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 북한산이 정부와 조계종만의 것인가

북한산이 정부와 조계종만의 것인가


논란 속에 2년여 동안 중단됐던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터널 구간 공사가 세밑인 25일 재개됐
다. 공사가 재개되고 보름 남짓 만인 1월 9일 찾은 현장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한때 전국을
뜨겁게 달구며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공사반대의 전초기지 철마선원과 망루는 흔적조차 찾
을 수 없었고 북한산보호대장군 장승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정부의 기습적인 공사 재개 결정
공사재개 하루 전인 12월 24일 정부종합청사 뒤편, 시민환경단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규탄대상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조계종 역시 이번 사태의 주역이
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산을 지키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해왔던 양대축중 한 쪽이 다른 한 쪽
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의 심정 또한 참담하다. 시민참여
를 기치로 내세운 정부로부터 배제되고 불교계로부터 따돌림 당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총무원
의 해명 혹은 사전제안이 전혀 없었다. 시민운동의 절망이다. 총선을 앞두고 막후거래가 이루어
진 것 아닌가.” <우이령보존회>의 박선경 사무국장은 이렇게 심경을 표현했다.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산관통도로 반대여론의 큰 중심축인 불교계, 즉 조계종의 종정을 만나
기 위해 합천 해인사를 방문한 것은 또 한번의 전격적인 행보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종정 법전
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 등을 만나 불교계의 협조를 구했고 종정스님은 국정수행에 잘 협력할
것을 원장스님에게 지시했다. 이로써 불교계를 회유했다고 판단한 정부는 곧바로 공사 강행에 필
요한 나머지 절차를 발빠르게 진행시켰다. 이틀 뒤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던 그 시
간 정부는 원안대로 공사재개할 것을 결정했고 다음날 현장에서는 농성장 철거와 함께 바로 삽질
이 시작됐다.

북한산관통도로, 백지화에서 강행까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서울 및 수도권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순환고리형 도로로 계획됐다.
1989년부터 사업에 들어가 전체 127킬로미터 구간 가운데 퇴계원-판교-평촌-부천-김포-일산을 잇
는 91킬로미터는 이미 완공됐다. 지난 97년 일산-벽제-의정부-퇴계원 구간(36.3킬로미터)이 왕
복 8차선 터널로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2000년에 시민환경단체들은 대안으로 의정부 우회노선을 처음 제시했으나 정부와 시공
사측은 우회노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착공의 결정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은 2001년 7월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에 협의를 해 주면서다.
당시 ‘국립공원 파괴를 허락하는 환경부’라는 사회적 비판과 질타가 잇따랐다. 같은 해 11월,
터널 구간 공사가 시작과 함께 바로 시민환경단체와 불교계의 실력행사로 공사는 중단됐다.
한편 사패산에 있는 회룡사 등 주요 사찰들은 터널이 수행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2001년부터 반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조계종 차원의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것은 2002년
초 농성장 괴한 침입 사건에 기인한 바 크다. 당시 회룡사 비구니들이 폭행당하는 등의 피해가
있자 3월 조계종 종정과 원로회의는 “신명을 다해 산을 지키라”는 유시를 내렸다.
2002년 한때 불교계와 시공사측 사이에 노선조사위원회 구성이 합의되기도 했으나 지지부진했고
결정적 분위기 쇄신은 그해 12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북한산관통도로 백지화란
말이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듬해 대통령 취임 이후, 공약은 쉽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
다. 노선재검토위원회가 구성돼 원안과 국립공원 우회노선, 의정부 우회노선 3개 노선이 검토되
기도 했지만, 각각에 대해 4:1:5로 의견이 갈라져 8명 이상 합의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종
료됐다. 하지만 대안노선 검토에 대한 정부의 진의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노선재검토 합의 때
부터 끝까지, 외곽순환도로 공사 구간의 다른 한 쪽인 수락산·불암산 터널 공사는 중지되지 않
았기 때문이다.
한편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몇 개의 대형 국책사업 백지화 및 재검토를 약속한 후 제대로 해
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이대로 해를 넘기면 안 된다는 사회적 압박을 점점 강하게 받고 있었
다. 마침내 9월 19일 정부는 북한산 문제와 관련, 공론조사 뒤 노선 결정이라는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때 정부는 경부고속철도는 원안대로 강행하고 경인운하사업도 사실상 재개하기로 하
는 등 대체로 원안으로 복귀하는 자세를 보였다. 공론조사의 방법에 대해서는 불교계를 비롯, 사
회적 여론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침내 12월 해인사 방문을 결행했고 스스로 공론조사를
철회하면서 불교계와의 담합을 택했다.

입맛대로 환경보호에 나서나
정부와 조계종의 타협 소식이 알려지면서 처음에 시민환경단체측은 반신반의했다. 워낙에 사전
에 들은 바가 없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어떤 형식으로든지 조계종 내부에서 다
른 의견이 곧 나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다. “총무원을 중심으로
내부 의견은 이미 정리됐던 것 같다. 지난 해 8월부터 정부와 불교계는 따로 협의 채널을 가져왔
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국장의 말이다. 사실 정
부와 조계종 사이에는 수행환경과 문화보전을 위한 관련법 제정 등의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협의 내용에 대해 윤 국장은 “사찰의 문제에 국한돼 있고 환경이나 국립공원의 문제
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설명했다.
<불교환경연대> 정성운 사무처장은 조계종의 이번 태도에 대해 “결국 뒷심이 부족한 거라 본
다. 내부적인 한계도 있다. 내부에서 조계종이냐, 환경종이냐 하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으니
까”라고 말했다. 삼보일배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경스님을 공동대표로 한 <불교환경
연대>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종단 내부 분위기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경우 운동적 관점이 뒷받침되지 않은 불교계의 어지러운 행보가 환경보호에 있어 일
관되지 못한 태도로 나타났고 이것이 결국 국립공원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야산
국립공원 관통도로는 반대하면서 대형불사를 일으켰던 전과처럼 이번에도 불교계는 여전히 입맛
대로 환경보호에 나선다는 비판을 비켜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공사재개 이후 관련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는 회합을 갖고 북한산국립공원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터널 공사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립공원과 도
로정책의 개편을 위해 더욱 힘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정책 단계에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지금
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다.
국립공원은 당대보다도 미래세대를 위한 보존의 공간이다.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나라는 미래
세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나라다. 그리고 이런 배려가 부족한 나라는 결국 미래의 희망도 부족
한 나라다.

이상백 기자 leesb@kfem.or.kr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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