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빼앗는 보금자리특별법

박현철 편집 주간 parkhc@kfem.or.kr

 

수도권 녹지축 결딴낼 내곡지구 임대주택단지개발사업

 

노윤철(57) 씨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부친이 호통 치는 공무원 앞에서 당한 수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도심 근교농업지대잖아요. 그땐 여름에 수박 같은 계절과일을 했는데, 밭에 원두막을 지어 스레트를 얹은 게 화근이 됐어요. 담당이 나와서는 ‘누가 그린벨트에다 스레트 지붕 얹은 원두막을 지어도 된다고 했냐?’면서 아들인 제가 보고 있는데도 정말 참기 힘든 막말을 하면서 그냥 허물어버리는 거예요.”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마을 밖 코앞의 양재가 고층빌딩으로 채워지고 그 땅 주인들이 보상금으로 벼락부자가 되어도 노 씨와 그의 이웃들은 개발제한구역에 묶인 땅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제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40년 세월이 그렇게 이어졌다. 땅 팔고 떠날 이들이 다 나가고 농사지어 어렵사리 아이들 다 키운 그이들과 그이들의 마을 선배들은 이제 흰머리 짙은 노인들이 되었다. 노인들의 소망은 ‘내 땅에서 목숨 다할 때까지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마을은 8개의 오래된 자연촌락이 모여 지역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행정구역상 서울, 그것도 강남특구 서초구지만 우리가 아는 서울과는 다르다. 원주민이 주민의 거반이나 되고 그것도 모두 한 다리 건너면 사돈에 사촌인 희귀한 마을이다. 더구나 몇몇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의 집성촌락이다. 남양 홍씨나, 경주 최씨, 김해 김씨, 해주 오씨 등의 가문들이 오래 이 마을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개발제한에 묶인 탓에 재물로는 복을 받지 못했어도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인정과 의리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살았다. 주민들은 수삼 년 간, ‘자기 땅에서 유배된 사람들’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주민대책위’를 만들어 평생 처음 관에 저항하고 있다. 험한 일인데 그래도 젊은 후배들이 총대를 메겠다며 나선 노윤철 씨가 위원장-<서울내곡지구 공공주택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 되고 8개 마을 대표들이 위원이 됐다. 그들의 평균연령대는 70대 후반이다.
150만 호 건설 칼바람 최우량 그린벨트를 베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9.19대책을 발표했다. 대규모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을 통합해 2018년까지 매년 50만 호씩의 총 500만 호를 공급한다는 건설정책이다. 그 가운데 150만 호는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 70만 가구와 각종 임대주택 90만 가구로 구성되는 이른바 ‘보금자리주택’이다. 보금자리법은 바로 이 150만 호 건설 편의를 위해 제정한 특별법이다. 사업주체는 국토부 산하 공공주택건설추진단으로, 실제 시공은 대한주택공사와 각 시도 자치단체 소속 건설개발공사가 맡는다. 서울의 경우 서울도시개발공사(SH공사)가 맡는 식이다.
싼값에 많이 지으려면 땅값이 문제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의 하나가 그린벨트를 풀어 택지로 삼는 것이다. 이미 세곡지구와 우면지구 고양시 원흥지구, 하남 미사지구 등 4개 시범지구가 지정돼 6만 호를 건설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다. 향후 10년간 차례로 사업지구를 지정하고 개발할 예정이다. 내곡지구 사업계획은 현재 SH공사에 의해 수립되어 그 제안서가 국토부에 올라가 검토를 받고 있다.
이제까지 그린벨트를 푼다고 하면 지역주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왜 <서울내곡지구 공공주택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자기 동네를 그린벨트에서 풀어준다는데 반대운동에 나섰을까? 보금자리법은 사업지구로 삼는 그린벨트해제의 기준을 ‘불법축사, 비닐하우스 밀집 등 보존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개발제한구역 조정 및 관리 계획」 국무회의, 08.9.30)’이라고 한정했었다. 김영란 강남서초환경연합 사무국장은 이 전제와 내곡지구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고 밝혔다. 
“마을에 새로 지은 비닐하우스가 많지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여기가 보금자리사업지구로 지정된다는 말이 돌자 보상금을 노린 사람들이 형편 딱한 주민들에게서 아주 똥값에 땅을 사서는 농사는 실제 관심 밖이면서 시설만 저렇게 해놓은 거예요. 투기하는 이들이 자꾸 쑤석거려 놓으니 이러다 보상도 못 받고 토지만 수용

되겠다 싶어 일부 겁먹은 주민들도 동조하고 있는 겁니다. 전에는 비닐하우스가 모든 농지의 10퍼센트 정도였어요. 그러니 정부가 아주 양호하게 관리되던 그린벨트지역을 개발한다고 소문을 내서 보존가치가 낮은 지역으로 바뀌도록 유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닐하우스가 늘고 있다 쳐도 이 지역 환경생태는 여전히 좋다. “마을 밖이 경부고속도로 서울 진출입지대예요. 거기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청계산입니다. 여기다가 세곡지구에 짓는 15층 아파트를 지어보세요. 청계산에서 이쪽을 보면 아마 아파트만 보일 겁니다. 마을에서 청계산은 아예 못 보게 되겠죠.” 사실이다. 노 위원장을 따라 오른 청계산 중턱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거기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청계산에 별로 오르고 싶을 것 같지 않다.
청계산은 그냥 홀로 선 산이 아니라 수도권중심녹지축을 형성하는 산들 가운데 하나다. 마을 내부까지 봉우리를 흘려보내고 있는 인릉산과 이어지면서 녹지축이 이어져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내곡동은 관악산과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부녹지축과도 면해 있다. 수도권의 두 주요 녹지축 사이에 존재하는 40년 그린벨트 마을, 그것이 내곡동인 것이다.
“여기다 고층 아파트 대단지를 세우는 거예요. 농토를 수용해서 말이죠. 40년간 재산권 규제도 받아들이고 살다 이제 늙어 자연과 함께 농사짓다 가려는 사람들한테 국가가 이럴 수 있습니까?”

보금자리법, 주민과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 빼앗다
국토부가 내곡동 일대에 추진하는 보금자리주택 건설 규모는 81만7000제곱미터에 5400가구나 된다. SH공사가 시공사가 된다. 이 사업이 문제인 건 내곡동과 청계산 인근에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와 지자체가 걸어놓은 각종 규제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 말고도 청계산 야생동물보호구역, 청계산 생태경관보전지역, 헌인릉 생태경관보전지역, 도시자연공원지역, 군사시설보호구역이 이 마을에 붙은 다른 이름들이다. 한 마디로 자연환경이 아주 좋은 곳이니 개발하지 말라는 땅이다. 생태자연도 1등급지인 인릉산 줄기가 마을을 관통하며 양재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환경부는 이 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해 공공주택개발사업을 하겠다는 국토부의 제안을 사전환경성검토 부동의라는 형식으로 번번이 거절해왔던 것이다. 보금자리법에 의한 사업추진 이전에 이미 국민임대주택건설특별조치법에 의해 총 3차에 걸쳐 개발이 시도됐었고 그 때마다 환경부는 녹지축 훼손, 야생동물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구역 훼손, 기존 마을과 상충 등의 이유로 사업 부동의 결정을 하거나 사업 규모를 반 이하로 줄이는 실제적 부동의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보금자리법에 의해 오히려 2006년 최초 국민임대주택지구 제정 시도 때보다도 규모가 더 커진 8만 제곱미터 이상의 대형사업으로 확대되어, 주민 동의는 생략한 채 일방적 사업 추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민주적인 행태가 가능한 것은 보금자리법이라는 특별법이 환경부 동의 없이도 사업을 가능하게 하고 각종 개발관련 행정규제도 의제처리로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제 몸을 던져 삽차를 막아야 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30회 이상의 공문을 발송하고, 국토부를 항의방문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집회를 여는 일은 주민대책위원들이 평생 처음으로 하는 ‘관에 대서는 일’이다. 늙은 대책위원들이 절절히 토로하는 억울함은 이런 것이다.
“서민 보금자리 짓겠다며 멀쩡한 다른 서민들 보금자리를 허물려는 게 이치에 맞습니까? 야생동식물들의 보금자리를 뺏는 건 또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