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93] 엄마와 딸의 ‘강남에 쨍하고 해 뜬 날’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회원 소유리 양과 김수경 씨
 
9월 13일 토요일 아침. 교복을 입은 유리는 엄마의 손을 잡고 서울시 품질시험소 옥상에 올랐다. 옥상엔 태양광 패널들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만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모녀다. 이곳은 강남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 세운 첫 번째 햇빛발전소인 바우뫼햇빛발전소로 오늘 준공식이 열린다. 유리는 강남햇빛발전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이곳 바우뫼햇빛발전소의 주인인 셈이다. 그동안 상상만 했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며 엄마와 딸은 들떠있었다.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가족

 
소유리 양은 올해 열여덟 살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수줍게 웃는 유리 양은 영락없는 아이다. 옆에서 엄마 김수경(47세) 씨는 딸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오늘 일이 있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유리보다 두 살 많은 오빠도 햇빛발전소 조합원이다. 남매는 햇빛발전소 건립 소식을 듣고 용돈을 모아 햇빛발전소 조합비를 내고 당당히 조합원에 이름을 올렸다. 모든 조합원이 그렇겠지만 남매에게 햇빛발전소는 의미가 깊다. 햇빛발전소 건립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 홍보도 나서고 기금 마련을 위해 학교 안에 부스를 마련해 ‘쿠키’를 판매하기도 한 터라 누구보다 햇빛발전소 건립을 기다렸다. 수경 씨는 조합원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통해 그 과정을 지켜보고 온 터라 햇빛발전소에 대한 애정이 크다.   
 
유리는 평소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유리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고 강남서초환경연합 회원이기도 하다. “아빠는 자동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시는데 지하철을 타면 운동도 되고 시간도 잘 지킬 수 있다며 굉장히 좋아하세요. 엄마는 무엇이든 잘 키우세요. 화초도 잘 키우시고 화분에 상추도 심어 식탁에 내놓기도 하세요. 화학물질 들어간 제품 대신 EM효소를 이용하시구요. 오빠는 물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저한테도 물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해요. 그리고 저는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집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불안해서 다 끄고 다녀요.” 유리는 가족 한 명 한 명 소개를 한다.   
 
유리네 가족이 환경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게 된 것은 유리와 오빠 때문이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탄천을 찾아가 수질을 측정하고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강남서초환경연합을 알게 되고 하천 활동 외에도 강남서초환경연합과 이런 저런 캠페인을 함께 하면서 점점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이가 화가 잔뜩 나서 왔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간밤에 어떤 기업이 하천에 폐수를 무단 방류해서 하천이 더러워졌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이야기를 듣다가 저도 화가 난 적이 있어요. 아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도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이 따라 환경연합에 가입하게 되었어요.”라고 엄마는 아이 자랑을 섞인 가입 동기를 밝혔다.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환경과 관련된 일만큼은 아이들의 잔소리가 한 수 위다. “이번 여름에도 아이들 성화에 에어컨도 제대로 못 틀었어요. 얼마 전에 좀 큰 텔레비전으로 바꿨어요. 나름 생각해서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제품으로 구입했는데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이라도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더라고요. 추석 때 한 번 켜고는 그 다음부턴 잘 못 켜겠더라고요.”라며 유리를 슬쩍 쳐다본다. 꼭 아이들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환경에 대해 별로 신경 쓰고 살지 않았잖아요. 먹는 것도 그랬어요. 하다못해 유전자조작식품이 뭔지 모르고 심지어 더 좋은 건가 싶어 먹기도 했어요. 더 편하게 살려고 한 것들인데 지금 보면 그런 것들에 발목 잡힌 것 같아요. 지금 아이들이 아픈 게 그 영향인 것도 같고, 핵발전소도 그렇고. 그것들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말 겁이 나요. 그래서 더 실천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는 수경 씨의 말에 미안함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기후변화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얼마 전에도 잠깐 내린 비로 하천 물이 불어나 길 가던 시민들이 고립되는 일이 벌어졌잖아요. 전에는 볼 수 없던 스콜성 폭우가 요즘은 자주 내리는 것 같아요.  또 전에는 사계절도 뚜렷했는데 봄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겨울도 그렇게 춥지 않은 것 같고. 기후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죠.”  
 
유리도 걱정이 많다. “친구들 중에 아토피가 심한 친구들이 많아요. 또 미세먼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도 많고요. 친구들 만나면 우리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해요.” 유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에너지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걱정이 더 늘었다. “엄청 무서웠어요. 사고가 난 땅에서는 아무도 못살고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피해가 진행중이잖아요. 우리나라도 핵발전소가 있는데 알게 모르게 고장도 많고 사고도 벌어지고 있어요. 지난번에 고리1호기가 정전돼 위험한 상황까지 간 적도 있고, 우리나라라고 그런 일이 안 벌어지란 법은 없잖아요.” 유리는 집에서도 핵발전소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하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흠칫 놀랄 때가 적지 않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 아이가 너무 심각하게 걱정을 하는 거예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고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니더라고요.” 엄마는 한숨을 쉰다. 유리는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이에 대한 정보나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주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정보를 찾고 친구들과 공유해요. 정부도 문제가 생기면 그걸 감추려고 다른 연예인 기사를 터트린대요. 알려지면 여론이 악화되니깐 그걸 막으려고 일부러 그런대요.” 엄마는 유리가 대견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기도 하다.  
 
핵발전소가 무서운 유리와 기후변화가 걱정되는 엄마는 햇빛발전소 앞에서 희망을 품는다
 
 

힘들게 올린 햇빛발전소

 
그래도 오늘은 유리도 희망을 품는다. “얼마나 많이 생산될까.” “오늘 햇살이 좋으니깐 많이 생산되겠지?” 엄마도 딸도 얼굴이 활짝 피었다. 앞으로 유리는 집에서도 불 끄라는 잔소리에 이어 이번 달은 발전소에서 얼마의 전력을 생산했는지 햇빛발전소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친구들과도 무섭고 암울한 이야기 말고도 유쾌하고 즐거운 정보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사실 유리는 오늘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친구들이랑 엄청 준비했었어요. 발전소 건립되면 발전소 모니터링도 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기로 계획까지 세웠는데 건립이 늦어지면서 약속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저 혼자만 남았어요.”라며 아쉬워한다. 
 
바우뫼햇빛발전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에 준공되었어야 했지만 부지 선정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건설이 지연됐다. 원래 세곡동 주민센터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건설하려고 준비를 해왔지만 높은 임대사용료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공공시설을 임대해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려면 임대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기존의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을 적용할 경우 공시지가에 따라 공공시설의 임대 사용료가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서울, 특히 강남처럼 지가가 높은 곳에서는 임대 사용료가 높아 시민들이 햇빛발전소를 설치하기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서울시는 시민햇빛발전소 활성화를 위한 서울시장 방침에 따라 설치용량에 따라 임대 사용료를 책정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협동조합도 이를 염두해두고 진행을 했지만 강남구는 관련 조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부지를 다시 찾아야 했고 그 사이 설상가상으로 시공을 맡기로 한 업체도 부도가 나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 건물인 품질시험소 옥상을 임대 받을 수 있었고 드디어 햇빛발전소를 세울 수 있게 됐다.  
 
 

쨍 하고 해 뜬 햇빛발전소로 오세요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준공식이 시작됐다. 눈부신 햇살이 태양광 패널에 쏟아졌다. 바우뫼햇빛발전소는 36킬로와트짜리 태양광 패널로 예상 발전량은 일 년에 4만2048킬로와트시다. 2013년 기준으로 4인 가구가 월 평균 337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소비한다고 하니 10가구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생산되는 셈이다. 강남서초환경연합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산정한다면 연간 20년생 소나무 6500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서울에서도 특히 에너지 소비가 많은 강남지역이라 에너지절약과 탈핵 교육의 장소가 될 것이다.
 
이날 유리는 바우뫼햇빛발전소 제1기 소장으로 취임했다. 소장의 역할은 틈틈이 햇빛발전소를 찾아 발전소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체크하고 태양광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패널 위 청소 등을 한다. 임기는 2014년 12월까지로 앞으로 3달 정도 남았다. 유리는 임기가 짧아 아쉽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조합원들 앞에서 약속했다. 
 
한편 협동조합은 바우뫼햇빗발전소에 이어 2호기를 준비하고 있다. 출자금은 전력을 판매해 돌려받고 이익금은 조합원에 배당하거나 환경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10만 원 이상 출자하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문의 02-574-7047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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