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 귀농인 선배에게 묻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귀농에 뜻이 있는 신랑 탓에 귀농에 대한 관심이 많다. 물론 고작해야 내 농사 경험은 학교 옥상텃밭이 전부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환경연합 회원이고 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귀농해 팔당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최요왕 씨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1월 어느 날, 폭설에 한파를 피해 신랑과 함께 그를 만나러 팔당으로 갔다.   



언제 내려오셨어요?

“여기 온 건 2004년이에요. 처음 1년은 남의 집에서 머슴 살면서 농사를 배웠어요. 사람들 사귀고 땅도 눈에 익히고, 동네분위기도 익혔죠. 그렇게 한해 지내고 그 겨울에 아내랑 애들이 내려왔지요. 농사짓고 싶단 생각은 대학 때부터 했어요. 그러다가 환경연합 소모임 환경기술인모임에서 세미나도 하고 견학도 다니고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려면 농업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내려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결혼도 하고 서울에서 직장도 다니고 있던 때라 바로 내려오진 못했어요. 또 돈도 없지 땅도 없지 아는 사람도 없지. 그래도 계속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자꾸 들어서,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하는 데서도 일해보고 퇴비회사도 다녀봤는데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성에는 안 차더라고요.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지요. 마음먹고 실제로 내려오기까지 딱 10년이 걸렸어요.”


실제로 내려와 보니 어떠세요?

“농업이 근간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 어떤 것에도 농업이 희생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고자 하는 사람들도 내려오기 전에 자기가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지, 혹은 자기 자신을 아는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 남편도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 하는데 제가 좀 반대해요. 

저도 농사를 짓고 싶기는 한데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사람은 특히 아이나, 노약자 분들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유대관계가 있는 그런 분위기에서 아이도 키우고 어르신들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네공동체가 살아있는 게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귀농이란 것도 전원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나 갈망만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 이상의 바람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잘 지내나요?”

“아이들은 금방 적응하더라고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아내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을 좀 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서울 갈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주로 어떤 걸  기르세요?” 

“시설 하우스가 한 600평 돼요. 거기에 케일이랑 양상추, 오이를 기릅니다. 여기는 수천 년 동안 하천 옆으로 흙이 쌓인 곳이라 땅이 기름져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확이 다른 곳보다 3, 4배 이상은 됩니다.”


“4대강으로 농지를 빼앗기게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농업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치가 떨립니다. 언제는 뜬금없이 새만금이랑 시화호를 메워 농지를 만들겠다고 해놓고, 그 땅에 농사는 짓지도 않고, 이제는 수질을 문제 삼아 농토를 없애겠다니요. 국가의 정책에서 농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 같아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쌀농사가 돼서 주곡이 되는 나라였는데, 정부에서 수매제도를 포기했고, 사실상 ‘농업포기정책’이라고 해야 맞는 정책들을 펴고 있습니다. 그나마 넘어져가는 농업을 하우스 시설 채소 농사, 축산업이 붙들고 있는데, 이번에 4대강사업으로 그 농가들마저도 무너질 판입니다. 정말 근근이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 오갈 데가 없어지는 거죠. ‘정말 농업을 망가뜨리려고 작정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중엔 참말로 어쩌려고 이러나.’ 싶어요. 가슴이 아픈 것 이상으로 화가 나고 열 받아 미치겠어요.”


“농업 전반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네요.”

“이제 제가 당사자가 된 거죠. 속으로는 잘됐다 싶기도 해요. 싸울 수 있는 명분이 제게도 생긴 거니까요. 생존권이 달린 문제잖아요. 그걸 걸고 농업의 제반적인 문제들도 함께 제기하면서 싸워나가고 싶어요.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죠. 다만 제일 답답한 것은 강을 살린다면서 실제로는 강을 완전히 망가뜨릴게 뻔한데, 경제가 자연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에 아무도 맞서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에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요.”

“올해부터는 아내에게 칭찬받는 남편이 되려고 했는데……. 진짜 여기를 떠나야 하는 건가, 다시 시작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막막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자본 투자해서 잔뜩 빚만 벌여놓고, 이제야 그걸 거둬드릴 수 있게 됐는데……. 다시 무일푼이 되는 거죠. 가족들이랑 함께 지내려고 여기로 온 건데, 이제 혼자 있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참 갑갑합니다.”  

돌아오는 길, 두물머리에 들러 꽁꽁 언 강물 위를 걸었다. 그 곳엔 산, 강, 작은 섬, 넘어가는 해와 찬 공기가 거기 그대로 있었고, 귀가 멀어버린 것 같은 그 고요함도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4대강 사업은 팔당 유기농지와 함께 귀농인의 꿈을, 한 남편의 꿈을, 한 아버지의 꿈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답답해하던 최요왕 씨 모습에서 신랑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대책위에서는 국민소송단을 모집하고 있고, 행정소송 및 효력정지가처분신청도 하고 있다. 또 가까운 생협에 주문하면 펼침막을 베란다에 걸어 팔당의 문제를 알릴 수 있다고 한다. 



오송이 환경운동연합 회원 songyi@ournature.org 






"우리 농사짓게 해주세요"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


팔당의 또 다른 농부, 팔당생명살림의 방춘배 사무국장을 통해 4대강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몇몇 규제에 묶여있다 보니 실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두물머리에서 정농회를 하시던 분이 ‘농약을 안 쓰면 강도 안 죽고 사람도 안 죽지 않겠냐.’며 유기농업을 시작하셨죠. 이후에 동참하는 농민들도 늘고 지자체에서도 유기농으로 전환할 때 지원도 해주고 하면서 이곳에 유기농단지를 이루게 된 겁니다. 2012년에 세계유기농대회도 이 동네 분들이랑 같이 가서 유치해왔지요. 여기는 유기농업뿐만 아니라 도농교류 사업으로 추수축제도 하고 어린이들도 농업 체험하러 많이 와요. 여기가 그런 곳입니다. 지금까지 여기 분들이 살아왔던 삶, 그 역사를 무시하고 여기에 4대강 사업하니까 땅을 다시 내놓으란 게 말이 됩니까?”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땅을 소유한 게 아니라 지장물이나 손실에 대한 보상정도이고 정부에서 말하는 대체부지도 5만 평밖에 안 되는 임야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4대강 사업으로 빼앗기는 땅은 15만 평, 게다가 임야를 개간해서 유기농을 하기에 좋은 땅으로 만드는 데만 해도 4~5년이 걸린다고 덧붙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충분한 논의도, 준비할 기간도 없이 갑자기 그리고 무조건 4대강을 해야 한다고만 하고 있어요. 여기 분들은 유기농업 한다고 지원받고 칭찬받으면서 자부심 갖고 농사짓고 있었는데 이제는 수질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몰면서 농사를 못 짓게 하니까 기가 막히지요.”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우리들은 그저 ‘이대로 농사짓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에요.” 

이곳 농민들의 바람은 우리를 침범하지 말라는 이기적인 태도도, 우리를 상관 말라는 냉소적인 태도도 아니었다. 녹색도 아닌 녹색이 진짜 녹색을 빼앗으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외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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