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구하라

 
봄볕이 꽁꽁 얼었던 땅을 부드럽게 녹입니다. 복수초도 노란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겨울 내내 땅 속에서 잠을 자던 개구리들도 얼었던 몸을 서서히 움직입니다. 피부로 호흡하는 개구리는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먼저 봄이 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땅 위로 올라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진한 갈색이었던 몸은 봄 햇살을 받고 서서히 녹색으로 변합니다.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한 개구리들도 있습니다.  지난 1월 9일에는 서울 남산 중턱자락에서 산개구리 한 쌍이 짝짓기를 했고 지리산국립공원 구룡계곡 일대에 사는 북방산개구리는 1월 23일 첫 산란을 했습니다. 원래 다른 개구리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는 녀석들이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 달 가량 빨리 겨울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들의 겨울잠을 방해한 건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북방산개구리는 환경부 지정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2010년부터 산란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산란 시기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너무 일찍 깨어난 개구리들이 갑작스런 한파에 얼어 죽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이번 겨울은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고 비까지 내리다가 오히려 입춘 지나 급작스런 한파가 닥치고 눈까지 내렸지요. 기후변화로 인해 날씨를 예측하기 힘들어졌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개구리들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도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할 확률이 가장 높은 생물종으로 개구리를 뽑기도 했습니다. 
 
 
느릿느릿하지만 그래도 한 발 한 발 부지런히 기어갑니다. 꼭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또 그곳에서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첫 번째 난관이 닥쳤습니다. 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크기도 속도도 비교할 수 없는 차들을 피해 이 길을 건너야 합니다. 수많은 개구리들이 이 길을 건너다 차바퀴에 밟혀 죽었습니다.         
 
운이 좋아 무사히 그 길을 건넌 개구리들 앞에 목적지가 보입니다. 마음이 급해진 개구리들이 속도를 냅니다. 힘을 모아 폴짝 뜁니다. 앗 갑자기 땅이 사라집니다. 다행히 착지에 성공했지만 사방이 막혔습니다. 옆으로 기어오르려고 해도 수직 콘크리트 벽에서 번번이 떨어집니다. 힘을 내 점프를 몇 번이나 해도 도저히 오를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곳, 바로 콘크리트 수로입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논 옆에 만든 농수로는 과거에는 흙으로 된 둑이었습니다. 흙둑을 오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농수로를 현대화한다며 콘크리트 수직 벽을 만들면서 개구리들에게는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라올 수 없으니 그 안에서 말라 죽는 개구리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전에 없던 사다리가 생겼습니다. 지난 1월 인천환경운동연합이 백령기독연합회, 새와 생명의 터, 환경운동연합, 한스자이델재단, 영국 로즈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설치한 개구리 사다리입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맨홀에 빠진 두꺼비, 개구리 등의 80퍼센트가 사다리를 통해 구출되었다고 합니다. 개구리들이 하나 둘 사다리에 오릅니다. 미끄러운 콘크리트와 달리 그물망으로 되어 있는 사다리를 붙잡고 오르니 한결 수월합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논습지입니다. 점점 습지가 줄어들고 있어 살 곳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논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물론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지만 이곳 백령도는 아직 살만한 곳입니다. 개구리들은 한 해 딱 한 번 번식을 하는데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개구리들이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이유입니다. 멸종위기에 빠진 한국고유종인 금개구리를 비롯해 많은 개구리들이 이곳에서 짝을 만나 알을 낳습니다. 이제 곧 금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초록색 등 양 쪽에 금빛 줄이 눈에 띄는 금개구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삽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금개구리는 이곳 논습지에서 짝을 만나 번식을 하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모기유충이나 곤충들을 먹고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경칩이 지나고 못자리에 물이 고이면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들녘을 메우겠지요. 그 소리에 황새, 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 수많은 새들도 이곳을 찾을 것입니다. 개구리들이 불러들인 생명의 봄이 옵니다. 
 
* 농수로에 빠진 개구리를 위한 ‘개구리 사다리‘가 백령도에 국내 최초로 설치됐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백령기독연합회, 새와 생명의 터, 한스자이델재단, 환경운동연합, 영국 로즈디자인연구소와 함께 2020년 1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에 걸쳐 높이 1미터, 폭 15센티미터의 개구리 사다리 6개를 백령도에 설치했다. 인천환경연합은 “백령도에는 멸종위기에 빠진 한국고유종인 금개구리를 비롯해 국내법으로 보전을 요구하는 멸종위기종 개구리 2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진천의 논 주변 농수로는 많은 양서류가 서식하는 곳”이라며 “개구리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콘크리트 배수로에 한 번 떨어지면 기어 올라가지 못해 죽게 되는데, ‘개구리 사다리’는 농수로에 빠진 양서류들이 사다리를 타고 논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줘 숲과 농지 사이를 오가는 양서류의 이동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다리를 설치한 후에 정기적으로 백령도 학생, 시민들과 함께 ‘개구리 사다리’를 모니터링 할 예정이며, 백령도 논습지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그림 / 김소희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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