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존재와 공존을 꿈꾸는 세상

영화 『기묘한 가족』, 한국에 나타난 4세대 좀비

 
 
2019년 2월 개봉한 김민재 감독의 영화 『기묘한 가족』은 좀비란 개념조차 모르는 충청도 어느 시골에 한 제약회사가 당뇨병 치료제 불법 임상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좀비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간다. 그 중심에는 가족애라곤 없이 그저 돈에 집착하며 자기 살길만 찾거나 무기력한 콩가루 가족이 있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좀비는 막내 딸(이수경)이 ‘쫑비(정가람)’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린다. 쫑비의 느릿한 행동과 멍한 표정은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론 애잔하다. 시골 할매에겐 낮술에 맛이 간 부랑자로 취급당하고, 동네 아이들에겐 거지라며 돌팔매질을 당한다. 동네 믹스견마저 우습게보고 달려든다.
 
아버지 만덕(박인환)은 화장실로 숨어든 쫑비를 변태로 취급해 변기용 ‘뚫어뻥’으로 혼을 내다 팔을 물린다. 사실 쫑비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며 양배추를 통으로 씹는 걸 좋아하는 채식주의 좀비다. 막내는 쫑비가 양배추에 물린다 싶을 땐 케첩을 잔뜩 뿌려 주며 챙겨준다. 읍내로 데려가 새 옷도 사줬다. 미장원에서 이발과 피부화장을 시키고 나니 주변 여자들이 부러워할만한 잘생긴 남친이 됐다. 그야 말로 꽃미남 좀비다. 
 
『기묘한 가족』은 이전 좀비 장르와 다르게 인지능력을 지닌 좀비가 등장하는 2013년 허리우드 작 『웜 바디스』의 ‘좀비 로맨스’를 한국 버전으로 담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좀비가 돼서도 사람을 물지 않고 좋아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켜준다는 설정은 2008년 영화 『데이 오브 더 데드』를 떠올리게 한다.
 
쫑비에게 물린 날 밤새 이불이 흥건해 질정도로 땀을 쏟아낸 만덕은 몸 상태가 변한 걸 확인한다. 흰머리가 사라지고 얼굴의 주름도 확연히 줄었다. 남성의 정력을 말해준다는 오줌 빨도 변강쇠 부럽지 않다. 동네 노인들은 하루아침에 회춘한 비결을 묻는다. 곧 새장가 들게 된 노인은 신랑 구실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만덕에게 애걸복걸 매달리고 비밀을 말해 주는 조건으로 돈까지 건넨다. 만덕은 쫑비가 회춘의 비결임을 생각해 내고, 큰 아들(정재형)과 며느리(엄지원), 작은 아들(김남길), 막내 딸과 함께 ‘좀비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회춘 욕망은 발 없는 소문이 돼 만덕의 집을 문전성시를 이루게 한다. 
 

잘 버무린 좀비 영화

 
그렇게 쫑비 덕분에 가족은 만덕이 돈을 들고 하와이로 튀었음에도 10년 전 망했던 주유소를 재 오픈할 수 있는 돈을 벌게 되고, 노인들이 절대 다수인 시골 마을엔 요상한 생기가 넘쳐난다. 둘째 아들은 이참에 제2의 비아그라로 대박을 노리는 서울의 제약회사에 쫑비를 실험 재료로 넘기려 한다. 그러나 순리를 거스른 욕망은 순식간에 재앙이 되고, 이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가 일어난다. 마을의 모든 좀비들이 주유소로 몰려드는 상황에 놀란 며느리는 예정보다 앞서 해산을 한다. 자기 살길이 우선인 콩가루 가족들에게 닥친 절체절명 상황에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기묘한 가족』은 『웜 바디스』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시종일관 코믹한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맛있는 비빔밥처럼 익히 봐왔던 여러 좀비 영화의 상징들을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잘 버무렸다는 점이다. 특히 결말에서 가족들과 쫑비, 만덕의 활약은 상징적 의미를 띄면서도 빵 터지게 만든다.  
 
『기묘한 가족』에 등장하는 좀비 코드를 이해하려면 이 장르의 특징부터 살펴봐야 한다. 좀비는 뱀파이어와 함께 초자연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고딕 호러(gothic horror) 장르의 대표적 창조물이다. 둘 다 언데드, 즉 ‘죽지 않는 존재’라는 점과 전염을 통해 개체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 원형은 1897년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통해 형성됐다. 소설에서 드라큘라는 예수에 반대되는 인물로 묘사되면서 빛과 십자가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대부분 뱀파이어 장르는 귀족 출신으로 창백한 피부, 뛰어난 육체 능력과 함께 변신 능력을 지니며 흡혈로 생명을 유지하는 신화적 존재로 묘사된다. 또 이성을 유혹하는 강력한 성적 매력이 있는 것으로도 그려진다. 
 
좀비는 서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탄자니아 등에서는 마녀들이 죽은 시체를 노예로 부린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미국에서 좀비 장르가 시작된 데 절대적 영향을 미친 건 카리브해의 섬나라들, 특히 아이티였다. 이유가 있다. 18~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은 식민지 확보 경쟁에 돌입하면서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잡아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부려먹었다. 미국인들에게 아이티 노예의 삶은 ‘살아 있는 시체’와 다를 바 없이 비춰졌다. 여기에 민간 신앙인 부두교 좀비 설화가 덧붙여지면서 최초의 좀비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좀비영화가 1932년 작 『화이트 좀비』였다. 이를 1세대 좀비라고 부를 수 있다. 1세대 좀비는 권력자에게 조정당하는 희생자이며, 핍박 받은 당시 하층민의 삶을 상징화했다.
 
문화 코드는 시대 상황에 따라 수정된다. 뱀파이어, 좀비 장르도 마찬가지다. 1930~194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인기를 끓었던 뱀파이어 장르는 1980년대 AIDS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오염된 피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일어나면서 다시 인기를 모았다. 영화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1992년 『브람 스토커의 뱀파이어』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어 1994년에는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개봉했는데, 이 시기 뱀파이어는 피에 대한 절대적 갈구보다 인간의 감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2008년 『트와일라잇』에서는 로맨틱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좀비 캐릭터의 변화

 
좀비도 달라졌다. 1세대 좀비가 누군가의 조정을 받는 존재였다면, 2세대 좀비는 느리지만 맹목적인 굶주림으로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현재의 고딕 호러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좀비는 ‘좀비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 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형성됐다. 로메로 감독은 1978년 『시체들의 새벽』, 1985년 『시체들의 날』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공포영화로서 좀비 장르의 특징을 더욱 공고히 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당시 제작비 11만4000달러, 현재 환율로 치면 1억3천만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들어 빅 히트를 쳤다. 『시체들의 새벽』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흥행해 제작비의 85배나 되는 5500만 달러, 현재 환율로 625억 원이란 돈을 벌여 들였다. 
 
영화사가들은 로메로 감독의 고딕 호러 좀비가 흥행한 배경을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젊은이들의 상처, 베트남 전쟁과 미국 내 만연한 인종차별 비판의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또 인육을 찾아 맹목적으로 돌아다니는 좀비의 모습에서 소비주의에 물든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의식이 담겨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3세대 좀비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리면서 개인주의가 팽배한 대중을 상징하듯 이 시기 좀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대니 보일 감독의 2002년 작 『28일 후』에서 처음 등장한 달리는 좀비는 이전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가 아닌 맹렬히 달려드는 공포를 만들어 냈다. 또한 3세대 좀비 영화는 좀비보다 더 악독한 생존자가 등장하는 게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좀비 영화 제작편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테러와 자연재해는 좀비 바이러스처럼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근원적 공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문화평론가 후지타 나오야는 『좀비 사회학』에서 “좀비란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무의식을 표현한 존재”라며 좀비 장르에서 특성 변화는 결국 사회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 편과 다른 존재 사이에 커다란 벽을 쌓고, 우리 편만 안전하면 된다는 인식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특성이라 한다. 나오야는 이를 ‘좀비 포맷’이라 부른다. 좀비 포맷 하에서 우리 편이 아닌 존재는 차별과 혐오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웜 바디스』와 같이 좀비와 공존하는 영화를 주목한다. 
 

우리는 다른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4세대 좀비가 바로 『웜 바디스』와 『기묘한 가족』에 등장하는 굼뜨지만 인지능력을 지니며 사람과 공감하며 사랑하고 그들을 지키는 좀비다.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좀비는 억압받는 소외 계층, 소비에 중독된, 즉 돈에 집착하는 이들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에 빠지며 비주체적인 사람들도 좀비 특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묘한 가족』의 무기력한 아버지와 큰아들, 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며느리와 작은 아들, 그리고 비주체적인 막내 딸까지 모두 좀비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감독의 의도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얼마쯤 좀비 속성이 있다는 걸 지적하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4세대 좀비 쫑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 대상을 만드는 사회보단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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