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아직 늦지 않았다”

장재연 <숲과 나눔> 이사장(왼쪽)과 크리스 조던 다큐멘터리스트이자 포토그래퍼 ⓒ함께사는길 이성수
 
2월 22일부터~5월 5일까지 서울 성곡미술관에 서 크리스 조던(Chris Jordon)의 작품 전시회 ‘아름다움 너머(Intolerable Beauty) 전’이 열리고 있다.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활동가를 키우고, 사 회적 난제의 대안을 만들며, 사회 구성체 간의 소통과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비영리재단 <숲과 나눔>이 주최하고, ‘플랫폼C’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의 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 개념미술, 영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세계적인 인지도와 예술적 명망을 지니고 있다. 크리스 조던의 사 진과 영상은 높은 예술적 성취도는 물론, 사람 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연결돼 있으며 상 호 존중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평단과 관람객들의 상찬을 받고 있다. ‘아름다움 너머(Intolerable Beauty) 전’을 주최한 <숲과 나눔> 재단의 장재연 이사장과 작가가 만나 전 시작품들이 짚어낸 우리 시대의 풍경과 그 이면 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재연: 당신은 사회적인, 환경적인 병리현상 의 이면에 숨은 거대한 환경사회적 문제에 관한 통계수치가 가진 의미를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E Pluribus Unum’ 작품에서 보듯, 여러 환경운 동가들과도 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작품에 원용된 통계수치들은 어떻게 확보하는가
 
크리스 조던: 다 내가 지어낸다(웃음). 나 역시 저널리스트들이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일단 자료와 기사를 찾고 때로는 과학자들과 만나 확인한다. 이슈에 따라 협력하는 그룹들은 달라진다. 기후변화와 탄소 배출 관련 작업의 경우,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세계적 과학자 그룹인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otsdam Institute for Climate Impact Research)>와 협력했다.
 
장: 지난 번 따로 만나 대화했을 때 당신이 샥스핀 요리를 위해 희생되는 상어들에 관한 데이터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관련 이슈를 주제로 활동하는 단체와 접촉해 정보를 얻고, 이후 창작된 작품을 그 단체가 활동에 쓸 수 있게 허락해주고 있다고도 했는데,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고마운 일이고 좋은 협력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질문을 드리겠다. 최근 숲과 바다 연작은 소재에 접근해 분석적으로 작업하던 과거 방식과 다른 느낌을 준다. 회화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소재와 촬영기법도 변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변화가 있는가.
 
조던: ‘스티치드 파노라마’(stitched panoramas, 합쳐진 전경)라는 새로운 사진 테크닉이 있다. 어떤 풍경, 예를 들어 숲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와이드앵글 렌즈를 써서 ‘찰칵’ 하고 찍으면 1프레임을 얻는다. 내 카메라는 50메가픽셀이니 50메가픽셀짜리 프레임 하나가 나온다. 난 한 번 찍고 그만두지 않는다. 긴 텔레포토 렌즈를 사용해서 전체 사진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찍는다. 찰칵, 찰칵, 찰칵… 그렇게 36개 프레임의 격자무늬를 만든다. 각각의 프레임, 전체 사진의 아주 작은 일부를 찍은 하나하나가 50메가픽셀이다. 그걸 하나로 꿰매듯 합치면 원래 한 프레임으로 찍은 것과 똑같은 그림을 이루는데, 훨씬 더 고해상도다. 이 작업방식을 통해 ‘프랙털(작은 부분이 전체를 표상하는 유사성을 가짐)’이라는 세상의 본질을 전달하는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숲 속에서 뒤로 물러설수록 어마어마한 복잡성을 보게 된다. 하지만 다가가서 하나의 나무를 보면 또 다른 하나의 숲을 보게 된다. 가까이 볼수록 더 많이 보게 된다고 할까. 그걸 사진에 담고 싶었다. 숲 시리즈는 아마 지금까지 숲을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는 가장 고해상도의 작업일 것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장: 새로운 촬영기법으로 작업한다는 건 알겠다. 이전과 달리 자연 자체를 관조하는 작품 소재 선택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조던: 처음 미드웨이에 알바트로스를 찍으러 갔을 때는 9월이었는데, 9월이면 살아있는 새들은 다 바다로 나가 있는 때다. 결국 나는 그 섬에서 살아있는 알바크로스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내 작업은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영감을 주길 바랐는데 공포만 봤으니까. 그래서 꼭 다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가서 살아있는 새들을 만났을 때, 그토록 아름답게 춤을 추는 모습이라든지 수천 마리가 하늘을 나는 걸 보면서 그들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미드웨이(Midway)라는 섬 이름 그대로 중간에서 균형을 잡고 서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나쁜 소식도 봐야만 한다. 외면할 순 없다. 하지만 나쁜 소식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 반대편에는 우리 세계의 아름다움도 있으니까. 내 작품이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것은 그래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미드웨이의 의미를 생각하면, 나에게 미드웨이는 삶의 철학 전부를 한 단어로 집약한 것이다.
 
장: 당신이 왜 균형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알겠다. 다른 질문을 드리겠다. 당신은 이전에도 여러 발언과 작품을 통해 미국식 대량생산과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한국처럼 미국식 사회문화를 추종하는 나라의 시민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조던: 할 말이 너무나 많다. 미국처럼 되지 마라. 우선 그게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한국은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국제적인 리더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아주 멋진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나라니 영향의 네트워크도 작고 감당할 만하다. 미국 같으면 환경부 장관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못한다.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거치다 결국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내가 가본 나라들 중에는 정치적으로 끔찍한 상황이거나 부패한 곳들도 많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같은 경우, 정부가 완전히 부패해 환경운동이 다룰 수 있는 게 없다. 체코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곳 환경운동가들은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중국도 그렇다. 중국은 너무 거대하고, 환경운동가들은 심지어 자국 정부로부터도 안전하지 않다. 남미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들의 경우에는, 근본적인 환경 변화를 만들어낼 재원이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완벽한 위치에 있는 걸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문제 해결의 관건은 선택이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의식적 선택을 하는 것, 많은 나라들이 그런 선택을 못해 오늘의 문제가 생겼다. 그저 자본주의를 따른 결과, 누구도 원치 않고, 행복하지 않은 곳에 다다랐다.
 
장: 한국에서도 환경운동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할 때 낫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늘 두 개의 한국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종의 ‘미드웨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DMZ가 그런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조던: 아, DMZ! 내가 꿈꾸는 곳 중 하나다. DMZ에 가서 그곳을 찍고 싶다. 세계적으로도 생물다양성이 가장 잘 보존된 생태계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장: 당신은 알바트로스에 관한 다큐 필름과 사진에 관해 설명하면서 관람객이 ‘애도’하기 바란다고 했다. ‘애도’란 어떤 행위인가? ‘애도’는 어떻게 사람과 자연을 지키는 일로 연결되는가.
 
조던: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난 우리가 애도(grief)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도는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슬픔도 그렇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보면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미드웨이에서 너무나 여러 차례 슬픔을 느끼다 보니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는 왜 지금껏 알지도 못했던 이 새들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는가. 왜 이 멀리 동떨어진 어느 섬에 있는 새들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느끼는가. 결국 내 슬픔의 이유가 그 새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더 많은 슬픔을 느낄수록, 그 슬픔은 그 새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애도는 나쁜 감정이 아니라 나를 바른 곳으로 이끄는 문이란 걸.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곳, 살아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말이다.
 
장: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을 본 사람들 또한 그 슬픔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조던: 나와 애도의 관계가 달라지고 그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는 무엇이든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도 볼 수 있다. 밀어내지 않고 내 가슴을 아프게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슬픔을 느낄 때, 그게 나쁜 게 아니라 내 자신의 가장 깊은 곳과 연결되는 경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장: 환경운동연합이 회원들에게 이 전시회 관람을 특별히 권하고 있다. 이국의 동지들과 시민환경운동의 지지자들에게 전할 연대의 말을 부탁한다.
 
조던: 무수한 환경문제, 사회문제들의 규모를 따라잡을 각각의 개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근원인 우리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면 모든 문제 해결의 경로가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들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적 중심에 사랑이 있으며, 우리 또한 자연이라는 기적의 일부라는 점을 느끼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다. 우리가 그러한 공감의 정서와 의식을 집단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망하면 모든 게 끝났다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된다. 절망은 성급함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이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It’s not too late)!”
 
 
기획 정리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통역 정리 / 황혜림 Co-Managing Director 이사,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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