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곰들도 겨울잠을 자나요? _ 최종욱



겨울아침 특히 눈이 많이 내린 하얀 아침엔, 새벽부터 출근하고픈 마음이 자명종 시계보다 앞서 나를 깨운다. 동물원에 근무하면서부터 직업의 참 재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의 직장들은 항상 출근하기 싫고 나가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조차 모르던 암담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와 이 동물원이 어떤 운명이 닿아 있는지는 몰라도, 자발적으로 1시간 빨리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해서도 심지어 휴일에도 온통 동물원(동물) 생각뿐이다. 어떤 이의 직장이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서둘러 출근해서는 다른 때 같으면 컴퓨터 앞에 먼저 앉으련만 설국의 아침은 세상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한다. 이 새하얀 벌판에 경쟁할 이도 별로 없건만 누구보다 먼저 흔적을 남기고파 달리듯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마치 산책 나온 수캐마냥 누런 오줌발을 언 대지에 골고루 날리기도 한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이들처럼 나 역시 그 노래보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표범이라는 이국적인 단어들에 매료되었다. 이렇듯 새벽녘 칼바람에 맞서 서 있으면 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마치 그와 내가 한 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착각도 잠시뿐 항상 달리는 자 위에는 나는 자가 존재하는 법, 나보다 앞서 간 동물 여러 마리가 있었으니 그 첫번째 주자가 야생고양이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언제 보아도 여유가 묻어 있다. 비록 네 다리를 가진 동물이지만 고양이는 마치 발레리나의 워킹처럼 재주 좋게 한 줄의 발자국만을 나란히 남긴다. 그가 그렇게 정결히 걷는 것은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노숙자는 비참하지만 집 나간 고양이들은 이렇듯 자유로워진다. 그 흐트러짐 없는 발자국은 마치 나더러, 곧게 살다 가신 선지자를 따라 살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그 밖의 발자국은 먹을 걸 찾아 내려온 것인지 그저 산책삼아 내려왔는지 쪼르륵 몇 발자국을 그리고는 비상한 꿩의 발자국, 그리고 다른 계절 내내 안 보이다 그 존재를 드러내듯 지나간 야생토끼의 Y자 모양 발자국이다. 이들은 과연 한 마린지 여러 마린지 그들은 어디서 살다 어디로 가는지 볼 때마다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것은 고라니의 발자국이다. 고라니는 꼭 사슴사 앞에 머물다만 간다. 난 이 고라니가 산에 홀로 살 거라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외로워서 밤에 잠시 자기와 비슷한 사슴들과 노닐다가 가는 ‘밤의 연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의 외로움은 아마도 별 필요없이 길어나 송곳니의 길이만큼씩 커오는 것 같다.

혹시 동물들이 외로움을 알 리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럼 왜 사바나에 그토록 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며, 단독으로 생활하는 동물들도 꼭 무리를 지으려 하는지 그리고 내가 겪은 일들을 설명해낼 재간이 없다. 건강한 사슴을 홀로 놓아두었더니 애간장이 녹아서 다음날 죽어버리고, 새끼를 빼앗긴 원숭이가 그 즉시 생을 포기한 듯 쳐지다가 죽음을 택한 연유들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9시 무렵이면 비로소 동물원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햇살이 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동물들도 이 소란 틈에서 모두 깨어난다. 아니 애초부터 동물들에게 곤한 잠이라는 건 없다. 동물원의 시간은 전적으로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고 동물들도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발걸음은 이제 점점 늦추어지고 동물들과 동물원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행여 간밤에 무슨 일이 없는지 서로 만나서 나누는 인사는 “밤새 (동물들에게) 별일 없지요?”이다. 동물은 사람에 맞추어가고 사람은 동물에 맞추어가는 것, 이것이 자연스런 동물원의 흐름이다.



동물들마다 무척 계절을 탄다. 겨울은 북극곰, 물범, 아메리카 들소(bison)의 세상이다. 북극곰은 아침부터 철문을 두드려대면서, 밥 달라고 답답하다고 한바탕 큰 요란을 떠는가 싶더니 문을 열어주니까 눈밭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와 네 발로 얼음 썰매를 타면서 하얀 벌판을 그의 발자국으로 금세 검게 물들인다. 물범은 밤새 얼음물에서 목욕하다 아침이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일광욕하러 나온다. 배치기로 뭍에서 이동하는 그는 쌓인 눈 위에서 아프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게 너무 좋아, 계속해서 경사지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흡사 미끄럼틀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그의 커다랗고 검은 등은 왠지 허전해 보여 꼭 내가 올라타면 맞을 것 같은데 감히 그럴 용기까지 내볼 생각은 아직은 없다. 고백컨대 지금까지 내가 몰래 타본 동물은 당나귀, 쌍봉낙타 정도이다. 아메리카 들소는 등에 하얗게 눈이 쌓여 마치 원래 하얀 털을 가진 것 같다. 그러다 문만 열어주면 그 특유의 질주 본능을 발휘하여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제 빛깔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의 푸짐한 갈색 털을 보고 있으면 그에게 겨울밤의 추위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성 싶다. 그들을 멸종위기까지 몰아넣은 사람들도 그 가죽을 둘러쓰고 그리 따뜻할 수 있었을까?

사슴대장은 오늘 아침에도 우렁찬 소리로 온 동물원이 자기 것인 양 호연지기를 발산한다. 여기는 모두 내 땅, 여기 암컷들도 모두 내 것이라는 표시이다. 이 사슴에, 그 커다란 뿔 앞에 감히 대적할 천적은 이때만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암컷들과 새끼들부터 배불리 먹이고 다음에 자기가 먹는 자상한 부성애도 겸비하고 있다. 그의 외침은 바깥을 향한 외침이지 결코 내부에서 권위를 세우려는 졸장부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장이 갖추어지고 추위가 만만하게 보일 성 싶은 동물이라도 그 속내는 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엄청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계절이 끝나면 가끔 기력이 풀려 홀연히 죽는 경우까지도 생긴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하는 물음은 동물에 대한 의문 중 수위를 차지하는데, 그들의 승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해야 맞다. 비슷한 체격 조건에서 홀로 싸우면 호랑이가 유리하고, 무리로 싸우면 사자가 유리하며, 겨울에는 아프리카의 사자보다 시베리아의 호랑이가 이길 확률이 더 높다. 호랑이는 언 얼음물을 깨고 그 얼음을 베어 먹으며 가끔은 그 차가운 물에 반신욕까지 해댄다. 그러나 사자는 밤새 오들오들 떨다가 햇빛이 비추면 양지로 나와 드러누워 일광욕으로 배부터 체온을 높인다. 아프리카에서 갓 잡아온 사자라면 겨울나기가 너무 힘들겠지만 동물원에서 잘 견딘 녀석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살아남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나름대로 잘 적응해 살아나갈 수 있다.



원숭이들 역시 열대지방에서 온 원숭이들에게 난방은 필수지만, 온 방을 다 덥히는 방식보다 핫스팟(hot spot)이라고 따뜻한 한 지점을 만들어놓아 취사선택을 하게 하는 게 연료 절약도 되고 그들에게도 좋다. 일본원숭이는 추운지방에서도 산다고 겨울 내내 보일러 한 번 안 틀어주는 진짜 찬밥 신세다. 다른 원숭이에 비해 털이 그리 두텁지 않아도 그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뭉치는 데 있다. 아침에 보면 마치 한 마리 큰 동물인 양 틈 하나 없이 남녀노소 안 가리고 몸을 모아 하나가 되어 있다. 그때는 생존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얼마든지 불사한다.

기린, 얼룩말, 하마, 코끼리는 춥게도 보이고 실제로 추위도 많이 탄다. 기린은 원래가 고혈압환자로 태어난다. 그래야 긴 목을 통해 뇌까지 피를 다다르게 할 수 있다. 때문에 겨울철에 행여 발생할 줄 모를 돌연사를 방지하기 위해 기린사는 24시간 난방체제로 들어간다. 코끼리와 하마는 생전 추운지방에서 안 살기로 작정한 듯 아예 사람처럼 벌거벗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불쌍하게도 이 피부가 트고 피가 나기도 한다. 이들 역시 뜨뜻한 내실이 필요하다. 새들은 겨울이 좋다. 털 고르기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벌레도 없고 공기도 상큼한 이 겨울날씨가 그들에게는 제격이다. 그래서 원앙도 캐나다기러기도 단체행동을 통해서 우애를 쌓고, 결혼을 하며 허니문을 이 기간에 모두 보낸다.

겨울에 그냥 넘어가기 힘든 질문 한 가지는 “동물원 곰들도 겨울잠을 자나요?”이다. 대답은 “안 잔다. 아니, 잘 수가 없다.”이다. 맨날 먹는 똑같은 음식으론 몸 만들기도 힘든 데다 땅굴이나 나무 그루터기도 보이지 않고, 더구나 날마다 밥을 대주니 귀찮은(?) 사람들 탓에 잠자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것이다. 너구리나 오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의 겨울잠은 물론 먹이도 부족하고, 춥기도 해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이 잠도 아주 자는 게 아니라 반은 깨어 있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명상의 초절정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명상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그것 아니던가? 이렇게 생활패턴이 엉망이고 환경이 불편해도, 곰들은 야생에서와 똑같이 어김없이 1월 중순에 세네 마리의 새끼를 낳고 품안에서 기른다. 꼭 그렇게 주기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이들에게 굳이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곳에서 자유에 대한 희망마저 버리면 우리 삶은 없는 거라고,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그 날을 위해 끊임없이 곰의 본성을 단련시키고 있노라고…….’


글·사진 / 최종욱 lovnat@hanmail.net
우치동물원 수의사. 책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2005, 김영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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