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밀밭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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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밀이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견됐다. 유전자조작작물 최대 재배지이자 수출국인 

미국의 안전관리가 허술함이 드러난 것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미국 오리건 주에 사는 한 농부는 2012년 여름, 지난해 파종한 겨울밀을 수확한 후 땅을 한참 놀렸다. 그러다 2013년 봄밀을 재배하기 위해서 몬산토(Monsanto)사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을 밀밭에 뿌렸다. 125에이커(약 51핵타르, 축구장 70개 정도의 면적)나 되는 넓은 땅에서 잡초관리를 위해서는 제초제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보통의 농부라면 으레 하는 일이다. 특히 옆에 있는 대두 농장은 몬산토사의 제초제를 아무리 뿌려도 죽지 않는 유전자조작 콩을 심고 나서는 한결 잡초관리가 쉬워졌다고 한다. 아직 밀은 제초제를 견디는 유전자조작 밀이 상품화가 되지 않아서 농부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평소 같으면 남아있는 잡초며 다른 작물들이 다 죽었을 텐데 전체 면적 약 1퍼센트에 해당하는 곳에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밀이 나타났다. 4월 30일 농부는 죽지 않는 이상한 밀을 오리건주립대학교 말로리 스미스(Mallory-Smith) 교수 연구팀에 분석의뢰 했다. 스미스 교수 연구팀은 농부가 보내온 밀에서 제초제 저항성을 위해 밀에 삽입한 아그로박테리움(Agrobacterium) 유래 유전자를 발견하고 5월 3일 미국 농무부 산하 동식물검역국(APHIS)에 확인을 요청했다. 5월 29일 미국 동식물검역국은 오리건 주에서 발견된 밀이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밀임을 확인하고 유럽연합, 일본, 한국 등 주요 수입국들에게 알렸고 다음날 미국 정부는 미승인유전자조작 밀이 오리건 주에서 발견되었음을 공식발표했다. 


유전자조작 밀이 발견됐다!

일본은 즉각 미국산 밀에 대한 수입중단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역시 전면조사 계획을 밝혔다. 세계 각국의 언론은 재배를 비롯한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승인이 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밀이 밀밭에서 버젓이 자라고 있었음을 주요하게 다뤘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오리건 주에서 국내로 수입된 밀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약속했다. 밀 수입을 담당하는 한국제분협회는 이번에 발견된 밀은 겨울밀이고 한국에는 봄밀을 수입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국내 밀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입장을 밝혔다가 시민들의 질타를 받고 결국 잠정적인 수입중단을 약속했다. 

이번 사건에서 발견된 유전자조작 밀을 만든 곳으로 지목된 몬산토는 더 심각했다. 몬산토 사는 이번에 발견된 밀이 자신들이 만든 품종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오리건 주에서는 2001년 시험재배를 딱 한 번 했을 뿐이고 자신들이 개발한 품종과 이번에 발견된 품종은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몬산토 사는 이어 오리건주립대학교와 농무성의 시험방법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다. 이미 승인된 유전자조작 콩, 옥수수, 유채 등 라운드업 레디 종자들의 먼지가 밀에 붙어서 위양성 반응(실제로 음성이지만 실험상의 오류나 기타 사유로 가짜 양성을 나타내는 경우)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농무성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지만 몬산토 사는 이번에 발견된 미승인 밀에 대해서 몬산토가 직접 조사하겠다며 샘플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오리건주립대학 말로리 스미스 교수는 미국 동식물검역국에서 몬산토 사를 조사하고 있다면서 조사받는 기업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몬산토 사는 잠정적으로 미국의 밀 가격을 추락시키고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며 미국 캔자스 주와 워싱턴 주 농민들에게 피해소송을 당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제기된 첫 소송이다. 2006년 바이엘 크롭사이언스 사에서 개발한 미승인 유전자조작 쌀 오염으로 7억5000만 달러의 배상책임을 졌던 사건과 비교하면 앞으로 이런 소송들이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시험재배만 승인되었고 그 이후 밀 재배농가들의 저항과 경제성 등을 이유로 몬산토 같은 제조사 역시 상업적 재배를 포기한 유전자조작 밀이 2013년 현재 자라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미국에서 재배하고 있는 밀이 유전자조작으로 오염이 되었거나, 몬산토 등 제조사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경로로 유전자조작 밀이 재배되었는지 미국 농무부(USDA)와 동식물검역소(APHID)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고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의 유전자조작 작물의 안전관리가 허점투성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생명공학 안전관리를 위한 국제협약인 바이오안전성의정서에도 가입하지 않고, 자국 내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표시제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전자조작 작물을 재배하고 수출하지만 가장 안전관리가 허술한 국가인 것이다. 


점점 커지는 GMO 위협, 느슨한 우리 정부

6월 5일 식약처는 국내에 수입된 오리건 주 밀과 밀가루 45건에 대한 전수 조사 결과 국내 수입 분량에는 미승인 유전자조작 밀이 섞여 들어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식약처의 조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각적인 수입중단 조치도 취하지 않고,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식약처의 식품안전 정책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더구나 식약처는 이번에 문제가 된 유전자조작 밀을 제대로 검사할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식약처에서 유전자조작 작물에 대한 검사를 주로 담당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내 수입, 유통 승인된 작물과 수입, 유통신청을 한 작물에 대해서만 표준시험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번에 발견된 유전자조작 밀을 검증할 표준시험법을 한국 정부는 가지고 있지 않다. 식약처 역시 이 부분을 의식해 현재까지 최선의 방법으로 조사했고, 미국 당국에게 표준시험법이 확인되면 추가적으로 조사하겠다며 보도자료에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몬산토 사가 미국 당국의 시험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약 한국 식약처의 조사결과에서 유전자조작 밀이 발견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어도 몬산토 사가 이를 수용했을지도 의문이다.

유전자조작 작물의 재배면적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올해 네이처(Nature) 지에 따르면 전 세계 작물재배 면적(15억 헥타르) 중 약 10퍼센트(1억7000만 헥타르)에 유전자조작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그 중 90퍼센트 이상(1억5200만 헥타르)이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에서 재배된다. 이 가운데 약 50퍼센트(6900만 헥타르)를 미국 단 한 국가에서 재배하고 있다. 상업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내 밀밭 약 4000에이커(1619 헥타르) 279개 농장에서 유전자조작 밀이 시험 재배됐다. 2005년 이후 중단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2009년부터 또 다른 종류의 유전자조작 밀이 하와이 주와 노스다코타 주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다. 

이번 미승인 유전자조작 밀 발견 사건은 미국의 유전자조작 작물의 안전관리 수준을 확인해 줄 뿐 아니라 유전자조작 작물의 자연생태계 오염의 가능성과 이에 따른 경제, 사회적 비용이 한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밀이였지만 다음에는 어떤 작물이 어느 국가에서 오염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할지 모를 일이다. 

상업적으로 유전자조작 작물을 재배하고 있지 않는 한국에서도 매년 유전자조작 작물이 유출되어 자라고 있다. 사료공장, 가공공장, 운송로, 축산농가, 축제지 등 가리지 않고 검출되고 있다. 

환경연합이 입수한 2012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유전자조작 작물 의심시료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일부 후대교배종의 징후도 보인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조사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는 미국 미승인 유전자조작 밀 발견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재배를 하지도 않고 비의도적으로 방출된 작물에서 유전자수평이동에 따른 오염이 발생했다는 가정은 상상하기도 싫다. 


안전한 밥상을 위한 몇 가지

그동안 한국정부는 유전자조작 작물의 안전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늘 강조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정부 각 부처가 각각 LMO(Living Modified Organism: 유전자가 조작된 작물이나 생물, 미생물처럼 종 확산과 생식이 가능한 것) 관련부서와 법령을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성에 중심을 두고 시작했던 국내 법 체계가 아니라 국제 교역과 외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체계라 수입업체와 국제 다국적 회사들의 요구에 취약하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각종 규제완화를 이유로 관련 법안을 완화시켜왔다.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 강화를 요청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정부는 표시제 강화를 약속하고 내용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로비에 아직까지 제도를 정비하지 못했다. 2013년 국회와 시민사회를 통해서 다시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부실한 표시제로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알 권리와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유전자조작 작물의 자연생태계 오염과 위험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국 등 주요 유전자조작 작물 수출국에게 안전관리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해야 한다. 국내 재배용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느슨한 안전관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더 이상 핑계가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식량안보를 이유로 유전자조작작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주장이 활개를 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유럽연합이 강력한 유전자조작작물 안전관리와 수입금지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높은 식량자급률과 강력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전국사무처 정책국장 jopan@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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