작했다. 농림사업시행지침서에 의하면 골프장 예정부지와 같은 곳에는 국비로 숲가꾸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성시는 이를 어겨가며 대규모 숲가꾸기를 시행한 것이다. 그 후 한 달 뒤인 11월, (주)서해종건의 자회사인 그랑블개발이 골프장을 신청했다. 2003년 7월 골프장 사업이 부동의됐다. 2004년 3월, 안성시는 이번에는 표고버섯을 기르는 자목생산을 명분으로 한 모두베기를 했다. 곧 이어 그랑블개발은 다시 골프장 신청을 했고, 양호한 자연환경을 이유로 또 다시 부결됐다. 
결국 안성시는 직접 나섰다. 법규를 어겨가며, 골프장 회사 소유의 산에 대규모의 숲가꾸기를 한 것이다. 명백한 위법행위였다. 2009년 1월 경기도 도시계획위 자료에 의하면, 2002년 간벌지와 2004년 모두베기 지역이 이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참나무만 베어냈다는 모두베기 지역에서는 엄청난 양의 나무들이 아직도 계곡과 산 곳곳에 묻혀있다.
2005년 2월, 그랑블개발은 미산골프장이란 이름으로 다시 신청했다. 마을주민의 71퍼센트에 달하는 490명이 골프장 반대 서명을 안성시에 제출해, 4월 안성시의회에서 철저한 검토를 요청했다. 안성시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의회와 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골프장 신청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제출받은 입목축적조사서가 엉터리임이 밝혀졌고, 반대주민들은 재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조사지역의 선정 문제로 논의는 결렬됐다.
6월 2일 강정근 신부가 단식기도에 들어가는 등 반대운동이 거세지자, 안성시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골프장 설치반대민원으로 지역사회안정의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골프장 서류를 반려했다. 골프장 회사와의 법정다툼이 시작됐고 안성시는 경기도 행정심판에서 골프장 회사에게 이겼으나, 행정소송에서는 패소했다. 안성시는 법정에서 골프장 반대 이유는 모두 옳고, 입목축적조사결과도 법 규정에 미달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서류 반려의 실제적 이유가 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안성시는 12월 서류를 다시 접수한 후 연말연시를 이용, 2007년 1월 기습적으로 골프장 신청서류를 경기도로 보냈다.
이후 2009년 3월 2일까지 경기도와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나무를 적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들이 동원된 입목축적조사서, 다양한 멸종위기야생동물과 습지 등이 누락된 사전환경성검토서, 산사태 사망사고와 산사태위험도1등급지가 누락된 사전재해영향성검토서 등 보고서의 총체적 부실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경기도 역시 현지조사를 통해 경사도 20도 이상 지역의 원형보전을 요구하며 조건부 협의를 해준 환경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경기도 자체 기준을 적용, 경사도 25도 이상 지역과 녹지자연도 7등급지의 중첩지역만 원형보전토록 했다. 명백한 법규위반이었다. 미산골프장의 또 다른 논란은 엉터리 산림조사였다. 이 때문에 2008년 12월 29일 대책위와 조사자가 참여하는 별도의 도시계획위원회가 열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9년 1월 16일 도시계획위는 현장 확인 없이 “결정적 하자가 아니다.”는 말로, 조건부 의결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2월 27일의 현장 확인에서 대책위의 주장들이 사실임이 드러났고, 마침내 3월 2일 경기도는 미산골프장을 부결했다.

부결될 수밖에 없는 미산골프장
미산골프장이 3번이나 부결된 것은 자연환경 자체가 골프장부지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1991년 7월 산사태로 2명이 사망했고 여전히 산사태위험도 1등급지가 많다. 또한 다양한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습지가 발달한 곳이다. 대책위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녹지자연도, 멸종위기종, 입목축적 조사 등을 진행해 골프장 예정부지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자료를 확보했다. 
2007년 10월 18일의 첫 번째 기자회견, 11월 8일의 미산골프장 반대 대책위의 발족, 11월 12일의 1인 시위 시작, 11월 29일의 첫 번째 집회부터 7800여 명이 모인 2009년 2월 6일의 집회까지 대책위와 주민들은 끈질기고 헌신적인 주민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2008년 7월 4~15일의 릴레이단식은 경기도가 대화창구라는 기구를 운영하도록 했고, 영하 15도의 날씨에서 시작된 62일의 철야노숙은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까지 이끌어냈다. 이는 경기도가 도시계획위 결정 번복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안성지역 언론의 역할도 컸다. 자치안성신문은 최초로 입목축적문제를 제기했고 안성신문은 전국산림조합조사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또한 미산골프장 반대가 사회정의의 문제임을 인식한 종교계(천주교. 개신교, 불교)의 확고한 지지는 큰 힘이 됐다.  
미산골프장 부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국사회에서도 골프장으로 상징되는 자본과 행정권력이 유착한 대규모 막개발도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의 역사를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막개발 반대가 우수한 녹지자연과 멸종위기종 서식 주장 등에 주로 의지했던 것에 더해, 입목축적조사라는 또 다른 쟁점을 발굴해냈다. 마지막으로 행정기관과의 다툼은 공문과 전문가의 도움에 근거한 사실자료에 의지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은 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은 과제들이 많다. 미산골프장이 부결된 3월 2일 경기도는 ‘강변에 살자!’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한반도대운하의 변형된 버전이다. 이는 미산골프장에서의 승리가 막개발을 막아내는 완전한 승리라기보다, 막개발 추진세력과 반대세력 사이에 육박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참호 한 군데에서의 일시적 승리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미산골프장의 부결을, 막개발을 막아낼 수 있는 근본적 승리로 확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산골프장이 부결된 이후인 3월 5일, 안성시 보개면 스테이트월셔골프장 부지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용산사태’가 벌어졌다. 골프장을 공익시설이라며 강제 수용할 수 있다는 법에 의해 대낮에 마을주민들이 강제퇴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책위는 미산골프장이 부결된 이후에도 경기도청 앞에서 62일 동안 철야노숙을 하며, 재발방지책과 제도적 개선, 그리고 경기도지사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대책위가 희망하는 것은, 온 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막개발을 막을 수 있는 차원에서의 제도적 개선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경기도와 안성시의 조례개정 및 잘못된 법규의 개정을 위해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제2의 미산골프장 승리를 이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