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수질은 어떨까?

백두산 장백폭포. 비룡폭포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용이 수직으로 승천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 불리는 백두산의 수질은 어떤 상태일까? 수질 상태를 보면 백두산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강과 하천 발원지는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등이 일상적으로 수질을 체크하지만, 분단으로 막혀 있는 백두산의 상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월 말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 조사는 분석기기 전문회사인 영인과학이 창립 40주년을 맞이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영인과학은 2001년에도 백두산 천지와 두만강 발원지에 대한 수질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에 공중파 3사 중에 유일하게 환경 프로그램이 남아 있는 SBS 『물은 생명이다』 700회 특집 촬영도 함께 했다. 참가자는 환경운동 1세대로서1988년 공해추방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낸 이덕희 영인과학 랩프론티어 사장(환경보건학 박사)을 비롯해 ‘물은 생명이다’를 총괄하고 있는 SBS 오기현 부장(PD) 등 9명이 팀을 이뤘다.
 
우리는 백두산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창바이산(장백산 長白山)’이라 부른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고산지대로 이어진, 즉 산맥 개념으로서 장백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길은 북파, 서파, 남파 등 3곳이다. 분석팀은 우선 북파 코스를 선택했다.
 
북파 산문 주차장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백두산 천지를 보러 오는 70퍼센트는 중국인들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에는 한국 사람이 80퍼센트 정도였는데, 2003년 중국 정부가 백두산을 ‘중국 10대 명산’으로 선정하면서부터 중국인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북파 코스에서 만난 많은 중국인들은 초여름이지만 등판에 영어와 한자로 ‘장백산’이라 쓰여 있는 두툼한 겨울용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천지에 올라서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을 태운 셔틀버스는 해발 고도1500미터를 지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따라 2000미터를 넘어섰다.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직 녹지 않은 얼음과 두터운 이끼층이 보였다.
 

하루 23번 변하는 백두산 날씨

 
백두산 천지 사진 제공 SBS 『물은생명이다』 한건규 피디
 
맑았던 하늘은 천지에 가까울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져 불과 10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백두산은 ‘일산유사계 십리부동천(一山有四季 十里不同天)’이라고 설명되는데, ‘하나의 산에 4계절이 있고, 십리(4킬로미터)만 벗어나도 날씨가 다르다’는 말이다. 백두산 천지의 날씨는 하루 23번 변한다고 하니, 그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다.
 
백두산은 높이 2750미터(북한 장군봉)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25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16개가 넘는다. 천지의 해발 고도는 2257미터로서 우리 팀이 서 있는 북파 정상에서부터 약 300~400미터 아래에 장엄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천지는 짙은 안개 때문에 어떤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천지의 안개는 남쪽의 따뜻한 공기와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면서 생기는 것으로, 이덕희 박사는 “이런 날씨에는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하나 둘 “라이러 라이러”를 합창했다. ‘바람아! 더 강하게 불어라(來了)’라는 뜻으로 마치 주술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천지는 결코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것이 천지”라는 누군가의 농담이 야속하기만 했다. 백두산은 부석(浮石)이 산 정상부에 많아 ‘하얀 머리의 산’이란 뜻이다. 현지에서는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백번 와야 천지를 두 번 볼 수 있는 산’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천지 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행은 천지 등반코스 중 가장 길다는(15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서파 코스를 찾았다.
 
서파 코스는 주차장에서부터 비가 내렸다. 계단을 오르면서 SBS 오기현 부장은 내려오는 중국인들에게 천지가 보이는지 물었지만, 하나 같이 “칸부따오(看不到)”, 즉 안개가 짙어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던 일행의 표정이 굳어만 갔다.
 
천지는 대략 북한이 60퍼센트, 중국이 40퍼센트를 분할하고 있다. 서파 정상에서 바라 본 천지는 여전히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북파정상과 달리 힘껏 안력을 돋우면 어렴풋하게나마 천지 호수의 윤곽이 보이긴 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빗줄기가 잦아드나 싶더니 천지의 안개가 조금씩 옅어져 갔다. 바람이 조금 더 거세지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와’라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숨죽이며 기다리기를 몇 분, 드디어 서쪽을 시작으로 신비한 천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옅은 안개가 남아 있지만 녹지 않은 얼음이 호수위에 떠다니는 모습마저도 뚜렷하게 보였다.
 
자료에 따르면 천지 면적은 여의도(2.9제곱킬로미터)의 세배가 넘는 9.18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평균 수심 214미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384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데라호(화산 호수)이다. 이 곳에 담겨진 물량만 해도 우리나라 소양강댐 저수량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20억4천만 세제곱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여의도 3배 크기의 천지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왔을까? 한라산 백록담의 경우 100퍼센트 빗물에 의해 형성되지만, 백두산 천지는 지하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2001년 백두산 현장을 조사한 바 있는 이덕희 박사는 “천지 호수는 빗물 약 38퍼센트, 지하수 62퍼센트에 의해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백두산 일대는 연간 강수량이 1300~2500밀리미터에 달할 정도로 비교적 많은 비가 내리는데, 이 때문에 지하수가 풍부하다. 천지는 물속 10미터까지 보이는 투명함과 지하수의 영향으로 물의 온도가 낮은 것도 특징이다. 2001년 7월 영인과학팀이 실측한 결과 섭씨 5.1도를 기록했는데, 이 정도면 거의 냉장고와 비슷하다.
 
이덕희 박사 등이 2001년 수질 조사를 할 때는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로 바로 내려가 물을 채수했지만, 중국이 천지를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추진하면서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사실 천지 보호정책은 필요했다. 백두산의 영험한 기운 때문이었는지, 천지 호수 주변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속인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천지에서 낚시 행위도 벌어졌다. 그에 따른 수질 오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팀은 수질 채수를 위해 백두산 북파 부근의 장백폭포로 이동했다. 천지의 물은 안개로 뒤덮인 U자 협곡을 따라 1250미터를 흐르다 장백폭포로 떨어진다. 67미터 높이의 장백폭포는 비룡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용이 수직으로 승천하는 형국이다. 바닥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두껍게 쌓여 있고, 그 사이를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얀 포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일대 지명에 바이허, 즉 백하(白河)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장백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송화강과 아무르강 등 만주 벌판을 흠뻑 적시고 동해로 들어간다. 흔히 천지의 물이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라 알고 있는데, 압록강은 북한 쪽 백두산 서쪽 지역에서 발원하고, 두만강은 백두산 동쪽 중국의 원지(圓池)라는 곳이 발원지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상 압록강과 두만강 모두 지하로 천지와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
 
수질 조사는 현장 측정과 정밀 수질 분석으로 나뉜다. 현장 측정은 2007년 화성탐사선에서 사용되기도 했던 휴대용 정밀 장비를 활용해 수온, 용존산소(DO), 수소이온농도(pH), 전기전도도 등을 측정했다. 장백폭포에서 내려온 물의 온도는 섭씨 6.7도, 용존산소 9.93, 폐하(PH) 8.03, 전기전도도 287.4로 측정됐다. 장백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용존산소가 풍부하면서 차가운 상태란 걸 말해 준다. 일반적인 화구호의 경우는 폐하(pH) 3~4 정도로 산성을 보이지만 천지는 약알칼리성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정밀 수질분석은 현장에서 채수한 것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분석한다. 중금속류,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농약류, 페놀류, 유기탄소(TOC)를 분석한다. 세슘 등 방사능 물질 조사도 포함했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북한의 핵실험 등의 영향 유무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 활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수질 상태

 
장백폭포 채수
 
『물은 생명이다』팀들과 분석팀은 두만강 수질 조사에 나섰다. 원래 계획은 천지에서 동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두만강 발원지 원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원지 행에 대해 가장 우려한 이들은 현지 가이드와 중국인 버스 기사였다. 비가 많이 온 상태에서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밀림 속 비포장 길을 갔다간 버스 바퀴가 수렁에 빠져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네비게이션은 물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라 만약 사고가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단다.
 
결국 조선족 표현으로 ‘옥녀늪’이라 불리는 원지를 포기하고, 두만강 중류에 위치해 북한과 국경을 접한 투먼(도문)행을 선택했다. 얼따오바이허시에서 룽징(용정)을 거쳐 투먼까지는 북간도 지역으로, 역사책에 등장한 익숙한 지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사이 비구름은 마치 우리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비를 퍼붓는 듯했다. 이 때문에 처음 만난 두만강은 노랫말과 달리 황토빛이었다. 굵어진 빗속에서 한국으로 가져가기 위한 채수를 했다.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은 현장에서 고정시약을 넣어 정밀 분석을 준비했다.
 
사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마음 졸였던 것은 채수한 물을 한국으로 가져 오는 일이었다. 자세히 언급하기 어렵지만, 국가의 통제권한이 강한 중국에서는 민간이 수질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채수한 물을 이러저러한 이유 등에 의해 중국 공안 또는 공항에서 압류되면 이번 조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행히 안전하게 한국으로 이송했고, 수질 분석 결과가 나왔다.
 
천지와 두만강의 물에서 세슘(Cs-137, Cs-134) 등 방사능 물질과 농약 및 페놀류, 휘발성유기화합물질도 검출되지 않았다. 천지의 총유기탄소(TOC)는 0.214ug/L(리터당 마이크로그램)로 고도정수 처리한 수돗물 상태와 비슷한 극미량이 검출됐고 두만강은 한강 하류 수준인 리터당 6.658마이크로그램으로 조사됐다. 천지는 화산호라는 특성상 베릴륨(0.290) 등의 일부 무기 원소가 검출 됐지만, 아주 극미량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두만강은 철이 리터당 197.740마이크로그램이었고 알루미늄이 리터당 319.845마이크로그램으로 알루미늄이 다소 높게 나왔는데 우기의 영향과 상류 북한의 무산 광산의 영향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한반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지의 물은 인간 활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만강 역시 우려가 있지만, 아직은 그렇게 오염이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SBS 오기현 부장은 “백두산의 물줄기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사진 / 이철재 환경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에코큐레이터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