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분진피해 입증, 논란 넘어 주민건강대책 시급 / 고정근

시멘트공장 마을에 가면 종유석처럼 두텁게 쌓인 시멘트 분진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분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창틀에 두텁게 쌓이고, 가끔 하늘에선 시뻘건 비가 내리기도 한다. 화학공장에서나 날 법한 매케한 냄새는 특히 비 오는 날 공중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바닥에 깔려 코를 지독히도 자극한다. 이는 단순히 주민들의 불편 수준이 아니었다. 몸이 약한 어르신들부터 서서히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이 따갑고 한밤중에 마른 기침을 하고, 피부에는 이상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이런 이상 증상은 몇몇 사람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원인 모를 병에 서서히 아파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직감적으로 시멘트공장에서 나오는 분진, 악취 등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공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 일축했다. 정부당국도 이들 소수의 목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잿빛 눈 내리는 마을 공해병 조사
‘시멘트 공장 밀집 영월, 후두암 전국 3배’ 이 뉴스는 2006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동안 지역에 고립됐던 피해의 목소리가 일순간 전국적 이슈로 부각됐고, 공중파 방송, 일간지 등 각종 언론사들이 영월을 주목했다. 시멘트 공장의 공해병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는 드디어 이 지역에 역학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9월 국립환경과학원은 시멘트공장 주변지역 주민건강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주민들은 국가기관의 건강조사를 한편으론 반겼지만, 다른 한편으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쌓여있었다. 그간 몇 차례의 환경조사들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피해가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 태도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불신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공장에 면죄부만 주는 것 아닌가?’

이런 불신은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피해를 입증하고자 하는 의지로 모아졌고, 환경정의와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자체 피해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조사는 과학원과 동일하게 9월부터 시작했다. 애초 한두 달 정도면 조사를 끝낼 것으로 예견했지만, 상황은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시멘트 공장은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조사 자체를 방해했다. 하청직원을 동원시켜 주민설명회를 원천봉쇄했고, 공장에서 사주한 건장한 청년들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시멘트공장과 관련 있는 가족은 밥줄이 끊길까 공장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조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이번에 물러서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깊게 배어 있었다. 결국 물리적 충돌을 피해가며 가가호호 방문하며 설문과 소변을 어렵게 받아냈다. 이렇게 해서 4개월에 걸친 조사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3개 시멘트 공장 밀집지역, 환경성 질환 60퍼센트
환경정의와 주민대책위가 조사한 곳은 강원도 영월과 충북 제천이다. 이들 지역은 3개 시멘트 공장이 10리 안에 몰려있는데 조사대상은 쌍용과 아세아시멘트 공장과 반경 500미터, 현대시멘트와는 1킬로미터 내에 있는 마을로 잡았다. 그리고 이들 지역과 비교평가를 위해 시멘트공장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원주 광격리를 대조지역으로 삼았다. 조사는 크게 2가지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환경성질환 평가와 소변검사를 통한 중금속 노출평가다. 조사에는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마을주민 270여 명과 대조지역 100여 명이 참여했다.
조사결과, 시멘트공장이 있는 3개 마을주민의 60퍼센트 이상이 천식 및 호흡기질환, 알레르기 비염, 피부질환 증상을 보였다. 한밤중에 마른기침을 하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 눈 따가움, 코막힘 및 가래, 피부가려움 등의 증상을 공통적으로 호소했다. 이는 대조지역이 불과15~20퍼센트에 머문 것과 비교해 3~4배나 높았다. 설문에 응한 주민들의 소변을 분석해본 결과, 시멘트 공장 주민은 대조지역에 비해 크롬과 수은이 2~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특히, 크롬은 대표적인 발암물질로 시멘트의 부원료로 사용되는 제철소 슬래그에 고농도로 들어있는 물질이다. 조사대상자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와 중금속 결과를 통계분석(다변량 로지스틱 회귀분석) 해봤더니, 크롬 농도가 높을수록 호흡기질환 및 피부질환이 높게 나타났다.

과학원 의도적 물 타기 의혹
환경정의보다 앞서 발표한 국립환경과학원은 “시멘트공장 주변지역 주민과 초등학생에서 알레르기, 호흡기 증상 유병률이 일관되게 증가된 소견을 보이고, 지역에서 채취된 분진이 면역저하와 염증반응을 가져오는 것으로 보아 공장 주변 분진오염에 의하여 주민과 어린이들이 호흡기 및 알레르기 관련 질환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업계뿐만 아니라 환경부에서조차 이 결과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역주민의 중금속 노출 평가다. 과학원 조사결과 시멘트공장과 대조지역 간 체내 중금속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근거로 환경오염이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 임상검사에서도 두 지역 간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한 설문조사만을 갖고 건강피해를 운운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리는 업계뿐만 아니라 환경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미 환경보건 전문가의 과학원 보고서 검토과정에서 그릇된 것임이 지적됐다. 애초 과학원은 조사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석하려 했으나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밤 12시 가까이 면밀히 검토한 결과, 결과보고서는 상당 부분 왜곡, 고의누락, 축소해석, 조사방법 오류 등의 문제를 않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숨겨졌던 피해결과가 드러나게 됐다.

사회적 논란 넘어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과학원의 조사가 일부 한계가 있었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들도 도출했다. 환경오염과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천식, 폐쇄성 폐질환, 알레르기성 비염, 결막염, 피부염 등의 질환 유병률이 높았고(이는 환경정의 조사결과와 일치함), 초등학교 학생의 경우 기관지 과민성 양성률도 비교지역보다 높았다. 그리고 공장인근지역에서 채집한 분진으로 세포 독성시험을 한 결과, 대조지역에 비해 면역저하와 염증반응, 호흡기질환을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환경정의 조사에서 시멘트공장 지역이 대조지역보다 크롬 등 체내 중금속 수치가 2~3배 높은 것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처럼 과학원과 환경정의 조사를 상호 보완적으로 해석한다면 주민건강피해는 좀 더 명확해진다.

시멘트공장 주민건강피해는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 논란거리였다. 주민들은 그 논란 속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 국가기관과 민간 환경단체에서 건강조사결과 공통되게 피해가 드러났다면 이제 논란을 넘어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민할 때다.

지난 7월 1일 정부는 주민대책의 일환으로 호흡기 및 알레르기 질환 증상 호소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단순히 증상과 병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공해피해 규모를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질병등록을 통해 체계적인 주민건강관리로 전환하는 것이 조금 더 책임 있는 태도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아직 역량이 되지 않는 지역보건소에 맡겨서는 안 된다.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과 연계해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업계에서도 도의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분진 등 환경오염을 차단하는 것은 기본적인 조치일 것이고, 더불어 환경기금 등을 조성해 주민건강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피해에 대해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간 반목과 갈등관계에 있던 시멘트공장과 지역사회가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고정근 ecokjk@naver.com
환경정의 기업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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