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쌤과 스물한 살 해바라기

파주 문산수억고등학교 김홍수 선생님 Ⓒ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럼 우리 아이들 자랑 좀 하겠습니다.”
 
몇 번이고 고사하던 선생님은 아이들 활동을 소개하겠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대뜸 애들 아이디어로 만든 거라며 작은 손거울을 선물로 건넸다. 손거울 뒤엔 귀여운 곰 캐릭터가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일회용 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들자’고 권한다. “아이들이 캐릭터도 직접 만들고 다 그려 넣었어요.” 마스크 밖으로 흐뭇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파주 문산수억고등학교 김홍수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해바라기

 
그가 그토록 자랑하고 싶다던 아이들은 그가 지도하고 있는 동아리, ‘해바라기’의 학생들이다. ‘해바라기’는 파주시 외곽에 자리한 작은 고등학교 동아리지만 예사롭지 않다. 활동연차가 벌써 21년째인데다가 그 활동이 학교 담장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 활동을 인정받았다. 2011년 대한민국 창의 체험 페스티벌 전국 1위, 2014년 온실가스 1인1톤 줄이기 실천대회에서 전국 초중고 유일하게 수상, 2014년 글로벌 에코리더상 전국 1위, 2020 저탄소생활 경연대회 교육홍보부문 우수상, 2020 청소년 에너지동아리 결과 발표회 대상, 2020 생물다양성 청소년리더 우수상, 환경기후환경네트워크의 기후·환경상 수상, UN 청소년 평화상 수상 등등 상을 받은 것도 수십 회. 초중고 최초 타이틀도 여러 번 거머쥐었다. 
 
김홍수 선생님은 처음부터 큰 뜻을 두고 시작한 동아리는 아니었다고 수줍게 말을 꺼낸다. “교육 전문 연구소를 다니다 몸이 좋지 않아 파주로 왔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 가르치며 마음도 몸도 치유할까 했었죠. 그때는 문산여고였는데 첫 부임날 동아리 하나는 맡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얼 할까 고민하는데 아이들이 찾아와서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달라고 해요. 사회 숙제로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봉사를 했는데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의반타의반으로 봉사 동아리를 맡게 됐죠. 동아리를 만든 뒤 얼마 안 돼 파주시 자원봉사센터에서 갯벌 탐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했어요. 내륙에 갯벌이라니, 놀라웠어요. 그때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게 돼 활동을 이어왔죠.” 생명이 살아 숨쉬는 DMZ과 가까운 지역인 데다가 다양한 생태계가 살아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말이다. 
 
‘해바라기’ 아이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자 김 선생님의 고민이 시작됐다. 본인은 수학 교과서나 참고서를 집필할 정도로 수학계에선 이름난 이었지만 환경 분야는 아는 바가 없어 아이들 지도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환경에 관심만 있었지 정보나 지식은 별로 없었어요. 당시엔 파주에 환경연합도 없었어요. 그래서 인근 지역 환경연합을 찾아가 정보를 얻고 또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찾아가 배웠죠.” 선생님은 발품을 팔아 아이들과 하나씩 함께 배우며 지역 공릉천 탐사, 현무암 탐사, 민통선 생태탐사, 임진강 탐사 등 지역 탐사 등 여러 환경캠페인을 진행해나갔다. 그 활동사가 지금의 ‘해바라기’를 만들었다. 
 

교과서에 없는 것들을 배우는 아이들 

 
지난 10월 27일 ‘제1회 경기도 탄소공감 행사’에서 문산 수억고 환경동아리 해바라기 학생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지구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최근엔 파주 지역 개구리 구하기에 나섰다. 깊은 농수로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개구리를 위해 파주환경연합과 함께 사다리를 만들어 설치하고 모니터링을 한 것. 개구리 탐사에도 나섰다. “파주엔 다양한 개구리들이 살아요. 수원청개구리처럼 멸종위기종도 서식하는데 손으로 잡으면 안 되잖아요. 다행히 소리도감이 있더라고요. 파주환경연합 도움으로 소리도감을 통해 개구리 종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현장에 나갔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단박에 구별하더라고요. 소리만으로 어떤 종의 개구리가 몇 마리 있는지 바로 알아내더라고요.” 개구리 소리만으로도 어떤 개구리인지 알아보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자랑거리를 늘려주었다. 제도권 안에서 배울 수 없는 ‘내가 사는 지역의 생태계를 배우고 공생에 대해 배우는 일’ 그것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는 바르고 건강한 삶을 위한 선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찍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지구가 ‘고탄소병’으로 사망했다는 전제하에 지구 장례식을 진행하고 이어 이를 막기 위한 실천방법을 학생들의 24시간으로 보여주며 제안하는 내용이다. 지구 장례식에는 사람으로 형상화시킨 지구를 비롯해 큰고니, 두루미, 맹꽁이, 수원청개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영정사진으로 등장하고 제사상에 올린 음식은 고탄소병을 유발한 것들, 이를테면 석탄화력발전소, 플라스틱 생수병, 일회용컵과 젓가락, 생활화학용품 등이다. 학생들은 지구를 살릴 수도 있었던 약이 있었지만 이 약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학생들이 처방한 약은 바로 에너지 절약이다. 참신하고 기발한 내용에 눈을 뗄 수 없다. 지난해 환경재단의 지원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공개되었지만 원래 2010년 매년 지구의 날에 맞춰 학교에서 진행해온 캠페인이 바탕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 자료를 엄청 찾고 토론도 치열하게 해요. 제사상에 저탄소를 올릴 것인가 고탄소를 올릴 것인가. 고탄소병으로 죽은 것이기 때문에 고탄소로 올리는 것이 맞다, 사람으로 형상화한 지구에 넥타이를 그려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등등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논의해요. 솔직히 우리 학생들이 툰베리보다 더 일찍 기후변화에 눈을 떴어요. 우리나라 어른들이 알아주질 않아서 그렇지.” 김 선생님의 아쉬움이 공감된다.   
 

진심에 진심이 쌓은 21년 

 
문산수억고 환경동아리 해바라기 학생들이 공릉천 생태조사와 함께 공릉천 살리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홍수
 
사실 진짜 속이 상하는 일은 따로 있다. 진심으로 제안한 이야기가 형식적으로 끝나버리거나 받아지지 않을 때, 또는 생태계를 보호하자란 순수한 목소리에 빈정대는 어른들을 만날 때다. “4대강사업 때 정말 심했어요. 그 때 임진강도 파헤치려고 해서 학생들도 나서서 임진강을 지켜달라고 캠페인을 했는데 욕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사람이 살아야지 개구리가 뭐가 중요하냐는 식인 거죠.” 그럴 때면 김 선생님은 방패가 되어 아이들의 힘이 돼 주었다. “캠페인 전에 미리 이야기해요.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괜찮다, 우리가 같이 있으니 겁내지 말라고 이야기하죠.” 다행히 임진강은 4대강처럼 파헤쳐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거기엔 ‘해바라기’의 용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젠가게임으로 이해하더라고요. 블록을 하나 둘 빼다보면 탑이 무너지듯 생물종이 하나 둘 사라지면 결국 이 세계도 무너질 거라는 통찰이죠.” 
 
21년의 시간 속에 문산여고는 문산수억고로 이름을 바꿨지만 ‘해바라기’의 이름과 활동은 그대로다. 이제 ‘해바라기’는 환경 분야는 물론 역사, 문화, 평화까지 아우르는 넓은 활동영역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지역에서 답사와 캠페인을 하다 보니 역사와 문화를 따로 빼놓을 수 없더라고요. DMZ 인접지역이라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고요.” ‘해바라기’는 융합동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해바라기’가 배우는 세상은 좀 특별하다. 이를테면 이들에게 평화는 남북의 평화, 사람들만의 평화만이 아니고 동물과 식물, 생태계의 생명들과도 더불어 사는 일이다. 활동 분야가 넓어졌지만 그 무엇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다. 최근엔 해바라기 활동 중 하나인 ‘역사와 민족 지킴이’ 부문이 국가보훈처로부터 활동과 성과를 인정받아 유재석의 ‘유퀴즈’ 프로그램과 함께 올해 보훈문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을 정도다.  
 
학생들에게 ‘해바라기’는 인기다. 올해도 신청자가 많아 그중 30여 명을 선발했을 정도다. 아이들은 스스로 ‘활동을 하지 않는 회원은 탈퇴시킨다’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그 정도의 진심이 ‘해바라기’를 움직이는 힘이다.
 
‘해바라기’ 활동이 꼭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학교 지원이 전혀 없어요. 그나마 있던 동아리실도 학교에서 없앴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김 선생님이 자비를 대고 발품을 팔아 ‘해바라기’ 활동을 이어간다. “몇 년 전 연이어 사고가 나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쓰고 다치기까지 하니 너무 미안했어요.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아이들에게 말을 하니 아이들이 울더라고요. 그만 두지 말라고. 제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공부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좀 특별해요.” 아이들의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 버티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그는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아이들 생각에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계속 해야죠. 저 또한 해바라기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고 행복해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거요? 다양한 생물들이 한데 모여 사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각자 취미와 적정에 맞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도적이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죠.”   
 

“홍수쌤을 만나 행복한 학생”

 
인터뷰 며칠 후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지키느라 인터뷰에 동석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문자가 왔다. “나에게 ‘해바라기’란 자신감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나를 외향적으로 변화시켜주어 자신감이 생겼어요.”(민제) “무료했던 학교생활에서 열정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동아리”(두한) “홍수쌤은 항상 좋은 길로만 가게끔 지도해주는 참 선생님”(현민) “부족한 저를 앞으로 잘할 거라 믿어주는 분”(성준) “홍수쌤을 만나 행복한 학생입니다.”(우진) 
 
선생님만큼이나 아이들에게도 해바라기와 김홍수 선생님은 자랑이자 버팀목이었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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