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독 학자의 4대강사업 저항기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4대강 반대 운동이었죠”

 
임혜지 박사 Ⓒ이철재
 
“정말 일하러 갔다 와서 딱 앉아서 번역하고 조율하고, 밤 2, 3시 자는 건 보통이었어요. 4대강 국민소송 재판 기한 맞추느라고 밤 꼬박 새우고 일하러 갔다가 와서 또 새우고…. ‘이러다 사람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정말 들더라고요.”
 
임혜지 박사, 독일 뮌헨에서 4대강사업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문화재 전문가이자 건축사학자이다. 정말 ‘겁이 났다’는 표정으로 한 말처럼 그는, 한반도 대운하부터 4대강사업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독일에서 ‘소’처럼 일했다. 임 박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4대강 찬동인사 인명사전을 준비할 때마다 몇 달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발표 기자회견을 앞두고 3일 동안 한숨도 안 잔 적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과로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렇게 죽는 거보다 말도 안 되는 4대강사업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렇게 4대강 찬동 정치인, 관료, 전문가, 찬동언론 관련해 모두 5차례 리스트를 정리했다. ‘시민 판 정책 실명제’라는 취지로 4대강을 망친 인사의 이름을 후대에 남겨 역사의 부끄러움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불행하게도 임 박사와 내가 ‘죽을 만큼 힘들게 저항’했던 4대강사업에 찬동했던 인사들은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여전히 ‘4대강 찬가’를 부르고 있다. 
 
임 박사를 직접 만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이전까지 전화와 이메일로 소통했지만, 4대강사업 저항운동 논문과 백서를 만들고자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4대강사업 반대 운동 당시, 나는 매번 그에게 독일 관련 자료와 전문가 섭외 등을 부탁했다. 독일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 일정은 카를스루에 대학의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를 만나는 자리였다. 그는 4대강사업을 두고 ‘자연에 대한 강간’이라고 비판했던 학자다. 임 박사는 자기 일정을 비우고 기차로 4시간 거리의 카를스루에로 와서 우리 일행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뮌헨으로 이동했을 때도 이자(Izar) 강 복원 구간을 돌며 꼼꼼하게 안내해줬다.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숙소로 내주기도 했다. “우린 동지잖아요.” 임 박사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한국과 독일의 4대강사업 반대 운동가

 
임 박사는 1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나 40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2008년 출간한 그의 책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에서 그는 “남의 나라 건축사를 천직처럼 여기며 살았고, 고문서의 먼지 냄새를 맡으며 꼬부랑글씨의 고문자를 해독하는 일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라고 건축학자로 사는 일의 기쁨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럴 정도로 자기 학문 이외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예의 길에서 정진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떤 연유로 고국의 4대강사업 반대 운동에 본업을 내려놓고 헌신하게 되었을까? 
 
2006년 10월, MB가 독일을 방문했다. 임 박사는 MB 방문이 운하 때문이라는 걸 알고 달갑지 않았다. 당시 MB는 뉘른베르크 RMD(라인마인도나우) 운하의 힐 폴트스타인 갑문을 방문해, 운하를 칭송하며 대선용 경부운하(이후 한반도 대운하) 구상 홍보에 나섰다. 임 박사는 자신의 4대강사업 반대운동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에서 RMD 운하가 얼마나 애물단지인지 세상이 다 아는데, 그런 거를 우리나라에서 하겠다니 기가 막혔죠.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잖아요. 말도 안 된다 싶어 그때부터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해 임 박사는 RMD 운하를 직접 조사했다. “24시간동안 화물선 열 몇 대 지나가는 거예요. 두 시간에 한 대꼴이죠. 물동량이 없는 거죠.” 운하 운영의 95%는 국고, 즉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한반도 대운하를 비판하는 글은 점점 날카롭게 변했다. 
 
임 박사는 독일 사회에서 관련 분야의 저명한 인플루어서인 전 건설부 장관을 비롯해 <분트(BUND)>와 같은 환경단체에게 자문을 구하며 한국 언론에 독일 운하의 실상과 한반도 대운하의 문제점을 알리는 활동을 벌였다. 한국에서 독일 운하 취재 오는 방송사를 위해 통역과 안내 역할도 맡았다. 2008년 6월 17일 KBS ‘쌈’이란 프로그램에 도나우 강 갑문 추가 건설 반대 집회 중 <분트>의 후베르트 바이거 대표의 연설 장면이 나온다. 바이거 대표는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남한 심장을 관통하는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운하 건설의 본보기가 우리 RMD 운하라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바이에른 주가 행한 제1의 자연 파괴 계획이자, 바이에른 주를 빈털터리로 만든 이 계획을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 운하 건설을 성공적인 사례라고 알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한국을 비웃었다. 
 
2008년 6월 MB가 대운하를 포기한다고 했다. 그때 임 박사는 ‘아 나는 살았다. 이제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조금 있다가 운하랑 똑같은 걸 하면서 복원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믿는 거예요.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요. MB 정부가 이자 강 등 독일 사례를 대면서 사업의 정당성을 강변하는데, 정말 아닌 건 아닌 거죠.” 임 박사의 분노는 더 커졌다. MB 정권이 독일 사례를 언급할 때마다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제가 오기가 나서 집요해진 게 아니라 MB 정부의 거짓말이 갈수록 뻔뻔해져서 대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딱 증거를 대서 이전 거짓말을 비판하면 그걸 덮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MB 정부는 어용 지식인을 통해 재자연화 공사를 했던 독일 이자 강도 보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4대강 찬동 전문가인 박석순 교수는 “독일 등에서도 준설과 보로 하천을 관리하고 있다.(2009.11.11. 서울신문)”고도 주장했다. 그런 주장에 대해 임 박사는 “여기 와보지도 않고 구글 어스로 사진 찍어서 여기 보가 보이지 않느냐고 했는데, 그건 백조도 걸어서 오르내리는 50cm 높이의 하상 보호공일 뿐”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독일은 준설과 보 건설에 대해 오래 전부터 반성하고 있었다. 독일이 준설 등을 통해 홍수를 통제하지 않는 것은 그런 반성이 정책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사업을 두고 “독일은 80년 전에 포기한 사업”이라고 했던 까닭은 그래서다.
 

강에 공간을 내주는 게 가장 확실한 치수대책

 
임 박사는 퇴근 후 밤을 새워가며 헨리히프라이제 박사와 베른하르트 교수 등 독일 전문가의 자료를 번역했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어서, <베를린 리포트>라는 한인 커뮤니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만이 아니라 중국 교포도 참여하면서 2010년, <번역연대>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독일 전문가 자료 번역이 더욱 활발해졌다. 임 박사와 <번역연대>는 헌신적으로 일했다. 누가 알아 주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고국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때 국내에서는 ‘4대강 국민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임통일·김영희·이정일·정남순 변호사 등 법조인들과 공학자들, 민간환경단체들이 힘을 모아 4대강사업을 막기 위한 법적 투쟁에 나섰다.
 
<4대강사업 국민소송단>의 김영희 변호사가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는 임혜지 박사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임 박사는 국민소송을 도와줄 독일 전문가를 일일이 검색하며 찾아내 국내에 연결해줬다. 소송을 위해서 관련 전문 자료를 <번역연대>와 함께 매달려 우리 말로 바꾸어 놓았고, 소송비용을 모금해 송금하기도 했다. MB가 임기 중 독일을 방문했을 때 임 박사는 <번역연대>와 유학생 100여 명을 모아 시위를 하기도 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미리 한국의 4대강사업을 알아본 뒤 MB를 만나시라는 요청도 했다. 독일 최대 환경단체 <분트> 대표에게도 도움을 청해 메르켈이 혹여 정치적 수사라도 MB표 4대강사업에 덕담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임 박사다. 
 
 4대강사업 반대 운동 당시 임예지 박사는 한국의 환경단체들의 독일 관련 자료 제공과 전문가 섭외 등을 도맡아 하는 한편 독일 방문 때도 함께 해주었다 Ⓒ이철재
 
임 박사는 독일 교포 대상으로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강연을 하고 청중들과 토론도 열심히 했다. “강연 다음 날이면 독일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강연에 참석했던 이들에게 ‘당신 이런 말 했지? 그럼 안 된다’라는 식으로 전화가 걸려왔어요.”라며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국정원’이 머릿속을 스쳤다고 했다. 
 
독일에서 벌인 임 박사의 ‘4대강사업 저항기’는 한 권의 책으로도 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손해만 보는 일이었죠. 금방 끝날 줄 알았어요. MB가 포기를 하던가, 사람들이 그 말도 안 되는 사업에 반대를 해서 철회되던가…. 근데 끝까지 거짓말로 추진을 해나가니까 나도 끌려간 거죠, 그 끝까지! 그래도 제 인생에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임 박사는 뮌헨 이자 강을 안내하면서 말했다. “강을 자유롭게 하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에요. 인간이 뭘 보수하고 인위적으로 강화하고 변형하는 것보다 강에 자연공간만 내주는 게 가장 싼 거예요.” 강의 자연성이 회복될 때 경제적으로 가장 편익이 높다는 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공약에 임 박사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동안, 임 박사에게 4대강 자연성 회복 관련 소식을 간간이 전달해왔다. 지난 7월 방영된 MBC 『PD수첩』과 『뉴스타파』 방송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8월에는 홍수 피해를 핑계로 4대강사업이 잘 된 사업이라 주장하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 관련 소식을 전했다. 임 박사는 “유럽연합(EU)에서 보를 헐고 강을 재자연화하라는 이유도 홍수 방지인데요…. 암만 말해도 안 들으니 이를 어쩌죠?”라고 회신했다. 홍수 방지를 위해 불필요한 보를 허무는 나라가 정상일까? 아니면 ‘보 때문에 홍수를 막았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나라가 정상일까? 답은 뻔하다. 임 박사에게 아니 독일의 임 동지에게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전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임 박사처럼 한결같은 동지와 함께 일하는 건 기쁜 일이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