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62] 진재영 할아버지의 ‘팔팔한 나의 청춘’

진재영 할아버지의 ‘팔팔한 나의 청춘’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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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최고령 회원이신 진재영 님)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회원이 계시다는 자랑에 마산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으로 한 방에 기차를 예매하고 서울에서 마산까지 3시간.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마산이다. 역 앞 택시를 잡고는 주소를 일러주니 기사는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목적지까지 정확히 안내한다.


“밖에서 못 만났나 보제예. 마중 나간다고 밖에 나갔는데.” 주인공의 아내가 손님을 맞는다. 혹시 길을 못 찾을까 몇 번이고 전화를 하더니 밖에서 기다린 모양이다. 잘 도착했다 연락하고 잠시 후 객이 주인을 맞았다. 용케 잘 찾아왔다며 반기는 주인공 모습에 잠시 놀란다. 반듯한 자세며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초롱초롱한 눈빛까지 낼 모레 아흔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취미가 인터넷신문 찾아 읽기라니.


“예전엔 낙동강이 얼어서 달구지가 그 위를 다녔지요. 삼한사온이라고 해서 3일은 춥고 또 4일은 날이 풀리고 그랬는데 요즘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워요. 기후변화라고들 하는데 전 몸으로 느끼지요.”

 

근현대사의 산증인
진재영 할아버지는 1924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일제 치하 시대에 태어난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벌이면서 남자들은 전쟁에 징집되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고 산에 좋은 나무는 죄다 베어가 민둥산 만들고…….” 광복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이를 들쳐 업고 피난길에 올랐지요. 근데 가다가 인민군과 미군이 대치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예요. 오도 가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낙동강에서 한동안 노숙을 했지요.” 책으로 접했던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왔다.

 
전쟁이 끝났어도 시대의 아픔은 계속됐다. 갈라진 분단국가의 비극은 전쟁만큼이나 잔인했다. 독재정권, 광주 민주화항쟁 등. 옳고 그름을 알고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이들에겐 아픔의 시기였다. 그 당시 그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힘든 시기였죠. 학생들도 그렇고…….” 그 시절은 여전히 그에게 아픔이다. 떠올리기도 힘든 듯 그도 아내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해방되고 6.25전쟁이 터지면서 좌우로 갈라졌어요. 그 당시 사람들은 좌가 뭔지 우가 뭔지 잘 몰랐어요. 그 사이 친일파들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다시 정권을 쥐고. 남북이 갈라져 일어난 비극들도 적지 않죠. KAL기 폭파사건, 아웅산 폭탄사건 등. 5.18광주민주화 운동처럼 진실이 밝혀진 것도 있지만 앞으로 밝혀져야 진실들이 더 많죠.”


그래도 세월은 흘러 2012년을 산다. 그의 나이 88세, 한 세기에서 10년 정도 모자란 세월을 살았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인연을 맺은 아내도 84세 할머니가 되었지만 변함없이 그의 옆에서 말벗이 되어주고 있고 아들, 딸들도 잘 자라줘 세상에 나가 제 몫은 하고 아비의  가르침대로 나눔까지 실천하고 살아주니 그저 고맙다. 또 그들이 짝을 만나 다시 가족을 꾸려 손자, 손녀 10명에 증손주가 5명이나 되니 흐뭇하다. 그 자손들이 때마다 안부를 챙기고 또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살며 틈틈이 노부부의 안부를 챙기는 자식도 있어 그의 노년은 따듯하다. 가혹했던 역사 속에서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이젠 손주들 재롱 보며 세상사 걱정 없이 편안한 노후를 즐길 법도 하다. 헌데 진 할아버지는 아직도 세상일에 눈을 떼지 못한다. “혼자만 잘 살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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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온 세월이 65년, 부부는 웃음마저 닮았다)

 

할아버지의 근심거리
할아버지의 첫 번째 근심은 환경문제다. “인간은 환경과 교육의 소산인데 어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는 20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 “한 대기업이 낙동강에 페놀을 흘려보낸 적 있어요. 낙동강은 우리 식수인데 회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독물질을 흘려보낸 거죠.” 1991년 낙동강페놀사고 이야기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다시 강을 걱정하고 있다. “요즘 관심사는 4대강사업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입니다.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끝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될 일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하지요. 문제를 저지른 정권을 바꿔서 되돌리고 다시는 그런 사업을 못하도록 해야죠.”


그는 환경문제를 개별적인 사안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유통의 실패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생산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 20퍼센트가 80퍼센트를 지배한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10퍼센트 대 90퍼센트 사회가 됐어요. 그리고 지금은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올바른 사회가 아니죠.” 한숨 고르더니 이내 말을 이어간다. “생산과정에 환경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사전에 신경 쓰고 관리한다고 하지만 그게 완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겉치레로 소비하고 그걸 생산하기 위해 자원을 낭비하고 또 생산에 필요한 전기가 부족하자 발전소도 더 짓겠다고 그러는 것 아닌가요.”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 이는 무분별한 개발 사업에 따른 환경파괴, 자원고갈, 각종 환경오염오염, 쓰레기문제에서 핵 위험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찾아내 해결한다는 말씀이시다.


또 하나, 우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선 평화를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신다. “지금 한반도는 갈라져 있어요. 소통하지 않고 서로 적대해 전쟁이 터지면 큰 일 아닙니까. 북한엔 핵폭탄이 있고 남한엔 핵발전소가 있지요. (남한은) 지금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 짓겠다고 난리에요. 전쟁을 하자는 건 다 죽자는 거죠. 당장 정치적으로 푸는 게 어렵다면 경제, 문화, 민간 교류 등은 지속해 평화를 유지해야죠.”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던 것을 기억하는 할아버지에게 평화는 간절하다.


할아버지의 두 번째 근심거리는 교육이다. 30년 교편을 잡았던 그였기에 최근 아이들의 자살, 왕따, 학교폭력 등의 소식은 더욱 안타깝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입니다.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어른들의 사회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해요.” “지금의 교육이란 건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교육이에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하죠. 그런 체제 안에선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아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혼자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가면 뭐합니까. 요즘은 비싼 등록금에 허리가 휘잖아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라고 할 수 없죠.”


교육개혁을 위한 그의 제안 하나는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교육이다. 머리만 굴리지 노동을 천시하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한다. “요즘 엄마들, 아이들이 설거지라도 도울라 치면 가서 공부하라고 해요. 그러면 안 돼요. 집에선 자기가 자고 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부모님 심부름도 해야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면서 노동과 협동의 가치를 익힐 수도 있지요. 또 오전엔 이론 공부를 하고 오후엔 농사나 기술을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는 교육을 한다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도 즐길 줄 알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진재영 선생님은 2012년 1월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에서 녹색인상을 받았다. 18년 동안 변함없이 묵묵히 환경운동을 위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감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다른 상들은 거부했지만 이 상만큼은 자랑스럽게 받으셨다며 진 선생님은 자랑하신다.


세상을 향한 할아버지의 걱정은 어쩌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분단된 나라가 아닌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잘 살고 못 사는 사람 없이 서로 나눔을 실천하고 먹을거리 등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 할아버지가 그토록 만나고픈 나라일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세상 뒤로 물러나 앉아있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했다. “미안합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좀 더 깊숙이 생각해봤으면 해요. 지금 이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길 바라요. 만약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세상이 잘못된  거지요. 그렇다면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해야겠지요. 저도 제 힘이 닿는 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힘내세요.”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빠르게 변한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만 입력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가. 당신이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컴퓨터에서 그 답을 찾을 순 없지만 이날 진재영 할아버지를 통해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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