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표의 바람

2019년 12월 20일 환경피해시민을 위한 2019 송년 프로그램 겸 제9회 2019 환경보건시민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숨표’ 합창단
 
과거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들고 내려갔다고 한다.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광부들보다 먼저 피해를 받고 이상 징후를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광부들은 위험을 알아챘다. 카나리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광부들에게 온몸으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땅에도 카나리아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라돈 침대 피해자, 석면피해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온몸으로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과 생활 속 방사능 문제, 석면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전하는 존재들이다.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경고를 보내는 우리 시대의 카나리아들인 것이다. 
 
광부들의 카나리아가 내지른 마지막 울음이 노래일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카나리아들은 진짜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위험사회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습기살균제로 건강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를 사용하다가 암에 걸린 사람, 석면에 노출돼 건강을 잃은 사람…. 환경 피해로 건강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이들이 모여 합창단을 만들었다. ‘숨표’, 그 합창단의 이름이다. 호흡이 필요한 이들이기도 하고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이름이기도 하다. 대부분 폐가 손상되어 노래부르다 호흡이 딸리기도 하지만 지휘자의 손짓을 따라 힘을 다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른다.
 
‘숨표’는 가습기살균제로 아버지를 잃은 합창단 지휘자, 박관영 씨의 제안으로 2019년 9월 21일 첫 모임을 시작했다.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었어요. 구호보다는 화음을 통해 외치면 사람들이 귀를 더 기울이지 않을까 싶었죠.” 그의 제안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진침대 라돈 피해자, 석면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가족,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가와 일반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현재 2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데 벌써 두 번이나 무대를 경험했다. 숨표에게 노래 실력은 두 번째다. “건강해야 노래를 할 수 있어요. 노래를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접목하고 있어요. 그래서 호흡법도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건강에 연결시켜 진행하고 있어요.” 성악을 전공한 박관영 씨는 숨표 때문에 요가나 에어로빅 호흡법도 공부하고 있다. 노래 중간 중간 숨을 쉬어야 할 부분을 일일이 알려주고 단원들이 힘들어하는 내색을 보이거나 화음이 맞지 않아 분위기가 쳐질 때 유쾌한 농담과 재치로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도 그다.
 

‘숨표’의 경고

 
“무엇보다 숨표 합창단원들이 몸과 함께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또 피해자가 아니라도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숨표 합창단에 함께 했으면 해요.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통합되고 항의와 항전이 아닌 문화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합창단이었으면 합니다.”(박관영)
 
그는 가습기살균제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뇌병변 2급으로 거동이 좀 불편하셨어요. 아버지는 겨울이면 가습기를 사용하셨는데 그걸 청소하려고 동네 마트에 갔어요. 하필 가습기살균제가 보였고 1+1을 하고 있어서 구매를했어요. 처음엔 소주 한 잔 정도를 물에 넣었는데 아무런 냄새가 없었어요. 사용 용량을 찾아봤는데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 병을 다 넣었어요. 다음 날 남은 한 병도 다 넣고 사용을 했어요. 아버지가 간헐적으로 기침을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어요. 그 다음날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숨을 잘 쉬지 못하신다고. 급히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을 갔고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어요. 한 달 후에 중간 정산을 했는데 병원비가 1000만 원이더라고요. 할 수 없이 아버지를 의료진이 있는 노인병원으로 옮겼어요. 2주 뒤에 노인병원에서 준비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7월에 아버지 보내드리고 10월에 뉴스에서 가습기살균제 이야기를 접했죠.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셨지만 호흡기 문제로 돌아가신 게 의아하긴 했어요. 하지만 당시에 아이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겼어요. 2년 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피해자 접수를 했는데 4등급 판정을 받았어요. 재심을 청구했는데도 같았어요. 분명히 사용을 했는데 왜 4등급인지 화가 났어요. 정말 마음 같아선 찾아가서 뒤엎고 싶었죠. 하지만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저보다 더 안타까운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분들 앞에서 불평을 말하는 게 죄송스러워졌죠.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통해 그분들을 위로하고 또 현재 진행중인 가습기살균제 참사 규명 활동을 지켜보고 있어요. ”
 
“집사람이 좀 더 버텨주었으면 해요. 관리를 잘해서 더 나빠지지 않으면 해요. 정부에 바라는 것은 중증환자에 대한 지원을 현실화해줬으면 합니다.”(김태종, 왼쪽) “2020년에는 환경피해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호병숙)
 
합창단원 김태종 씨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그의 아내는 가습기살균제로 폐의 80퍼센트 이상을 잃었다. “이마트에서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990원에 판매했어요. 2007년 10월부터 1년 정도 사용했는데 더 좋아지라고 가습기 분무를 아내 얼굴에 대주었어요. 그래서 더 큰 피해를 입었어요. 저는 당시에 야근이 잦아서 그나마 피해가 덜했어요. 아내는 2017년 5월에 자가호흡이 불가능해져 목을 뚫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산소를 공급해줘야 해요. 석션으로 가래도 매번 빼줘야 하고. 병원 중환자실에서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퇴원시켰어요. 사과요?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SK나 물건을 만든 애경이나 물건을 판매한 이마트 그 어느 곳에서도 사과를 받은 적이 없어요. 2019년 8월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때 마지못해 사과한 게 다예요. 그 때 아내와 함께 청문회에 참석했어요. 그나마 정권이 바뀌어 특별구제계정이란 것이 만들어져서 지원을 받게 됐어요. 아내가 중증 환자다보니 온 식구가 아내 병간호에 매달려 있어요. 저도 하던 사업을 접었어요.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왔어요. 화도 나고 나쁜 생각만 들고. 그런 저에게 ‘숨표’는 그야말로 숨통이 트이는 곳이에요. 노래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소리도 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사람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위안도 받고 있어요.”
 
매주 목요일 저녁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하는 숨표 합창단
 
손수연 씨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부터 시작해 태어나고 5개월 후까지 애경가습기메이트를 사용했어요. 그저 약하게 태어난 아이라고만 생각했죠. 또래에 비해 잘 뛰지도 못하고 기침도 많이 하고 약도 잘 듣지 않았어요. 2016년 8월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1년 가까이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막연히 국가에서 오는 연락만 기다렸어요. 그러다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 후 적극적으로 대책활동을 하는 피해자가 된 거죠.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에서 벗어나 궁금한 것은 찾아가서 물어보고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찾아보게 됐죠. ‘숨표’도 그중 하나에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 ‘숨표’에 있는 건 아니다. 호영숙 씨는 생활 속 라돈 피해자다. 2018년 한 방송사에서 대진침대에서 라돈이 검출됐다고 보도되고 이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사 결과 대진침대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라돈은 1급 발암물질로 특히 폐암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물질이다.
 
“2015년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어요. 그러다 2018년에 다른 부위에서 암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그때 텔레비전에서 대진침대 매트리스를 수거한다는 뉴스를 봤어요. 저는 2007년부터 대진침대를 사용했어요. 혹시나 싶어 확인을 했는데 라돈이 검출된 모델이었어요. 연락을 했더니 매트리스를 교환만 해주고는 이후 연락이 없어요. 관련해 진행되는 것도 없고. 몸도 몸이지만 아무런 것도 진행되지 않으니 힘이 들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 ‘숨표’를 만났어요. 그동안 의지할 데가 없었는데 의지할 곳이 생긴 거죠. 관심 가져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지가 돼요.”
 
이성진 씨는 악성중피종 환자다. 어린 시절 그도 모르는 사이 노출된 석면으로 인해 18세에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20대를 투병 생활로 보냈다. 그런 그에게 2019년은 특별한 해였다. “어린 나이에 중피종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을 때는 사회생활이나 결혼 같은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2019년 여름 석면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여해 피해자임을 알리고 10월 말에 진행된 아시아 직업환경피해자대회 행사 준비를 돕고 하면서 바쁘게 지냈어요. 지금은 주 1회 숨표 모이는 날에 맞춰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출근해 석면에 대해 배우고 관련 행사나 토론회 준비를 돕고 있어요. 충남 아산에서 서울로 오가는 일이 좀 힘들긴 하지만 재미나요. 합창단도 처음이고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것도 처음이라 신기해요. 그동안 석면 피해 앓고 집과 병원만 있다가 동굴 안에 갇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에요. 무엇보다 저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즐거워요.”
 

‘숨표’의 희망

 
“저와 같은 중피종 피해자들과 모임도 만들고 석면 관련 자료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석면의 위험성을 알릴 계획이에요. 2020에는 석면피해자가 아닌 석면활동가로 발전한 나를 보고 싶어요.”(이성진, 오른쪽)
 
가습기살균제, 생활 속 방사능, 석면 등 여전히 피해자는 늘어나고 있다. 또 어떤 환경 피해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온몸으로 전하는 숨표들의 경고를 흘려보내선 안 되는 이유다. 2020년에도 ‘숨표’는 아름다운 노래로 환경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세상을 향해 환경 피해를 경고할 것이다.
 
“2020년에는 진상규명이 되었으면 해요.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이 제품들의 시초가 말끔히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또 관련자들은 다 죗값을 받았으면 해요. 다시는 가습기살균제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다 처벌을 받아야 해요.”(손수연)
 
“무엇보다 숨표 합창단원들이 몸과 함께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또 피해자가 아니라도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숨표 합창단에 함께 했으면 해요.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통합되고 항의와 항전이 아닌 문화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합창단이었으면 합니다.”(박관영)
 
“집사람이 좀 더 버텨주었으면 해요. 관리를 잘해서 더 나빠지지 않으면 해요. 정부에 바라는 것은 중증환자에 대한 지원을 현실화해줬으면 합니다.”(김태종, 왼쪽)
 
“2020년에는 환경피해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호병숙)
 
“저와 같은 중피종 피해자들과 모임도 만들고 석면 관련 자료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석면의 위험성을 알릴 계획이에요. 2020에는 석면피해자가 아닌 석면활동가로 발전한 나를 보고 싶어요.”(이성진, 오른쪽)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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