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과 고질라

할리우드 『고질라』 시리즈가 누락한 진실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한 할리우드가 일본 영화사와 손잡고 거대 괴수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몬스터버스(Monsterverse) 시리즈를 내놨다. 1950년대부터 일본 괴수 캐릭터를 대표하는 고지라(ゴジラ)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선 ‘신적 존재(God)’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고질라(Godzilla)라고 불린다(할리우드 배우는 ‘갓질라’라고 발음한다).
 
몬스터버스 시리즈는 2014년 『고질라』를 시작으로 2017년 『콩: 스컬 아일랜드』에 이어 2019년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제작됐다. 내년엔 시리즈 네 번째로 고질라와 킹콩의 혈투를 다루는 『고질라 VS 콩』이 개봉될 예정이다. 할리우드 고질라는 일본 원작에서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악한 괴수가 아닌 인류가 망가뜨린 지구의 자연 질서를 회복시키는 착한 괴수로 변주된다. 고지라와 고질라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혹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영화 『식스센스』의 대사처럼 왜곡된 지점은 없을까?
 

수소 폭탄으로 등장한 괴수

 
고질라의 모태인 일본 고지라는 ‘핵실험과 방사능 공포’를 배태한 존재다.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 10월 미군은 전후 핵폭탄 실험 계획인 ‘교차로 작전(Crossroad Plan)’을 수립했다. 이 계획의 하나로 1954년 3월 1일 ‘브라보’란 이름의 수소폭탄을 서 태평양 마셜제도 비키니 섬 일대에 떨어뜨린다. 핵분열과 핵융합이 연달아 일어나는 수소폭탄은 일반 핵폭탄에 비해 50~100배 위력을 지녔다. 당시 미군은 위력을 잘못 계산했고, 그 때문에 위험지역 밖에서 조업하던 일본 참치 잡이 어선 500척, 1만 명의 선원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그러나 당시 냉전체제하에서 미국과 일본 정부는 단 200명만 피폭 환자로 인정했다. 니시우 바쿠의 『세계핵사고사』에 따르면, 나중에 실험을 주관한 미군 함정만 하루 전날 수소폭탄 영향권 밖 안전지대로 대피했고 수소폭탄 실험이 방사선 인체 영향을 조사하는 ‘인체실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사람들의 분노와 울분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같은 해 11월, 이런 일본인들의 파토스를 반영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수폭대괴수영화 고지라』였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가 최신 무기로 대항해 보지만, 막강 피지컬 파워에 입에서 뿜어내는 방사선 열선(Radioactive Heat Ray)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고지라에겐 역부족이었다. 일본의 한 박사가 개발한 ‘옥시즌 디스트로이어(Oxygen Destroyer)’라는, 주변 산소를 모조리 없애는 강력한 화학물질로 가까스로 막아 내지만, 시리즈 2편부턴 더 강력하고 똑똑해진 고지라가 등장해 도시를 파괴한다.
 
냉전시대인 1950년대는 핵실험과 방사능 공포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를 반영하듯 1953년 미국에선 미군의 북극해 부근 핵실험으로 빙하 속에 갇혀 있던 이구아나 형 거대 공룡 리도사우루스 깨어나 뉴욕을 초토화시킨다는 『심해에서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고지라 탄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냉전시대 방사능 공포는 『고지라』를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토록 했다. 당시 『고지라』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1951년 작 『라쇼몽(羅城門)』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함께 일본 영화를 상징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방사능 괴수 바람은 대양을 넘어갔다. 1955년 미국에선 필리핀 부근 수소폭탄 실험 때문에 방사능 돌연변이 거대 문어(북유럽 신화 속 크라켄과 같은)가 미국 샌프란스시코를 공격한다는 『그것은 심해에서 왔다 It Came from Beneath the Sea』라는 영화가 제작됐다.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았다. 1964년 중국(당시는 중공)이 신장 위구르 타클라마칸 사막 부근에서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1967년 이순재, 남정임 주연의 우리나라 최초 SF 영화 『대괴수 용가리』가 제작됐다. 영화는 핵 실험으로 깨어난 괴수가 (지하로 이동해) 판문점부터 내려와 서울을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1998년 미국에선 프랑스의 남태평양 핵실험으로 돌연변이 이구아나 고질라가 미 서부 도시를 덮친다는 영화도 제작됐다.
 

지구를 수호하는 방사능 괴수?

 
할리우드 판 몬스터버스의 시작인 2014년 『고질라』는 거대 버섯구름이 일어나는 비키니 환초 핵실험 장면부터 출발한다. 미군은 외부적으로 핵실험이라 공표했지만, 1954년 수소폭탄은 바다 속 고질라를 없애기 위한 공격이었다는 게 영화 설정이다. 고질라는 방사선을 주식으로 삼는 고대 생물이다. 지상의 방사능 수치가 낮아지면 지구 핵 방사선을 섭취하기 위해 심해에서 동면하듯이 있다가 핵실험을 계기로 지상으로 올라오게 됐다. 미국은 고질라와 같은 거대 괴수 연구를 위해 다국적 비밀기관 모나크(Monarch)를 구성한다.
 
핵실험과 세계 곳곳의 핵발전소 건설로 지상 방사능 수치가 높아지자 이를 에너지로 삼는 다른 괴수가 등장했다. 미확인 거대 육상 생명체(Massive Unidentified Terrestrial Organism)라는 의미로 무토(Muto)라고 불린 한 쌍의 거대 괴수들은 산란을 위해 핵폭탄, 핵발전소 등 방사선 먹거리를 찾아 하와이,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를 초토화시킨다. 모나크 소속으로 고질라 특성을 연구하는 세리자와 박사는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균형을 회복하려는 힘이 있다.”며 “나는 그게 고질라의 힘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고질라는 2대 1의 악전고투 끝에 자신의 전매특허인 방사선 열선으로 암수 무토 모두를 제압한다.
 
2019년 『고질라』에선 더욱 강력한 괴수가 나타난다. 고질라는 소양강댐만 한 크기(120미터)에 무게 10만 톤으로 그려진다. ‘괴수의 왕(King of The Monster)’을 두고 필연적으로 경쟁하는 기도라(Ghidorah)는 외계에서 온 존재로서 63빌딩보다 더 큰 크기(160미터)를 자랑한다. 머리 셋에 날개가 있는 공룡 괴수 기도라는 태풍을 동반하며 번개를 뿜어낸다. 이 외에도 ‘고대 타이탄’으로 통칭되는 (일본 『고지라』 시리즈에 나왔던) 거대 괴수가 다수 등장한다.
 
고질라와 기도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남극해에서 만난 고질라는 기도라를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왼쪽 머리를 뜯어내며 우세를 점한다. 이대로라면 지구 괴수 대표가 외계 괴수를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수뇌부는 두 괴수를 모두 없앨 비밀무기 ‘옥시즌 디스트로이어’ 미사일을 발사한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기도라는 멀쩡한 반면 고질라는 방사능 수치가 떨어지면서 생체반응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고질라가 사라진 세상에서 기도라는 괴수의 왕을 자처하고, 각 지역 괴수를 조정해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간다.
 
모나크 과학자들은 고질라가 죽지 않고 심해 깊은 곳에 숨을 고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곳에 메가톤급 핵폭탄을 터트려 고질라의 낮아진 방사능을 일시에 보충해 준다. 미국 동부 연안 보스턴 야구장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괴수의 여왕’ 모스라(Mothra)의 도움을 받은 고질라는 온몸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방사선 열선으로 기도라를 물리치고 다른 괴수들의 경배를 받는 진정한 몬스터의 왕으로 등극하며 포효한다.
 

방사능 오염 외면 『고질라』 시리즈

 
2019년 『고질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영화는 거대 괴수들 때문에 지구 생태계 시스템이 복원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여준다. 구체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태평양 고질라 이동 통로 주변으로 산호초 지대가 회복되면서 어류 개체 수가 증가하고, 아마존 밀림이 회복되는 등 인간이 망친 자연이 회복된다는 내용이다. 앞선 장면에선 고질라와 무토가 싸워 파괴됐던 샌프란시스코도 자연 생태계가 빠르게 회복 중이라 전한다.
 
SF 영화 장르는 과학 기반 허구의 예술이다. 가상의 현실 또는 거짓을 과학으로 가장 그럴듯하게 꾸며내야 공감을 얻는다. 몬스터버스 시리즈 『고질라』는 어떨까? 결정적으로 영화는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을 누락시켰다. 2014년 『고질라』에서 무토가 핵발전소를 점거하고 방사선을 흡수한다. 왜 공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나크의 세리자와 박사는 “무토 자체가 방사능 덩어리이기 때문에 죽이면 방사선 누출로 수백만 명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런 무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죽는다. 그것도 암수 두 마리가. 영화에서 언급하진 않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심각한 방사능에 오염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고질라는 방사능 그 자체다. 게다다 메가톤급 핵폭탄 방사선을 흡수했다. 고질라가 움직이는 건 마치 방호벽 없는 원자로를 이동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질라의 공격 방식인 방사선 열선은 말 그대로 몸 안에 축적된 방사선을 내뿜는 것이다. 역시나 언급되지 않지만, 고질라가 기도라와 싸웠던 보스턴 역시 방사능에 오염된 도시가 됐을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이 지역은 사람 접근을 통제한다. 사람 없는 세상에서 생태계는 간섭 없는 만큼 자란다. 그러나 이런 지역의 생태계가 회복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치명적인 방사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아베 정권은 방사능 관리가 잘 되고 있다며 이 지역이 회복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아베 정권은 내년 올림픽에 후쿠시마 농산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류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고이데 히로아키 전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 조교에 따르면 망가진 원자로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7천 발 분의 세슘 137이 남아 있다고 한다(『탈핵신문』 2019년 7월 호). 이런 방사능 오염수가 방류되면 우리도 영향을 받게 된다.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을 누락시킨 『고질라』 시리즈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에 억지 쓰는 아베 정권이나 도긴개긴처럼 보인다. 다만 영화는 영화로 끝난다. 방사능 오염 공포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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