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전면표시제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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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GMO반대 생명운동연대>가 개최한 ‘GMO 완전표시제 10만 명 청원’ 기자회견 ⓒ최준호


지난 9월 23일 국회 앞에 10만 명의 서명용지가 쌓였다. 날마다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이 끊이지 않는 국회 앞이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모인 것이 얼마만인가! 지난 여름, 일간지 한 면을 가득채운 시민 4000명의 목소리가 10만 명으로 확대되어 국회 앞에 모인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바로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하라!’ 이다. 

2001년 국내에 GMO 표시제가 도입되었다. 감자, 옥수수, 콩, 콩나물 이상 4가지 농산물과 이것을 원료로 만든 식품에 GMO를 표시하겠다는 제도다. 당시 유럽과 일본이 GMO 표시제를 도입했고, 우리나라에 GM 농산물을 수출하는 미국은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아 제도 도입 자체가 순조롭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소비자의 선택권과 알권리에 대한 끈질긴 요구와 김성훈 당시 농림부장관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시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GMO 표시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대표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설명회를 개최하고 미국 현지방문을 추진했다. 그 뒤에 미국 대사관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민들, 또다시 거대한 요구에 나서다

어렵사리 도입한 GMO 표시제도는 허점투성이었다. △우선 표시대상 농산물이 콩, 콩나물, 옥수수, 감자로 한정되었다. 그리고 이들 농산물로 만든 식품 중에서도 최종 제품에 단백질이 남아있지 않는 식용유, 간장, 전분당 등은 표시의무를 예외로 뒀다. △또한 실험상의 오차 등을 고려한 비의도적혼입허용률을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당시 유럽(1퍼센트)과 일본(5퍼센트)의 중간인 3퍼센트로 정해버렸다. △유전자조작으로 가장 많이 상업화된 작물이 콩, 옥수수, 유채, 면화인데도 우리나라 제도로는 표시할 기준이 없었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GMO가 사료용으로 들어와서 식용유나 간장 같은 가공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데 이것 역시 표시예외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유럽연합 수준의 강력한 GMO 표시제를 요구했다. GMO를 사용한 모든 식품에 표시를 해서 소비자의 선택권과 알권리를 지키자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농산물 수출국가가 GMO 표시제를 문제 삼을 때 유럽연합이 당당하게 GMO 표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식량자급률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GMO 찬성 연구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GMO를 반대하거나 수입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핵발전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우기는 핵마피아들의 주장과 똑같지 않은가? 시민들이 우려하고 필요로 하는 것, 대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이 공부한 단편적인 지식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언행이다.

제정 이후 GMO 표시제는 몇 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게 아니었다. 그 대부분은 GMO 수입품목이 늘자 그것을 심사하고 수입승인해줄 필요 때문에 행해진 개정이었다. 몬산토, 카길, 바이엘, 신젠타, 다우, 듀폰 등 다국적 농산기업들의 늘어난 수출품목에 대해 심사대상 품목을 확대했던 것이다. 

GMO 완전표시제까지는 아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식품표시제를 개정해 ‘수입승인한 모든 GMO를 표시해야 한다’는 근거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다. 원래 식품표시제 도입 당시에는 식품에 사용된 모든 성분을 포장지에 표시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GMO도 함량대비 상위 5개 품목에 대해서만 표시하면 됐었다. 식품표시제가 개정된 이후, 지금은 식품에 사용된 모든 원료를 표시한다. 원산지와 영양성분도 표시하고,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식품에는 어린이기호식품 품질인증표시까지 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정부와 기업도 식품표시가 소비자와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인정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왜 유독, GMO만은 ‘표시제를 강화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지 알 수 없다. GMO를 찬성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던 근거 중 또 다른 하나는 전 세계 총 GMO 중 5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는 미국 소비자들은 어떤 표시제 없이도 GMO를 잘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에서 GMO 표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청원이 있었다. ‘Initiative 522’로 불리는 GMO 표시법안은 결국 주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식품기업들의 전방위 로비와 홍보가 표시제 도입을 가로막은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요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버몬트 주, 메인 주, 코네티컷 주, 하와이 주, 워싱턴 주, 뉴햄프셔 주, 플로리다 주 그리고 켈리포니아 주까지 속속들이 주 법안으로 GMO 표시제 도입을 제출했다. 홀푸드마켓 같은 주요 식품유통업체도 GMO 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강력한 GMO 표시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유럽연합 역시 시민들의 GMO 표시제 강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원료 뿐 아니라 GMO 사료를 먹은 가축에 대한 표시제 역시 도입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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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에 GM옥수수 사용 가능성을 알리는 표시제. 소비자들은 완전한 GMO 표시제를 원하고 있다


약속은 지켜야한다. 표시제 강화하라!

GMO 표시제를 강화하겠다고 식약처(당시 식약청)가 약속한 지 5년이 넘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에 덴 정부는 제2의 광우병 촛불이 될 가능성이 높은 GMO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약속을 했다. 유럽연합처럼 GMO를 사용한 모든 원료를 표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원산지 표시제도 도입됐다. 식품기업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식품협회(당시 식품공업협회)는 식품관련 학자들과 전문지를 동원해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식품안전제도를 강화하면 ‘식품기업들이 다 죽는다!’라고 대신 소리 지르게 했다.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제도를 힘껏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행정 스타일은 일선 공무원들에게도 전달되는 듯 했다. 식품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은 ‘시민들의 식탁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기업들 앞에서 불호령을 쳤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GMO 완전표시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5년이 지나 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또 다른 약속을 한다. 불량식품을 우리 사회를 망치는 4대악으로 규정하고 추방하겠다고 한다. 평소 원칙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대통령의 말은 신뢰를 얻었다. 식약청은 식약처로 강화됐다. 시민단체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안전보다 안심’이라는 구호도 식약처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경찰도 4대악 추방에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불량식품에 대한 정의가 대통령과 시민들이 달랐다. 식약처는 ‘인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제품’을 불량식품으로 규정한다. 사료용 채소와 비위생적인 제조시설과 이물질 등으로 문제가 된 ‘맛가루’ 사건 때 식약처는 ‘해당 제품이 질과 가격이 낮은 원료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나 완제품의 인체 위해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문제가 된 제조사와 제품명을 밝히지 않았다. 국민적 비난이 일어난 건 당연했다. 

시민들은 식약처의 불량식품 정의는 사실은 불법식품에 대한 정의이고 그것을 막겠다는 것은 식품안전행정의 기본을 하겠다는 것일뿐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들의 요구는 그런 기본 이상이다. 시민들은 재료의 확보와 관리에서부터 취급, 보관,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식품을 원한다. ‘식품을 구매해도 괜찮고, 먹어도 안전한가?’라는 시민들의 질문은 ‘과학적 인체 위해성 따위 말놀음 말고 먹고 안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WHO(세계보건기구)나 FAO(유엔식량기구),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등 식품안전 국제기구에서 논의하는 주요 화두 역시 신뢰다. 인터넷을 통해 시민 스스로 정보를 얻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불안한 원료를 쓰는 식품을 ‘괜찮다,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정부와 기업의 발표를 시민은 신뢰할 수 없다. 


국민의 식탁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

우리 정부의 식품안전 수준은 ‘식품위생법’ 수준에서 멈춰 있다. 2009년 ‘식품안전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법 제정의 원칙과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식품안전’에 대한 정의조차 없다.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식품위생의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2003년 제정된 일본의 식품안전기본법 제3조는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는 국민의 건강보호가 가장 중요하다는 기본 인식 아래 강구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식품안전 정책의 기본이념과 방침을 밝히고 있다. WHO와 FAO 역시 각국의 식품안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만들어 이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식품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라고 각국에게 권고하고 있다. 이 권고안의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원칙이 바로 ‘모든 식품의 처리단계에서 사전예방의 원칙을 도입하여 위해성 감소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WHO의 사전예방의 원칙과 일본 식품안전기본법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식품안전성을 지키라는 것이다. 식품안전을 경제와 돈의 가치가 아니라 생명과 소통의 가치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2008년 광우병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외침이고, 2013년 10만 명의 GMO 전면표시제 시행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뜻이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전국사무처 정책국장 jopan@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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