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어디까지 먹어봤니?

강원도 홍천 산자락에 봄이 더디게 왔다. 전국이 벚꽃놀이로 흥분할 때도, 가정마다 밥상에 냉잇국이 올라올 때도 강원도 깊은 산은 캄캄하고 추웠다. 그 산들, 봄비에 흠뻑 젖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 새싹을 밀어냈고 산 아래 먼 마을들이 “아유 낮엔 덥네!” 말하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초록에 완전히 젖었다. 그제야 산 마을 사람들은 슬슬 산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산길에서 만난 더덕취

 

산나물 찾아 나선 길

 
강원도 홍천군 내면은 해발 600미터 지점의 산간마을이다. 사방에 워낙 큰 산들이 많아 마을 사람들은 그저 앞산, 뒷산 혹은 방태산 줄기, 오대산 줄기라는 심심한 이름으로 그 산들을 부른다. 더러 친절한 이를 만나면 드릅박골, 박달골, 작은소매골, 큰소배골, 들평지, 명지가리, 아침가리, 배나무골, 밤골, 속수쟁이골 등등 산 대신 골짜기 이름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 고향이 그 산간이다. 이 맘 때 아버지는 산에 올라 드릅, 개두릅(엄나물), 참나물, 곰취, 누리대(누룩취), 명이나물(산마늘) 등 산나물을 한 보따리 해오셨다. 밥상은 데친 드릅과 초장, 참나물 무침, 곰취 쌈으로 풍성했다. 
 
서울살이 십수 년, 내 밥상은 갈수록 간편해졌다. 5월 초 야근하다 봄비 맞으며 퇴근했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 식은 찬과 물기 없는 전기밥솥의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해오신 봄나물의 향이 떠올랐다. 먹고 싶기도 했지만, 그 향을 맡아보고 싶어졌다. 마음 급해져 다음 날 한달음에 고향집으로 향했다. “아빠 산에 가자!” 느닷없이 들이닥친 딸내미의 성화에 아버지는 그나마 수월한 골이라 생각했는지 속수쟁이골로 향했다. 열목어가 산다는 계곡을 지나자 울창한 숲이다. 
 
가는 곳마다 금낭화가 수줍게 피었다. 마을 사람들은 며늘취라고 부른다. “고약한 시어머니 모시던 며느리가 밥 잘 됐나 싶어 밥알 몇 개를 먹었는데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며느리를 때리고 굶긴 거야. 며느리는 시름시름 앓다 죽었지. 그 며느리 무덤에 꽃이 피더래. 가만 보니 꽃이 입술에 밥알을 물고 있는 며느리 같은 거야.” 슬픈 이야기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꽃을 보고 밥알을 떠올렸을까. 배고팠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금낭화 꽃이 채 피기 전에 뜯어서 나물로 먹었다. 참나물이며 더덕취도 올라왔다. 아버지의 산중 나물 구별법 한자락. “더덕취와 비슷하지만 줄기에 솜털이 난 저건 개더덕취야. 안 먹는 거야!”
 
산길이 험해진다. 뒷산 가듯 따라나서는 게 아니었다.   
 
 
 

가난한 이들 목숨 구한 산나물

 
아버지는 여전히 성큼성큼, 나는 기기 시작했을 때, 큰 나무들 사이 양지바른 곳에 익숙한 나물이 보인다. 손바닥만한 큰 잎을 시원하게 펼친 곰취다. 잎이 곰 발바닥을 닮아 곰취라고 하는 이도 있고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먹는다고 해서 곰취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유래야 어떻든 그 향과 맛이 좋아 마을 사람들은 으뜸으로 친다. 별다른 조리법도 필요 없다. 깨끗한 물에 한 번 씻어내 물을 탈탈 털어 잎을 펼치고 그 위에 밥과 장을 싸서 먹으면 그만이다. 그 향이 어찌나 좋은지 조선시대 요리책인 시의전서는 ‘그 향을 삼키기 아깝다’고 기록했다.
 
맛과 향이라면 산마늘도 버금간다. 곰취보다 더 높은 산에서 자라는 산마늘은 이름처럼 연한 마늘 맛이 난다. 산마늘은 울릉도산이 잘 알려졌으나 이곳 산마늘은 오대산이 자생지로 울릉도 산마늘보다 입이 더 좁고 향이 더 강하다. 마을사람들은 산마늘보다는 명이나물이라 부른다. 전하는 얘기로는, 조선시대 울릉도로 이주한 이들이 육지에서 가져간 식량이 바닥났는데 겨울이라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 눈 속에 올라온 산마늘 싹을 발견하고 이것으로 끼니를 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나물을 생명을 이어주는 나물, 명이나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이나물뿐이겠는가.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저장했던 음식들이 바닥을 보이고 농사를 시작하는 때라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다. 이 시기 산은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량저장소이자 축난 몸을 지켜주는 약방이었다. 지금이야 보릿고개니 춘궁기니 하는 말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산나물을 찾는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성분을 들먹이며 신경통에 위장병, 고혈압, 해독, 각종 암 등 외지인들에게 산나물은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약초다. 마을 사람들조차 외지인들에게 산나물의 효능을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덩달아 몸값도 올랐다. 부작용도 있다. 산나물이 만병통치약으로 소문나다 보니 외지인들이 뿌리 채 뽑아가거나 아직 어린 싹을 잘라가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사람들 발길이 닿기 쉬운 산은 씨가 말랐다고 한다. 산을 그저 쓸모 있는 창고로 여기는 세태가 아버지는 불편하다. 
 
 

누가 산을 망치나

 
“고만 가자!” 끙끙 대며 따르는 딸을 보기 힘들었는지 아버지는 하산을 재촉한다. 들고 왔던 보퉁이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빈막걸리통과 비닐뿐이다. 이 일대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허가 받은 이들만 입산이 가능하고 임산물 채취도 금지돼 있다. 아버지는 이것도 못마땅하다. “골프장 짓는다, 택지 조성한다며 멀쩡한 산 하나를 통째로 밀어버리면서 주민들이 나물 좀 뜯어먹는 게 무슨 해가 되나, 외지 사람들 와서 온 산을 헤집어도 하나 못 잡으면서···!” 멀리 갈 일도 아니다. 옆 마을 홍천에는 산을 깎고 들어선 골프장이 마을 건너 하나다. 숲은 사라지고 마을주민들은 쫓겨났다. 지난 10년간(2004~2013년) 전국적으로 골프장으로 사라진 숲은 1만1218헥타르에 달한다. 
 
뿐인가?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진 가리왕산은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조선시대 왕명으로 벌목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보호했을 정도로 귀한 산이다. 정부도 가리왕산의 높은 생물 다양성 가치를 인정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 가리왕산이 잘려나가고 있다. 2018년 열릴 평창동계올림픽 활강 경기장 부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단 3일간 사용할 부지를 위해 수백 년 동안 보호해온 가리왕산을 파헤치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가리왕산 대신 다른 대안지를 내놓고, IOC까지 분산개최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이곳 사람들도 눈과 귀가 있다. 가리왕산조차 한 순간에 잘라버리는 정부가 산림보호를 위해 산 마을 사람들의 나물 채취를 막다니 우습기까지 하다.
 
산마늘, 곰취, 누룩취, 곤드레, 병풍나물
 
 

곤드레밥 한 입 곰취 한 쌈

 
하산길, 인근 산나물 재배지에 들러 곰취며 명이나물, 누리대, 병풍나물 등을 샀다. 산행 간 사이 어머니는 강둑에서 곤드레를 뜯어왔다. 곤드레밥 해먹자고 하신다. 큰 솥에 소금 한 줌 넣고 물을 끓여 뜯어온 곤드레를 데쳐낸 후 찬물로 헹군다. 물기를 꼭 짜서 들기름 넣고 조물조물 하고 씻은 쌀 위에 곤드레 나물을 얹고는 밥을 짓는다. 곰취와 산마늘은 찬물에 씻어내어 장과 함께 내놓고 지난해 담근 산나물 장아찌도 그릇에 담는다. 쌈거리가 준비되었으니 고기도 꺼내놓는다. 참나물은 살짝 데쳐 소금과 참기름으로 무쳐 내놓으니 저녁밥상이 풍성하다.
 
곤드레밥에 양념장 비벼 한 입 가득 넣는다. 구수한 향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삼겹살도 잘 익어간다. 곰취 한 장 들고 그 위에 삼겹살을 올려 쌈을 싼다. 사근사근 씹힐 때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이 향, 아까워 어찌 삼킬까. 
 
 

어머니의 곰취 장아찌 담그기

 
재료 곰취 2킬로그램, 간장 400밀리리터, 매실진액 400밀리리터, 식초 400밀리리터(식성에 따라 조절)
 
1. 곰취는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털어낸다.  
2. 간장과 매실, 식초를 넣고 휘휘 섞은 후 장아찌 담을 그릇에 곰취를 켜켜이 쌓아가면서 간장소스를 붓는다.  
3. 한 시간 정도 곰취 숨이 죽었다 싶으면 곰취에 부어줬던 간장소스를 다시 그릇에 따라 붓고 곰취는 윗부분도 잘 절여질 수 있도록 위아래를 뒤집어준 후 간장소스를 부어준다.  
4. 세 번 정도 과정을 반복한 후 뚜껑을 덮어 냉장보관하면 된다.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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