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7] 동강, 너와 함께 흐르고 싶다

동강, 너와 함께 흐르고 싶다
이해선/소설가

요즈음 동강에 대해 한 두마디쯤 안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의 댐 건설 계획 발표와 함께 어쩌면 세계적 비경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탓인지, 사람들 입에 점점 관광명소로 떠올려지고 있다. 동강의 자연생태적 가치가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환경운동가들의 동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사적인 가운데 나는 문득 나의 고향 근처 시화호를 떠올렸다.


개발지상주의 논리에 꿰맞춰져 함부로 개발의 희생양이 된 시화호는 지금 천덕꾸러기가 되어 이리저리 내몰리고 있다. 드넓은 갯벌에서 조개와 맛을 캐고 오뉴월이면 뱃전에서 팔딱이는 새우를 사다 오젓, 육젓을 담그던 고장. 정부에서시화호 담수화정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화호가 그렇게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 조성된 시화·반월공단에 공업용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사람들은 한층 윤택한 생활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시화호는 어떤가. 무지한 정책입안자들 때문에 아무 쓸모도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 악취만 풍기고 있지 않은가. 또한 드넓은 갯벌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 터전을 잃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그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다. 아, 그런데 또 동강을 들쑤시려 들다니.

영동고속도로에서 남원주로 빠져 제천, 영월로 향하는 길목은 초여름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일상의 답답함이 가시는 후련함을 맛보며 점점 깊은 산길로 달리는 사이 어디선가 고즈넉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솔향기가 그대로 스며들 것 같은 울창한 송림을 끼고 유적지 팻말이 눈앞에 들어온다. 충절의 고장 영월,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쫓겨 유배생활을 하다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묻힌 장릉이다. 가슴아픈 역사적 사실에 잠시 숙연해지며 근처 보리밥집에서 곁들이는 영월 막걸리맛이 일품이다.

장릉을 벗어나며 단종애사를 나누는 동안 차는 어느새 섭새마을로 들어선다. 비교적 넓은 강폭을 만나 반가워하는데 울긋불긋한 포장마차와 래프팅예약을 받는 여행사들의 안내문구가 요란스레 다가온다. 이곳이 바로 문제의 댐건설 예정지가 아닌가.

약삭빠른 외지인들이 벌써 돈벌이 수단으로 이곳을 설쳐대고 있는 모양이다. 자연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마당에 이익이나 챙기겠다는 속셈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거운교 그늘 밑에 자리잡고 앉아 햇살 부신 동강을 바라보자 댐 저지를 위해 몇 년째 일하고 있다는 주민의 근심어린 얘기가 들려온다. 생존환경 유지를 외면한 개발론자들의 무모한 발상이 일부 주민들에게 과장되게 홍보되어 순진한 주민들이 큰 빛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 댐건설이 이루어지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개발예정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빚을 내어 과실수를 심어 놓고 댐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살기등등 대치하고 있다는 소리가 가슴을 친다. 1백30리 동강줄기에서도 가장 뛰어난 비경을 지녔다는 어라연 계곡을 먼 발치로 바라보며 고성산성으로 발길을 돌린다.

꼬불꼬불한 농로를 따라 언덕을 차고 올라가는 길은 대형버스가 가기에 힘겨웁다. 조마조마하게 버스에 올라있던 사람들이 결국 언덕배기에서 내리고 만다. 대형버스가 들어선 길 옆의 풀포기가 진저리치듯 떤다. 그 모습이 안스러운 나는 안내자가 손짓하는 고성산성 쪽으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모처럼 산길을 걷는 기분은 아주 상쾌하다. 바람결에 실린 숲속 향기가 코를 간지르고, 검붉게 익은 오디와 산딸기가 즐거움을 한결 보탠다. 그러나 고갯마루가 가파라지면서 숨소리도 점점 가빠오기 시작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깊은 산이 이어질 것 같은데 고개너머에 강이 있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내리막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가벼이 내달리니 드디어 청옥빛 물살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름하여 소사나루.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자갈밭에 주저앉아 잔잔한 물살에 손발을 담근다. 정선아라리 가락이 물결 위로 흐르기 시작한다.아
 
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산을 바라보며 맑은 햇살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따라 나는 마냥 흘러가고 싶다. 버들치와 쉬리와 어름치가 물장구치고, 비오리와 원앙,청둥오리와 노랑할미새가 어울리고, 참나리와 원추리가 수줍게 피어나는 곳. 이름모를 동굴에서 관박쥐와 도마뱀이 튀어나오고, 고갯마루에 걸린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바람에 떠밀리는 곳, 이 곳 동강을 어찌 시멘트 반죽으로 동강내려 하는가.

강가에 대기하고 있던 철선에 사람들이 오른다. 배의 주인인 듯한 뱃사공이 강을 가로지르는 로프를 잡아당기며 강 건너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배에 오르다 물에 빠지는 사람, 잠시 웃고 즐기는 사이 강마을의 햇살이 어느덧 뉘엇뉘엇 산자락으로 숨기 시작한다. 아쉬움을 떨치고 돌아가는 강가 풀밭에 한가로이 풀을 뜯던 어미소가 낯선 도시인들을 배웅하듯 꼬리를 길게 흔든다. 자갈밭에 누워 있던 곱돌 하나도 반짝 눈인사를 한다.

그래, 동강은 가만히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물고기 한 마리, 나비 한 마리와도 어우러져 온갖 것들과 굽이굽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강, 너와 함께 흐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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