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영산강 기행

빛과 소금의 섬

 
신안갯벌
 
작년 3월 전남 나주에서 신안신의중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멀지는 않지만, 철부선으로 2시간 걸린다. 학교 뒤로는 2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낮은 산이 있고 앞에는 넓은 염전이 있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로 전교생은 31명이다. 지난주에는 현관 앞에 유혈목이(일명 꽃뱀)가 똬리를 틀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고, 조금 지나면 교실에까지 도둑게가 들어와서 아이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학생들과 가끔 바다나 소금 등 섬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학생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잡던 보말(바다에 사는 고둥류)은 컸었는데 요즘은 작다고 한다. 나이 들어 보면 어릴 때 아름드리나무가 지금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경험으로 볼 때 그 학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짧은 기간 동안 바다의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도 느끼는 것 같다.
 
시간 날 때마다 염전과 갯벌을 보러 다닌다. 갯벌 주위는 한가하고, 염전에서 소금 생산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느 염전이나 막걸리 한잔하고 가란다. 신안은 영산강 하구가 열려 있는 곳이니 영산강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신안은 작은 섬과 생산성 높은 갯벌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곳이라 생각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총 균 쇠』의 한글판 서문에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서해 갯벌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나라 갯벌의 절반 정도가 신안에 분포한다. 가장 찰지고 싱싱한 갯벌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둘러보는 신안 갯벌 모습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 한강 하구 지역에서 보았던 갯벌에 무수히 뚫려 있던 구멍을 볼 수가 없다. 마른 운동장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요일이면 육지로 나가고 일요일에는 섬으로 들어온다. 여행의 기분을 느끼려 선실보다 밖에서 바다를 지켜본다. 섬과 섬 사이에는 갯벌이 많아 고기 잡는 어선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 섬에 사는 사람도 ‘바다 산골’이라는 말로 신안 바다 생산성에 문제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지구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연안과 갯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신안 섬에서 물고기는 먼바다로 나가야만 잡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문제는 영산강이다. 육지로부터 오는 유기물이 하굿둑에 막혀 신안 갯벌에 뿌려지지 않으니 신안 갯벌이 마른 운동장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영산강 하구 목포와 사람

 
목포라는 이름은 고려 때 나주 목포라는 지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지금의 나주 영산포 지역에 주둔했던 부대가 목포이었고, 조선 초 1432년에 무안 목포인 목포상고(전남제일고) 자리에 당포를 설치하면서 현재 목포가 군항과 창(倉)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50세 이상의 사람들은 5천 년 동안 변화된 것보다 많이 한반도를 바꿔놓았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세계 최고의 나라까지 바꿔 놓았고, 전기도 없던 시대에서 로봇을 활용하는 시대를 이끌었다. 어릴 때는 주판을 배웠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쓴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발전을 환경이 바뀌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각인된 세대들이다. 지구에서 한세대 만에 환경을 모두 바꿀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목포나 영산강 강가에 살던 50세 이상의 사람이 느끼는 경험은 특별하다. 갯벌과 강 하구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마지막 세대이다. 영산강이 하굿둑으로 막히기 전, 전남 무안이나 영암 영산강 변에서 살던 사람은 하늘을 가득 메웠던 새들의 무리를 기억한다. 고희(70세)를 넘긴 어떤 지역민은 갯벌에서 그물로 잡은 도요물떼새를 시장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과 하늘을 덮었던 새의 무리를 이야기한다. 나 역시 1990년대 초 간척지에서 하늘을 가득 메웠던 겨울 철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 줄 수 없는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 
 

영산강 변을 달린다

 
영산강 변
 
목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나주를 향한다. 영산강을 따라 도로와 자전거길이 잘 닦여 있다. 시속 60km의 거리는 영산강의 사시사철 변화를 느끼게 한다.
 
4대강사업이 계획되고 추진되던 시기, 영산강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4대강사업은 영산강의 수계가 아닌 해남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산강의 4대강 계획은 영산강치수계획이 중심이 되었다. 계획에 100년 빈도의 홍수가 있을 때 전남도청이 홍수에 침수될 수 있으니 영산강 물을 해남 쪽인 영암호로 돌린다는 계획이 있었다. 하필 해남으로 물을 보내는 도수로가 영산강에서 수질이 가장 나쁜 곳이었다. 설계를 담당했던 현대엔지니어링과 사업 관계자를 토론회에 불러 가장 나쁜 물을 해남으로 보내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100년 빈도 홍수가 발생하면 저류지를 만들어 물을 흘려보내야지, 강변 둑을 높여 홍수위를 높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을 하며 사업 계획 변경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담당자 등은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이야기만 하였고, 토론회가 4대강사업 진행 과정에 타당성을 제공하는 주민 설명회로 변질하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강변을 지나다 보면 주위에 정자나 한옥들이 많이 보인다. 영산강이 굽이치는 식영정 나루터 주변은 시간이 지나면 우각호가 되었을 모양이다. 물이 느려진다고 ‘느러지 마을’이 있고 옆에 식영정이 있다. 식영정은 무더운 날 도시락 먹으며 한나절 쉬었다 가기 참 좋은 곳이다. 식영정을 넘어 나주로 가는 경치 좋은 곳마다 장춘정, 석관정, 영모정, 미천서원 등이 있다. 기아타이거즈함평전용구장 옆에 ‘갓난쟁이골 전라수군처치사’가 나온다. 대굴포(크게 판 포구라는 뜻)라고도 하는데 조선 초 운하를 파서 해군을 주둔했던 곳이란다. 고려 초 나주 영산포의 수군 기지로부터 조선에 이르는 수군이 영산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좀 더 상류로 올라가면 반남 고분군이 있으니 영산강은 주위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문화의 전성기를 누렸던 영화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은 조용히 현대 굴곡진 영산강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죽산보에서

 
죽산보
 
강 중류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우각호가 있다. 그곳에 죽산보를 만들어 놓았으니 관심이 간다. 낙동강에 있는 우포늪이나 주남저수지와 같이 좀 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생각되지만 이미 조그만 호수만 남고 나머지는 농지로 개량되어 큰 감흥은 없다. 만약 4대강사업을 기획했던 사람이 역사적 지리적 생태적 학습력이 있었다면 우각호의 중요성에 영감을 받아 홍보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승촌보에서 습지가 물을 정화하는 것을 연구했던 적이 있다. 강물이 갈색을 띠는 것을 보면서 강물이 오염되면 하수처리수와 비슷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죽산보의 물도 역시 갈색을 띠고 냄새가 난다. 죽산보를 넘어 나오는 갈색 물이 그들의 측정에서만 어떻게 환경부 수질환경기준 1b(좋음) 물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샛길을 따라 강물에 가서 물색을 보면 강변도로를 달리며 보며 생각하던 강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카카오맵에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스카이뷰를 검색할 수 있다. 예전 영산강의 갈색 흐름이 어두운 색 강물로 바뀌어 깨끗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강물은 거대한 갈색 물 덩어리일 뿐이다. 주위 강변의 풀과 나무의 녹색과 비교된다. 
 
죽산보와 승촌보를 상시 개방하던 날 오전 10시 정도에 나주의 시골 마을 방송에 보를 개방하니 주위에서 어로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조심하라 했다. 하지만 아직도 죽산보는 수위를 낮춘 채로 수문을 닫고 있다. 죽산보 옆 자동차 캠프장 옆에 죽산보 해체 반대의 현수막이 매달려 있다. 
 

영산강 해수 유통

 
나주에서 목포까지 가는 길은 새로 난 직선도로와 영산강 변을 지나는 구불구불한 길이 있다. 대부분 사람은 직선도로를 빠르게 간다. 약 20분 정도가 더 걸리는 영산강 변 길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꾸불꾸불한 도로는 불편할 뿐이다. 가끔 불편한 꾸불꾸불한 길을 막고 죽산보 해체 반대라는 통행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영산강에 해수를 유통하는 것은 강 오염을 해결하고 신안 지역 생산성을 위해 가장 현실적인 문제 해결법으로 보인다. 나주시에서 영산강 위원회를 만들어 해수 유통을 공론화하니 기대가 크다. 값비싼 통행료를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외치고, 가는 길이 늦더라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해수 유통을 외쳤던 분들의 노고가 결실을 맺기 바란다.  
 
글・사진 / 이정식 목포환경운동연합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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