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소믈리에 일순 씨의 토종씨앗

우수와 경칩에 이어 춘분까지 지났다. 짧았던 낮이 다시 길어지고 얼어붙었던 논과 밭은 싹을 틀 준비를 한다. 덩달아 일순 씨의 마음도 바빠졌다.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에서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에 뛰어든 후부터 봄은 특별해졌다. 서산에서 채소 소믈리에이자 토종씨앗 지킴이로 활동하는 유일순 씨의 봄을 만났다.  
 

채소 소믈리에를 아시나요

 
채소 소믈리에이자 토종씨앗 지킴이 유일순 씨 ⓒ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는 서산지역에서 채소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가 약하게 태어났어요.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약 대신 음식으로 아이 건강을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아이가 워낙 편식도 심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죠.” 어떤 것이 좋은 식재료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거부감 없이 음식을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 찾다가 접한 것이 채소 소믈리에였다.
 
한국직업사전에 등재된 정의에 따르면 채소 소믈리에는 대중을 대상으로 채소와 과일의 맛과 즐거움, 본연의 가치를 파악하여 채소와 과일의 선정, 유통 및 보관 방법을 안내하며 레시피 등 활용방법을 제안하거나 건강한 식습관 등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편식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판매자가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채소나 작물을 장에 나가 팔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소비자를 만나 이 채소가 어떻게 길러졌는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서 농부의 수고로움과 농산물의 가치가 전해질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채소 등 농산물이 공산품처럼 마트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고 소비자도 그저 바코드를 찍으면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식문화에 대한 가치나 농부의 고마움을 전혀 느낄 수 없어요. 그 부분을 전하고 싶었어요.”
 
채소와 과일의 맛과 가치, 감동에 더해 올바른 식문화와 농업의 가치를 전하는 채소 소믈리에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농사 짓는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는 2015년 채소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자격증을 취득한 후 그만의 방식으로 채소 소믈리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씨앗이나 곤충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삽이나 호미 등 농사를 짓다가 녹이 쓸거나 낡은 농기구를 작품 소재로 활용하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알리고 있다. 지역에서 몇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아이들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했다. 아들 친구들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진행하던 교육이 제법 소문이 나 이젠 자리를 잡았다. “한번은 채소와 과일을 들고 교실을 찾았는데 아이가 울더라고요. 왜 우냐고 하니 채소 먹일까봐 겁나서 운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걸 보더니 울음을 그치고 채소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채소를 거부감 없이 즐겁고 편하게 맛보게 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5번 이상 먹은 채소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먹을 때 즐거운 기억까지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즐겁게 찾을 수 있어요.”라고 믿는다.   
 

우리 마을 토종씨앗 지킴이

 
채소 소믈리에 활동은 자연스레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채소 소믈리에를 접하고 한동안은 외국 농산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신기해하면서 먹어보고 또 심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우리 주변에도 귀한 농산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거 아세요? 아스파라거스나 콩나물이나 맛과 영양소는 크게 다를 게 없어요. 가까이 있음에도 소중하고 귀한 건지 몰랐던 거죠.” 그중 토종씨앗은 더욱 더 그랬다. 그 가치를 알아채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2016년부터 전국 씨앗도서관협의회를 찾아가 함께 토종씨앗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일을 배웠다. 그리고 서산태안환경연합과 함께 서산태안씨앗도서관을 만들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2020년 서산시 음암면, 운산면에 이어 2021년에는 서산시 고북면, 해미면 지역을 돌며 토종씨앗 120여 가지를 모았다. 
 
토종씨앗을 지켜온 농부에게 토종씨앗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유일순
 
토종씨앗뿐만 아니라 토종씨앗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이를 테면 돼지파는 마늘과 같이 파종하는데 모든 김치에 뿌리를 꼭 넣어 김치를 담그면 잘 변하지 않고 시원하다거나 베틀콩은 기계로 수확하면 상처가 많이 생겨 낫으로 수확하고 콩나물은 고소하고 국물이 시원하지만 두부를 만들면 맛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토종씨앗 사진과 함께 담아 소책자로 만들기도 했다.     
 
농민들에게 나눔 받은 토종씨앗은 서산시 농업시술센터와 전국 씨앗도서관 협의회에 기증하고 또 일부는 직접 밭에서 키워내 씨앗을 받기도 하는데 토종씨앗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직접 농사를 짓고 나서다. “작물이 다양해지니 주변 곤충들도 다양해지더라고요. 나비가 저마다 찾는 식물이 있다고 하잖아요. 노린재도 다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꼭 지키고 싶은 약속

 
고민도 늘었다. “한 해 한 해 분위기가 달라요. 토종씨앗을 지켜온 분들이 대체로 연세가 많으세요. 돌아가시거나 요양원에 가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그렇다보니 종자의 다양성도 줄어들더라고요.” 토종씨앗을 지켜온 농부가 점점 줄어들면서 토종씨앗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농진청 등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토종씨앗을 보관하고 있지만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씨앗은 매년 심어줘야 해요. 점점 기후와 환경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년 씨앗을 심어야 그 환경에 적응한 자식들이 나올 수 있거든요.” 단순히 토종씨앗이 수집과 보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고향 친구들에게 함께 농사를 짓자고 권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돈도 안 되고 힘만 드는 무의미한 일’을 왜 하냐는 핀잔이다. 친구들의 말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먹방’이 등재될 정도로 먹는 것에 있어서 그 어떤 나라보다 진심이지만 정작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농업은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팔아 쌀 사서 먹는다는 인식이 여전히 유효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토종씨앗과 토종씨앗을 지키는 농민들이 설 자리는 더더욱 없다. “토종씨앗을 지켜온 농민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가난하세요.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지어도 팔 곳이 없다고 하세요. 정부도 마찬가지에요. 토종씨앗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일을 농민들에게 떠넘기고 있잖아요. 이분들마저 포기하시면 토종씨앗도 끊기게 되는 거죠.” 단순히 토종씨앗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그에겐 그 씨앗을 길러 먹었던 우리의 식문화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역사와 생물 다양성 또한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잘 알기에 더 절박하다.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식이죠. 옷 한 벌로도 살 수 있고 동굴 안에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식이 가장 원시적이고 중요한 핵심이에요. 이를 얼마만큼 지켜내는가에 따라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밀가루 값이 폭등했다고 아우성이잖아요.”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약속을 하나 했다. 토종씨앗을 지키며 농업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꼭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함께 준비하는 봄 

 
유일순 씨가 주민들에게 나눔 받은 토종씨앗으로 만든 작품 ⓒ유일순
 
올해 봄은 그에게 더 특별하다. 편식이 심했던 첫째 아이가 올해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돈보다 중요한 농업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이다. 동생은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농사를 지어보라며 땅을 내줬다. 어엿한 채종포 마련으로 더 많은 토종씨앗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또 하나, 시큰둥하던 한 친구가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다. 
 
올 한 해 계획도 잔뜩 세웠다. 서산태안씨앗도서관을 좀더 활성화시키는 한편 1차, 2차 조사에 이어 서산시 지역 토종씨앗 3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산시만의 토종씨앗 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올핸 서산 지역에서 수집한 토종씨앗을 유전자원으로 등록도 해볼 계획이다. ‘토종씨앗 키트’도 준비중이다.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식물의 한 살이를 배워요. 주로 강낭콩을 재배하는데 이걸 토종씨앗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 지역에서 재배되는 토종 콩만 10가지가 넘어요. 다양한 토종씨앗도 접하고 작물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 애착도 생기고 또 실제 수확 후 맛도 볼 수 있잖아요. 교육도 하고 이를 통해 농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수익이 된다면 더 좋고요.”   
그가 설렘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 봄이 오고 있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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