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 입 안 가득 봄에 취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사대문 안이 아닌 문 밖 아현동이고 여덟 살까지 자란 곳은 공덕동인데도 여하튼 55년 전의 서울은 봄이 되어 나물을 하려면 논, 밭둑을 찾아가야 했다. 1958년 어느 봄날 공덕동 경의선을 따라 아지랑이 핀 철둑에서 봄나물을 캐며 동막역, 서강역을 지나 당인리 발전소와 수색으로 갈라지는 지금의 청기와 주유소, 홍대 앞 역, 합정동에 이르는 넓은 늪지인 송장내(샛강)라는 곳에 이르면 내가 들고 있는 바구니는 나물로 그득했다. 할머니는 흰 무명보자기를 꺼내 펼친 후 바구니에 나물을 쏟아 잘 싼 후 내게 들고 따라 오라 하시며 오던 길을 되돌아 반대쪽 둑의 나물을 뜯거나 캐셨다. 대부분 냉이종류와 씀바귀 그리고 쑥이었다. 

이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날의 저녁엔 식은 흰밥에 살짝 데쳐낸 초록 냉이에 빨간 고추장을 대충 떠 넣고 비비다 참기름 한두 방울 떨어뜨린 후 다시 비벼 한 숟갈 퍼 입 크게 벌리고 넣을라치면 목구멍에서 어서 들어오라고 꺼억 소리를 낼 정도였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아직 기억에 남은 것으로 보면 그 맛과 향이 대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 이런 날이 다시 올 리 없건만 언젠가는 다시 올 것만 같아 오늘도 산속을 헤맨다.

나물의 사전적 의미는 “풀이나 어린 나뭇잎, 뿌리, 줄기 및 채소 따위를 다듬거나 데친 뒤 갖은 양념에 무쳐서 만든 반찬” 그리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야생의 풀이나 어린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식물들이 나물이나 약초라는 미명 아래 해를 당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보릿고개 초근목피 시절이야 그렇다 쳐도 요즘도 자연산이니 약초니 하며 산과 들에 초록 잎을 달고 나온 것들을 무작정 훑다시피 한다. 허긴 자연의 귀중함을 모르고 무지를 떨며 살았으니 소중하다는 의식을 못한 우리들의 의식이 바꿔야 할 때다. 요즘은 대부분의 나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굳이 산에 가서 몇 개 나지도 않은 걸 발견해서는 산삼이나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꺾거나 캐서는 돌아오는 길에 대부분 시들어 버리기 일쑤다. 우리는 이런 짓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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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냉이는 향이 좋고 영양분이 많아 봄나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 나물이다. 냉이는 20여 종이 있으며 모두 먹을 수 있다. 그중에 우리들이 주로 먹는 냉이는 다닥냉이와 황새냉이, 고추냉이다. 예전에는 이른 봄 햇살 좋은 날 아직 먼 산에 잔설이 분분한 때 둑이나 밭 가장자리 묵밭에 로제트 상태 또는 파릇파릇 올라온 냉이를 캐는 아낙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요즘도 간혹 이런 풍경은 있으나 거의 남의 밭이나 과수원 아님 도로변 심지어 출입이 금지된 곳에까지 스스럼없이 들어가 귀중한 야생화까지도 뽑고 뜯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요즘 재래시장에 가면 자연산 ‘참냉이’라며 한 소쿠리에 2000원인데 된장찌개 두어 번 끓여 먹을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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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줄기차게 피고 지는데 요즘은 대량 재배를 해 봄이면 나물로 밥상에 올라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어 준다. 

민들레는 민초, 앉은뱅이, 포공영, 포공영근, 안질방이, 머슴둘레, 지정(地釘), 금잠초라고도 불린다. 요즘은 서양민들레(유럽산)가 전국 어디를 가나 발에 밟힐 만큼 퍼져있다. 토종민들레는 보기에 연한 노란색이고 꽃잎의 크기가 일정하게 가지런히 나있고 서양 것에 비해 꽃이 조금 작다. 그리고 꽃잎이 적게 난다. 포공(홀씨)도 서양 것은 조밀하여 씨가 안보이고 솜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우리 것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어 보기도 좋고 촬영하기에 좋다. 또한 우리 것의 꽃받침(총포)은 꼿꼿이 위로 향하여 꽃을 받치고 있는데 반해 서양 것은 뒤로 젖혀져있어 구별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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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곳에서는 벌써 3월이면 산언저리나 밭 가장자리 그리고 강, 저수지 둑에서 겨울을 지낸 쑥 캐는 아낙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년생인 쑥은 5월 단오 때 채취한 것이 맛과 약효가 최고라는데 그것도 그늘에 말려야 된다고 한다. 나물하면 요즘은 쑥이다. 우리가 아는 병이란 병에 모두 효능이 있다 한다. 또한 우리민족은 쑥이 없었다면 단군신화가 없었을 것이고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개국설화에서도 쑥은 여성에게 좋았던 것처럼 모든 여성병에 효능이 좋다고 한다. 쑥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많은데 쑥(개)떡에 쑥국, 쑥버무리, 쑥부침개 등이다. 약용, 음식, 염료 등 쓰임이 많은 쑥이 이제 제철에 들었으니 원 없이 잡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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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봄이 왔다고 봄한테 뭘 ‘달래’라는 건지 아님 춘정에 몸부림치는 처자들의 심사를 달래는 것인지 하여간 ‘달래’란다. 어린 시절부터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 먹거나 왜간장에 송송 썰어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튀김이나 부침개를 찍어 먹으면 입맛 돋우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들풀이다. 뿌리는 마늘과 파를 합쳐 놓은 것 같고 줄기는 가는 파 같다. 산언저리 경사지나 밭둑 강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향채이며 백합과 채소가 그러하듯 달래에도 비타민C, 칼슘이 풍부하여 피부미용과 노화방지, 면역기능 향상에 탁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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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3월 중순이면 재배한 땅두릅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두릅이 산나물의 황제라고 하는데 이를 부추기는 한의사도 많다. 두릅은 나무 꼭대기에 나는 나물이라 목두채라 불리기도 하고, ‘문두채’라고도 한다. 이때 ‘문’자는 입술 문(吻)자로 맛있는 나물이라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 입을 꼭 다물라는 뜻이라 할 만큼 맛이 좋다는 것이겠다.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구어낸 후 초장에 찍어 먹으면 그 쌉쌀함과 향이 깊은 산 비오는 날 큰 숨을 쉬는 듯하고 밥맛을 돋우며, 기름진 고기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참 많이 먹게 되는 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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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는 봄나물을 대표하는데 빠지면 섭섭하다 할 나물 중에 하나다. 우선 참취에 곰취 그리고 분취, 서덜취, 개미취, 미역취, 단풍취, 수리취에 바위취까지 취의 종류만 60여 종쯤 될 것이고 먹을 수 있는 것은 10여 종 정도 된다. 그중에서도 참취와 곰취의 향은 독특하여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데 요즘 우리들이 구입하는 것 대부분 재배한 것이다. 건취는 거의 중국산일 가능성이 높아 재배한 것이라도 그저 제철에 구입해 맛있게 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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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이른 봄 시장에 제일 먼저 나오는 나물 중에 하나인 원추리는 ‘넘나물’이라고도 한다. 독성이 강하여 독성을 빼지 않고 먹으면 심한 구토, 설사 등을 하며 심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나물은 살짝 데쳐 풍미와 씹는 질감을 살려 먹는데 원추리는 일반 나물과 달리 소금을 약간 넣고 삶아야 한다. 꽃술을 따버리고 꽃잎으로 밥을 지으면 밥의 색과 향이 좋다 한다.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 나물을 먹으면 의식이 몽롱해지고 근심까지 잊게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한편으로는 꽃이 너무 예뻐 보고만 있어도 근심이 사라진다하여 그리 부르고 있다. 또한 부녀자가 머리에 원추리꽃을 꽂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어 의남화(宜男花)라고도 불렀다. 이는 원추리 꽃봉오리가 아기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에 생겨난 속신으로 풀이된다. 예전에는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뒤뜰에 원추리를 많이 심었는데 이로 인해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훤당(萱堂)이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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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방풍은 말 그대로 바람을 막아준단다. 그런데 우리들이 나물로 쓰는 건 갯방풍이며 ‘갯기름나물’이라고 하는 방풍이다. 해변가 모래밭에 서식하는 방풍도 있으나 이는 대부분 환경부 보호식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니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방풍은 모두 재배한 것인데 향도 특이하고 씹는 맛이 아삭거리며 좋다. 또 잎이나 줄기가 실하여 먹기에 부담스러워 보이나 이게 보드랍기가 미역이나 다시마 삶아 먹는 식감과 비슷하다. 방풍은 재배하는 것이어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나오기는 하나 이 역시 제철에 나오는 것을 먹어줘야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을 것이다.



글•사진 황찬 인천환경운동연합 회원 hc13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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