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 21] 동강 금강모치, 정상옥 회원에게

설마! 존경하는 임희자 국장께서 이쪽으로 행운의 편지를 전달할 줄 몰랐다. 전화를 했더니 전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의 그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선배, 나 지금 바쁘거등예!” 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답글을 써야만 했다. 

이번 달부터는 활동가끼리 연애편지 쓰지 말고 회원에게 쓰란다. 우리 회원들은 누가 ‘어떻게 해서 환경연합 회원이 되었나요?’, 물어보면 전혀 망설임 없이 ‘그 양반의 협박과 공갈에 못 이겨서’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할지 심히 고민 됐다.

내가 가끔 연인의 이름을 보듯이 회원 명부를 들여다 볼 때는 회비는 잘 내시는가, 하는 목적을 가지고 노려보기 때문에 고런 얄팍한 심사도 겸사겸사 반성도 하면서 편지를 쓴다. 


상옥아!

우리가 16년 전에 처음 환경연합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내가 상옥이 생년월일을 보고 두 살이 적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그대 이름을 불렀더니 얼굴이 벌개져서 화를 내던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머시마라고, 그것도 강원도 감자바우인 상옥 씨는 여자가 초면에 대놓고 반말하는 수작이 적잖이 아니꼬웠으리.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심심하면 상옥아~ 불러서 그대의 부아를 돋우는 재미가 쏠쏠했다네.

우리가 거제에서 환경연합 준비위를 하던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던 집행위원회에 그대는 때가 꼬질꼬질한 작업복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으로도 빠짐없이 출석했지. 모든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회의하고, 더러 봉투를 붙이고 함께 발송 작업을 하던 그 시절로부터 벌써 16년이 흘러갔네. 

고향이 강원도랬지. 그것도 아름다운 동강 어귀에 살았다던 얘기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릴 때, 여름철 강물이 불어날 때마다 수해를 입던 집. 아버지는 왜 강에서 멀리 떨어져 집을 짓지 않고 꼭 그 자리에다 지을까 궁금했다던. 

결국 우리는 동강댐 하지 말자던 외침에 동참하러 그대의 고향 강원도 동강을 향해 떠났지. 관광버스 두 대에 가득 탄 우리 회원들을 동네 지리에 밝은 그대 덕분에 동강의 최상류 가장 목 좋은 마을에 자리 잡았고 그날 밤에는 기어코 동강에 나가 라면을 끓여먹었지.

기억하시는가? 그날 강원도 동강 출신 그대의 현란한 어항 놓던 솜씨를! 우리가 그날 순식간에 끓여먹었던 라면 매운탕에 들어간 물고기들이 어떤 종류들이었는지는 어두웠다는 핑계로 용서받을 수 있기를! 

동강의 물소리와 그 물여울에 비친 뼝대들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와 멀리 거제의 조선소에 와서 그대는 당당한 노동자로 가족을 꾸리고, 든든한 아들 둘에 음식솜씨 끝내주는 아내를 얻었지. 그대의 아내는 또 얼마나 우리를 도왔던가. 가난했던 우리가 재정사업으로 폐식용유를 수거해서 재활용비누를 만들어 팔던 시절, 그 비누를 들고 자기 일처럼 팔러 다니던 일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유기농 토마토를 팔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일은 또 어떤가. 부창부수 두 분의 노력으로 우리 지역환경연합의 주춧돌이 놓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네.

내가 감동한 것은 거제도가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거제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이었어. 그대가 그렇고, 멀리 충북이 고향인 조수길 회원도 그렇잖아. 오랜만에 고향으로 유턴한 나는 그 점이 내내 미안하고 고마웠어. 그대가 이곳에서 그랬듯 누군가는 동강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고 또 지금도 애쓰고 있으니 윤회가 그리 멀리서 이루어지는 법은 아닌 걸 거야.


우리가 이사를 다닌 사무실을 손꼽아 보면 어떨 때는 울컥해. 남의 사무실 한 쪽에서 눈칫밥을 먹다가, 싼 사무실을 찾아 가정집 주차장을 개조해서 쓰기도 하고, 긴 육각형에 가까운 비 들이닥치는 길 모퉁이 사무실에서 살림한 적도 있고, 시끄러운 상가 한 칸을 얻어 살기도 했지. 그렇게 옥포 바닥을 헤매며 이사 할 때마다 점점 늘어나는 이삿짐에 상옥 씨 손 때가 안 묻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거야. 정말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는데 가까운 회원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인사 한 번 못한 점, 늦었지만 용서해주라.

그렇게 13년 동안 상옥 씨는 거제환경연합의 창립회원으로, 운영위원으로 일했지. 어느 해인가, 조직 내부 문제로 힘든 총회를 겨우겨우 마친 자리에서 사무국을 지켜내기 위해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던지 그대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그날 갓 삼십을 넘긴 강원도 남자가 훔치던 굵은 눈물을 잊지 못할 거야.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20킬로그램이 넘는 폐식용유 통을 양손에 번쩍번쩍 들고 트럭을 몰고 다닐 수 있게 했고, 무거운 비누 박스를 머리에 이고 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할 수 있게 한 힘이었을 거야. 그 기억의 힘이 또, 습지 보전 따위 허무맹랑한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주민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돌멩이를 맞으면서도 담담하게 견딜 수 있게 해준 걸 거야.

그 모든 것들이 다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들이 되었지. 초창기에 든든한 힘이 되어준 상옥 씨를 비롯한 그때의 회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멈출 수가 없어. 발바닥에 피가 맺히고 굳은살이 다시 갈라지도록 뛰어야지. 

그대는 몸이 안 좋아서 당분간 운영위원을 좀 쉬겠다고, 평회원으로 있다가 몸이 다 나으면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어. 다시 불러오기가 미안한 마음도 커. 한 사람을 그만큼 부려먹었으면 충분하지, 이제 좀 쉬게 해줘야지, 얼마나 더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대에게 환경운동은 평생 뗄 수 없는 삶과 같은 거, 피톨 같은 거 아니었남!

상옥아(또 화내도 할 수 없다)! 몸 좀 추스렸으면 언제든 나와 줬으면 좋겠어. 이제 힘든 일 같은 거 전혀 안 시킬 테니 가끔 얼굴이라도 보여주시게. 잘생긴 얼굴 가끔 좀 보여주면 안 되겠는가?


윤미숙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1960-c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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