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닭들의 안부를 묻다

 
살아있는 동물들이 철창에 갇혀 진열되다 죽음을 맞는 재래 가축시장의 폐쇄는 동물권의 일보 진전이다. 지난 7월 1일 구포 가축시장이 부산광역시 북구청과 상인들 간 폐업 협약이 성사되며 문을 닫았다. 개, 닭, 오리 등 전시되던 동물들의 도살은 더 이상 그곳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재래 가축시장이 있던 부지에는 반려견 놀이터와 동물복지시설이 조성되고 주차장, 주민쉼터 등이 건립되는 완전 폐업이다. 이 소식은 저물어 가고 있는 개식용 산업 측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재래시장에서 고통스럽게 머물다 생을 마쳐야 했던 닭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구포 가축시장의 완전 폐업과 함께 닭들의 비명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게 됐다. 
    

치느님의 수명은 35일

 
하지만 ‘가축’이라고 명명되며 오늘날 합법적으로 대량 사육되어 도축되고 있는 닭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이는 극히 사소한 진전에 불과할 것이다. 한해 대한민국에서만 최소 10억 마리 이상의 농장동물이 도축되는데 이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물이 바로 닭이기 때문이다. 가축전염병에 감염되지도 않았는데 많은 수가 이른바 ‘예방적’ 살처분을 당하고 있는 것도 닭이고, 막대한 자본에 의해 수직 계열화된 산업 제1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도 닭이다. 일명 ‘치킨 닭’이라고 불리는 육계의 경우 세상에 태어난 지 35일 만에 죽음을 맞고 있다. 참고로 닭들의 자연수명은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30년인데 시나브로 보편적 용어가 되어버린 듯한 ‘치맥’이 못내 불편한 이유다. 
 
이러저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공장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닭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붉은 벼슬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온기와 나를 빤히 쳐다보던 눈빛.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음식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구한 운명 속 주어진 환경에서 본능과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들의 삶 역시 시시각각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단절된 듯 보이는 우리네 일상에서도 닭에게 다가가 조금이라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절반이 넘어가고 있는 2019년, 대한민국 닭들의 주소를 돌아본다.   
 

반쪽짜리 달걀 사육환경 표시제의 도입

 
윤리적 소비는 닭을 비롯한 농장동물의 사육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주요한 원동력이다. 소비자가 공장식 관행 축산 대신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는 농장의 축산물을 선택하면 비록 이들의 운명은 바꿀 수 없을지언정 살아있는 동안 동물들의 삶은 나아질 수 있다. 작금의 99퍼센트 공장식 축산의 판도가 복지축산으로 전환된다면 공장식 환경과 시스템을 통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고통 받는 농장동물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가 가능하려면 우선 소비자가 공장식 축산과 복지 축산의 산물을 각각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달걀 사육환경 표시제의 도입은 그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2018년 2월 축산물의 표시기준이 개정 고시되어 2018년 8월 23일부터 달걀 껍데기에 생산농장의 사육환경 정보가 의무적으로 표시되도록 변경됐다. 포장재에도 표시되면 좋았겠지만 어찌됐든 현재는 달걀 껍데기에 정보가 있다. 일련번호 맨 끝에 1~4까지의 사육환경 번호가 부여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1 방목, 2 축사 내 평사, 3 (소위) 개선된 (배터리) 케이지, 4 기존 (배터리) 케이지이다. 
 
면적만으로 동물의 복지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배터리 케이지가 의미하는 바는 실로 명확하다. 4 기존 (배터리) 케이지 기준은 마리당 0.05제곱미터 면적으로 이는 A4 용지 3분의 2 크기 정도의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3 (소위) 개선된 (배터리) 케이지는 기존 기준을 마리당 0.075제곱미터로 아주 조금 넓힌 것인데 이는 사실상 지난 살충제 달걀 사태로 인해 정부에서 내놓은 보여주기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닭들의 복지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없다. 결정적으로 배터리 케이지 한 칸에 몇 마리 닭이 들어가 있는지는 실제 그 누구도 감독하지 않는다. 즉, 배터리 케이지 자체가 동물복지에 위배되므로 달걀 선택 시에는 사육환경 번호 3과 4는 모두 제외하는 게 좋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같은 단체에서는 이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일리(1, 2) 있는 소비’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에게 동물복지적인 사육환경 번호 1과 2를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1은 방목이고 2는 축사 내 평사 사육인데 동물복지 인증 농장들은 축사 내 평사 사육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방목 사육은 별도의 면적과 운영 원칙 등 준수 기준을 갖추어 동물복지 농장이 다시 방목으로 추가 인증을 받는 방식을 취한다.
 
달걀 껍데기에 찍힌 달걀 사육환경은 향후 포장재에도 알기 쉽게 표시되어야 할 것이며, 달걀 이외의 축산물에 대해서도 사육환경 표시를 확대해 가야 한다. 복지농장 제1의 어려움은 판로 개척인데 동물의 복지를 반영하여 동물을 사육해도 대량인 공장식 축산에 비하여 안정적인 유통망 확보가 어려운 여건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공장식 관행 축산보다 복지축산을 선택해 준다면 압도적인 공장식 축산을 복지농장으로 전환할 수 있고 사육환경이 개선되면 농장동물의 삶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의 위협 

 
과도한 대량 살처분으로 악명 높았던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지난 2018년 3월 18일 발병 확진이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기계적 살처분은 계속되었으며 그 대상이 소에게 잠시 옮겨갔을 뿐이다. 2019년 1월 28일 안성에서 확진된 구제역 사태로 젖소들이 살처분 되었고 어김없이 예방적 살처분이 감행되었다. 특히 백신을 접종하여 원천적으로 감염의 우려가 없는 동물들까지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살처분을 자행하여 백신제 도입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거스른 채 생명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드러냈다.    
 
닭을 비롯한 모든 농장동물에게 소위 ‘예방적’ 살처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다.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 문제에 대하여 농림축산식품부는 개선책을 내놓기는커녕 2018년 9월 27일 발병 반경 3킬로미터 이내 예방적 살처분 강화를 이른바 방역 보완책이라고 발표했다. 각성 없는 생명경시 행정의 연속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동물권 진영은 기계적 살처분에 의존해온 기존의 방역 대신 허술함을 보완할 수 있도록 방역의 체계를 재정비할 것과 역학조사를 강화할 것, 무한정 확대되는 살처분을 제한하고 근본적으로는 공장식 축산의 체질을 개선해 갈 것 등을 주문하고 있다.      
 
국내 방역 시스템은 동물들의 생명을 탁상행정식으로 너무 쉽게 ‘살처분’ 하는 반면 가장 기초적인 방역의 기본을 되레 지키지 않는 등 허술한 측면이 너무 컸다. 농가 중심으로 다니는 위험도 높은 분뇨 차량의 이동 및 소독 여부 등은 확인하지 않으면서 조류독감이 터지고 나면 그제야 부랴부랴 예방적 살처분 범주를 확대하는 것이 마치 최선의 방역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포장되곤 한다. 방역의 기본부터 충실히 하고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애먼 동물의 희생을 줄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공장식 관행 축산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복지농장은 크게 확산되고 있지 못하지만 ‘원헬스’와 ‘동물복지’의 세계적 추세에 힘입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동물복지축산 인증 기준 국내 복지농장은 2019년 7월 15일 기준으로 산란계 133곳(방목 25곳), 육계 69곳(방목 0곳)이다. 유기축산 인증 기준으로는 산란계 13곳, 육계 2곳으로 확인된다. 
 
기계적인 탁상행정 살처분 명령에 맞선 5000마리 닭들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7년 3월 수차례의 조류독감 비감염 판정에도 익산시로부터 끊임없이 살처분을 종용 받던 어느 산란계 농가는 합리적 근거 없는 살처분을 거부하여 닭들을 살렸고 익산시를 상대로 이 잘못된 살처분 명령을 제발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해당 조류독감이 종식된 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잘못된 살처분 명령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건강히 살아남은 닭들의 존재 자체가 잘못된 살처분 명령의 반증이건만 살처분 명령 취소 소송 1심은 안타깝게 기각되었고(2018년 5월 31일) 다가오는 7월 17일 고등법원의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닭들의 억울한 죽음 없어야

 
최근 양계 농가가 닭들을 고의적으로 죽여 보험금을 타가는 사기 사건도 적발됐다. 가축재해보험을 악용한 대국민 생명 살해 사기극이 일어난 것. 가축재해보험은 농림축산식품부 시책으로 폭염, 풍수해 등 자연재해와 전기사고, 화재사고 등으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들은 죽은 닭을 냉동 창고에 보관했다가 폭염이나 화재로 죽은 것처럼 꾸몄는데 죽은 닭의 수량을 부풀리는 것은 물론 살아있는 닭을 굶겨 죽이거나 포대에 넣어 질식사 시키고 심지어 불태워 죽였다. 손해 사정인도 한통속이었다. 지난 6월 17일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충남 논산과 전북 군산 등에서 이 같은 방법으로 30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편취한 혐의로 21명을 검거, 양계장 주인 6인과 축협 직원 2인 등 8인을 구속했다. 
 
가축재해 보험료는 50퍼센트가 국가보조금이며 나머지 10~20퍼센트를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닭들을 죽이며 혈세를 가로채는 지경에 이른 도덕적 해이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문제는 공장식 축산의 생명경시 풍조 속에서 이 같은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돈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닭들의 억울한 죽음은 근절되어야 한다.  
 
닭들의 안녕을 묻기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그만큼 닭들의 편에서 싸울 이유 또한 있는 세상이다.
 
글 /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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