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짱'이 만드는 서울의 꿈 _ 박은수


▒ 서울환경연합 회원 전종옥 씨는 택시를 몰면서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50 평생을 서울에 살았어도 서울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가 없어요. 예나 지금이나 찌들어 있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찾고 싶은 ‘고향 서울’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고향 서울’을 꿈꾸는 서울환경연합 회원 전종옥 씨(57세)는 택시기사다. 뿌연 공기가 서울을 뒤덮은 2월 어느 날, 도심 한복판 사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반가운 목소리와는 달리 부석부석한 얼굴과 충혈된 눈이 황사 낀 하늘 아래서 더욱 피곤해 보였다. “어젯밤 상갓집에서 날을 샜어요. 너무 피곤해서 일도 못 나가고 이제 나온 거예요.”라며 괜찮다고 한다. 그는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쉰다. 운행 첫 날은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택시를 몰고 둘째 날은 오후 4시부터 택시 운행을 시작해 새벽 4시에 집으로 들어간다. 이틀을 꼬박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다. 충분히 쉬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쉬는 날이 더 바쁘다. 환경, 어르신 봉사 등 각종 자원 활동으로 지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오라는 곳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다.


달리는 1평짜리 환경교실
그의 택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서울환경연합’ 스티커가 선명하게 붙은 택시 안에는 환경정보가 가득 담긴 팸플릿과 책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승객들이 원하면 가져갈 수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사모님과 김 기사가 전하는 달콤한 공기 이야기’, ‘행님이 전하는 에너지 뉴스’, ‘안전한 먹을거리에 도전하는 도전 골든 벨을 울려라’ 등 그 어떤 방송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색다른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환경연합이 ‘달리는 환경교실’을 선포한 환경연합 회원들의 택시 2천 대에 제공한 환경테이프에서 나오는 방송이다. 그의 택시도 달리는 환경교실 중 하나다.
달리는 환경교실을 시작하면서 승객들과 환경을 주제로 한 대화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환경연합 회원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환경연합 회원임을 알아보고 전문용어와 외국사례를 들며 질문하는 승객들 때문에 곤란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환경단체 회원이지만 행사 동원이나 몸으로 때우는 활동 등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아오면서 지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달리는 환경교실을 통해 자신이 부족한 환경정보도 습득하고 승객들에게도 제공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 사진/ 위·71 중랑천 불법소각 감시중인 전 씨  아래·서울환경연합 노원 생활환경실천단 사무실

택시와 환경운동의 기막힌 만남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공릉역 철길 옆에 위치한 작은 컨테이너 앞. 서울환경연합 노원 생활환경실천단(이하 노원실천단) 사무실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택시 승객이 없는 시간대에 그가 머무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노원실천단 활동과 회원관리, 지역 환경민원 해결 등을 처리하기도 한다. 지난 2월 노원생활실천단장으로 추대되면서 이곳에 머무는 시간도 부쩍 늘어났다. 사무실에는 이도수 전 노원생활실천단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 자신이 운행하던 개인택시를 팔고 지금은 아예 환경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올해 2천여 명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모인 생활환경실천단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전종옥 씨를 환경운동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교통과 환경은 따로 뗄 수 없는 법. 택시를 몰면서 어찌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냐.” 1997년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던진 전 단장의 이 말은 전 씨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의 환경문제에 대해 택시를 몰며 보고 느낀 것이 많았던 터라 그는 바로 환경연합 회원으로 가입, 생활환경실천단의 전신인 환경통신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초기에는 택시로 서울 구석구석을 돌다가 목격한 쓰레기 불법소각이나 생활 쓰레기 무단 투척, 매연차량 등 생활주변의 작은 환경오염 사례들을 당국에 고발하고 계도하는 활동을 주로 벌였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숱하게 봉변을 당했다. 불법소각을 하는 사람에게 위험성을 말하면 돌아오는 것은 “당신이 뭔데?”로 시작하는 욕설이었다.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 때문에 적지 않게 속도 썩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환경오염감시 활동을 악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일부 회원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졌고 이들 때문에 순수하게 활동을 하는 그나 다른 회원들이 오해받는 일까지 생겼다. 탈퇴하는 회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나서서 문제가 된 회원들의 자격을 박탈하고 고발조치가 아닌 계도를 중점에 둔 감시활동을 벌여나갔다. 해가 거듭될수록 활동영역도 커져 현재는 서울시나 각 구청과 연계해 자동차 매연단속, 한강 및 도심하천 수질오염 감시 및 정화활동, 쓰레기 줄이기, 우리 동네 작은 산 살리기 활동 등 다양한 환경보전활동에 전개하고 있다.
그가 특히 중점을 두는 활동은 어린이 환경교육이다. 지역에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하천교육은 벌써 6년째를 맞았다. 노원실천단이 진행하는 하천교육은 도심하천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도심하천뿐만 아니라 시골 하천도 찾아가 각 하천에서의 체험을 비교하고 이를 통해 도심 속 자연형 하천 만들기를 고민한다. 하천의 비교체험은 택시를 모는 회원들이었기에 가능한 교육이었다. 교육이 진행될 때면 30여 대의 택시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노원실천단 회원들은 자신들의 택시에 아이들을 태우고 교육장소로 달려간다. 교육이 끝나면 아이들의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말 그대로 원스톱 환경교육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팬까지 생겼다. 감사 이메일을 보내오는 학생부터 환경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까지. 그가 환경운동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 좌·전 씨의 꿈은 고향 서울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우·초안산 보호를 위한 안내판설치 행사에 참가한 전 씨 부부 / 사진제공 노원실천단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환경운동가
하지만 택시를 몰면서 자원 활동을 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한 시간짜리 캠페인에 참여하는 데 적어도 3시간, 하천 및 산 정화활동은 반나절을 빼야 한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택시 시장에 값싼 대리운전까지 늘어 승차율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택시 운행 시간까지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고 급기야 대학을 다니던 아들이 휴학까지 결심하는 상황까지 갔다. 전에 그의 사업실패로 힘든 시기를 겪어온 가족들이었기에 갈등은 더 컸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사업실패로 택시운전과 함께 시작한 자원 활동은 삶의 의미가 됐고 다시 희망을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죠. 변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참여한 캠페인이나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되고 관련 자료도 보여주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행사나 캠페인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그를 말리던 부인은 현재 지역주민들과 ‘주부환경모임’을 구성해 지역 환경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세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막 군대를 제대한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도로 위 차량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디자인 공부를 하던 둘째딸은 환경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막내딸은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있다. 가족들의 변화에 대해 그는 “이해를 한 건지 포기를 한 건지 모르겠어요.”하며 웃는다.
그는 지난해부터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을 고스란히 가족들을 위한 택시 운행과 자원 활동에 쓰기 위해 시작한 일지에는 하루 일과가 매 시간마다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수시로 일지를 꺼내들고 행여나 허튼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다잡는다.


▒ 중랑천에서 진행한 어린이 환경교육 사진제공 노원실천단

고향 서울을 꿈꾸며
사무실에서 어느 정도 일을 마친 전 씨는 저녁 택시 운행을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택시 운행 전 그가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중랑천이다. 환경오염행위를 감시 감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변화하는 중랑천이 보고 싶어서다. “예전에 비해 수질이 많이 좋아졌어요. 하천가로 갈대도 우거지고 물고기들도 많이 모였어요. 철마다 이름 모를 다양한 새들이 중랑천을 찾아 날아드는데 얼마나 장관인지 몰라요.”
사실 50년 가까이 중랑천을 보고 자란 그에게 중랑천은 썩 유쾌한 하천은 아니었다. 1960~70년대 개발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몰려들면서 하천가를 따라 판자촌이 길게 늘어섰고 하천에는 온갖 오수며 하수가 그대로 흘렀다. 판자촌이 철거되자 이번엔 공장 폐수들이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역한 냄새 때문에 하천 근처에 가기도 힘들었다.
중랑천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속 서울은 늘 병들어 있다. 일 때문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둔 것은 행운이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수산업을 하셨어요. 일 때문에 전국 각지를 다니셨는데 그때 아버지를 따라 들렀던 시골 마을이나 하천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죠. 지금도 들꽃을 보면 그때 보았던 풍경들이 떠올라 가슴이 마구 뛰어요.”
그 시절 그는 섬마을 선생님을 꿈꾸었다. 파도소리, 새소리 들리는 작은 섬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도 심고 게도 잡아먹고 멱도 감고 산에 올라가 나무 이름도 맞추고,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비록 섬마을 선생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택시와 환경연합을 통해 선생님의 꿈은 이룬 셈”이라고 웃는다.
이제 그의 꿈은 아이들에게 ‘고향 서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서울을 떠나도 그립고 향수가 밀려와 다시 찾을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남산에 올라 우뚝 서 있는 소나무에 기대어 애국가도 한 번 불러보고 동네 하천에서 물놀이도 해보고 갈대숲을 달리는 전철도 타보고…….” 그가 누리지 못한 낭만과 추억들을 아이들은 누릴 수 있는 서울을 꿈꾸며 전 씨는 오늘도 그의 애마와 함께 서울 곳곳을 달리고 있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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