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는 일은 사람 살리는 일

충남 부여군의 한 마을은 식수로 사용되는 지하수가 오염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누가 봐도 준설토 적치장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정부 및 지자체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을 앞 준설토는 대부분 반출됐지만, 지하수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임대료 높여서 땅을 빌렸어라. 원래 이곳에서 임대하던 분께 욕 디지게 먹어 부러지라. 우리가 토지를 뺏은 꼴잉께”
 
전남 나주에서 미나리 농사를 짓던 50대 김 모 씨는 4대강사업으로 쫓겨난 농민이다. 농사 접고 다른 일을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배운 기술도 없고, 더욱이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다시 미나리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원래 경작하던 영산강변만한 농지를 찾는 것 자체가 난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제일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현재의 농지를 얹어서 겨우 임대했다. 그것도 웃돈을 얹어서.
 
김 씨는 이전 임대 농민에게 미안한 심정이다. 같은 농민 처지에서 자기가 땅을 빼앗은 꼴이 됐으니 말이다. 
 
그럼 웃돈에 밀린 임대 농민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다른 곳의 싼 농지를 두고 또 다른 농민과 경쟁을 벌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게 밀려난 농민들은 마치 계속 다른 곳에서 경쟁을 벌어야 한다. 이는 4대강사업의 사회적 영향이 단지 쫓겨난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4대강사업으로 벌어진 농민 간 경쟁은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경남 밀양의 경우 4대강사업 전 하우스 부지 임대료는 평균 1000원이었지만, 4대강사업으로 쫓겨난 농민들이 쏟아지자 평당 4000원까지 올랐다. 토지주 입장에서는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임대농에게는 그만큼 생산비 상승 요인이 됐다. 실제 김 씨의 경우 예전에는 1000만 원 매출에 지출이 20~30퍼센트였지만, 4대강사업 이후에는 70~80퍼센트로 상승했다.
 
농자재와 인건비가 상승한 탓도 있지만, 임대료가 크게 올랐던 것도 원인이다. 게다가 이주한 농지의 생산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아 실질 수입은 더 떨어졌다.
 
하원오 전 부산농민회장은 4대강사업으로 농지에서 두 번 쫓겨났다. 하 전 회장은 “FTA 등 우리나라 농업의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외부적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4대강사업은 농업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만든다더니 100만 명의 농민 일자리 뺏는 것이 4대강사업”이라 평가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망가진 생태시스템, 주민 피해로 이어져 

 
10살 무렵부터 부친에게서 그물질을 배운 류점길 씨는 낙동강 하류 김해에서만 60여 년을 어부로 살았다. 그의 기억 속에 봄철 낙동강은 산란하러 몰려든 물고기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여름철 비온 뒤에는 통발마다 자연산 장어가 가득했다. 가을이면 숭어가 튀어 올라 배만 몰고 나가도 족히 1관(4킬로그램)은 쌓였다고 한다. 겨울에는 아예 물속으로 잠수해서 움직임이 둔해진 잉어, 붕어를 맨손으로 잡아냈다.
 
불행히도 그의 기억은 바로 몇 년 전 얘기지만, 지금은 박제된 상태다.
 
흐르던 강물을 막아버린 4대강사업은 우리 강의 고유한 생태시스템을 지탱가능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그 많던 물고기들은 사라졌고 강바닥에는 썩은 뻘만 쌓였다. 이 때문에 강에 기대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던 어민들의 생계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제발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정부,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하소연을 해 봤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대책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배를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수위 자리도 받아 주지 않는’ 나이 든 어부만이 습관적으로 강에 나가 그물질을 하지만, 기름 값도 안 나오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강은 예전의 강이 아니다. 
 
물속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이전과 다른 현상이 벌어졌다. 나주의 김 모 씨는 “안개가 심각허요. 특히 봄, 가을에는 거의 앞이 안 보이제”라고 말했다. 일조량은 농작물 생육에 필수적 요소지만, 4대강사업 당시 공사 측은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안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말은 달랐다. 나주의 한 과수농가 주인은 “예전에도 안개가 있었지만, (4대강 이후)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된다”면서 “과수원 농약을 10번 치던 것을 15번 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의 낙동강 제내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도 “예전에는 보통 9시면 안개가 사라졌지만, 지금은 11~12시가 돼야 사라진다”며 “전에는 아무리 심해도 가시거리가 한 200미터는 나왔지만 지금은 10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 앞에 현수막 걸고 군청에 항의도 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어서 갑갑하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한강과 금강에서 마찬가지 우려를 했지만, 행정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금강 부여군의 한 마을은 준설토 적치장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마을의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의 총대장균과 질산성질소가 먹는 물 수질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같은 지하수라도 조금 높은 지역은 멀쩡했지만, 유독 적치장 하류 지점의 지하수만 기준치를 초과했다. 환경부는 오염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원인에 대해서는 무응답이다. 군에서는 광역상수도망을 깔아 줬지만, 역시 원인 파악은 하지 않았다.
 
4대강사업 이후 금강의 변화를 취재하고 기록하고 있는 김종술 시민기자(오마이뉴스)는 “누가 봐도 준설토 적치장이 원인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면서 “다른 마을의 준설토 적치장 부근 지하수도 오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환경부와 지자체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4대강사업의 치명적 문제점 중에 하나는 국가에 의해서 발생된 피해가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다. 4대강사업에 따른 공동체 훼손 문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4대강사업으로 공동체 위기 가속

 
전북 익산시 금강포구 마을의 안상일 운영위원장은 1980년대 초반까지 웅어, 황복, 장어 잡이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다. 강과 바다가 막힘없이 이어져 고가의 어종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하굿둑이 들어서자 회유성 어종은 자취를 감췄고 살길이 막막해졌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안 위원장과 주민들은 마을 앞 하중도를 개간해 40여 만 평의 농지를 일궈냈다. 덕분에 익산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아 마을의 60가구 중 절반이 평균 5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몇몇은 억대 농부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4대강사업은 잘 나가던 이 마을에 폭탄을 투하했다. 농민들은 국가 소유의 하천부지이기 때문에 토지보상비가 아닌 1제곱미터당 2140원 하는 농업인손실보상금을 받고 쫓겨났다. 안상일 위원장은 “농사짓다가 땅 빼앗기고 보상금 몇 푼에 땅을 어떻게 구해. 가족 같은 친구들이 다 떠나갔어. 자식들 사는 익산 등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는데 눈칫밥이나 먹고 살겠지. 4대강은 손대지 말았어야 하는데, 손을 대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북 익산시 상당포구 마을의 안상일 운영위원장이 4대강사업으로 빼앗긴 마을 앞 하중도 농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4대강사업은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 말했다
 
나이 든 사람만 지역을 떠난 게 아니었다. 김종술 기자는 “주변 지가가 함께 올랐기 때문에 농지를 마련한다 해도 이전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그 때문에 주로 임대농민이던 젊은 사람들은 아예 농업을 포기하고 인근 공장 또는 도시의 일용직 잡부로 가버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 남게 된 농부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충남 부여군에 사는 정 모 씨는 예전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금강 변에서 농사를 지을 때만 해도 젊은 농군답게 마을 일을 살뜰히 챙겼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급할 때는 내 논, 남의 논 가릴 것 없이 도움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4대강사업으로 그에게 나온 알량한 보상비로는 오를 대로 올라버린 마을 부근 농지는 언감생심이었다. 겨우 구한 농지는 집에서 26킬로미터 떨어진 곳. 농번기 때 그는 새벽에 나가서 해가 떨어져야 집에 돌아오는 출퇴근 농민이 됐다. 더욱이 함께 하던 농민들이 흩어지면서 예전처럼 마을 일을 챙기기 어려웠다. 김종술 기자는 “동네의 큰 일이 있어도 사람이 모이지 않게 됐다”며 “4대강사업 이후에 마을 공동체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을공동체의 위기는 4대강사업으로 심화된 불신 때문에 가속화 됐다. 특히 공평하지 않은 보상비 지급은 주민 반목의 원인 중에 하나다. 평당 20만 원의 토지 감정가가 갑자기 80만 원으로 뛰었고, 50만 원으로 평가된 고장 난 펌프가 500만 원으로 책정되기도 했다. 모두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여전히 남은 사회적 불신

 
낙동강의 한 어민은 어업허가만 있고 실제 어부 생활을 안 하는 사람이 보상금을 더 많이 받은 경우가 있어 불편해 했다. 더구나 동료 어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다른 보상이 나올 수 있어 입을 닫고 있는 모습에 실망한 눈치였다. 광적인 속도전에 매달린 4대강사업은 보상 평가 및 절차가 민주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이들, 예를 들어 정치인 및 토호세력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상대적으로 넉넉하게 보상을 받은 이들은 4대강사업에 대해 긍정적 여론을 형성했다. 반대 입장을 보이는 주민들에게는 ‘니가 뭔데 나라님이 하는 걸 반대하냐’며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마을에서 왕따를 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내가 옆집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용서 못한다”는 것이 김종술 기자가 만난 피해 주민의 말이다. 4대강사업은 신뢰가 기본이어야 하는 마을 공동체를, 그리고 거기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주민들에게 불신과 한을 맺히게 했다. 
 
4대강사업으로 피해를 본 한 주민은 “우리나라는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에게 뼈 빠지게 일한 서민들이 바치는 데다. 난 우리나라 안 좋아한다. 죽으면 다음에 개로 태어나고 싶다. 그게 제일 낫겠다”며 쉽게 해소되지 않을 한을 드러냈다. 또 다른 주민은 “난 4대강 반대보다 지금도 법대로 하라 이거다. 엊그제 시내에서 잠깐 주차하다 딱지를 끊겼다. 강을 살리겠다고 해놓고 세금 엉뚱하게 쓴 걔네들도 딱지 끊어야 되는 게 맞지 않냐. 법을 어기면 딱지를 떼야 맞는데 정부는 안 끊는다”며 분노했다.
 
4대강사업은 과거 타당성이 부족한 대형 개발 사업과 마찬가지로 자연 환경의 훼손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가중시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4대강사업은 대규모 공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돼 그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에게 4대강 피해는 관심 밖이란 점이다.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한 우리 강의 생태시스템이 몰락하면 그 물을 산업의 동력으로 사용하고, 그 물을 먹고 있는 국민들로 지탱하는 우리 사회도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국가기관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4대강사업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았고, 정의롭지 않았고,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속가능하며 정의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 강의 고유성, 다시 말해 4대강의 생태시스템부터 회복시켜보자. 사라졌던 물고기가 돌아오면 사람들도 살 수 있고, 그 물을 마시는 국민들도 건강할 수 있다. 닫힌 보의 수문을 열고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 우리 강의 고유성을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글•사진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