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매립되어 부동산이 되다 - 충남 천수만을 중심으로

‘천수만은 한반도 서해의 민물의 유입이 적은 전형적인 내만으로 많은 어류와 무척추 동물들의 산란 및 보육장으로 황해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충남대학교, 1993년)

‘천수만은 충남 해안에 위치한 장방형의 반폐쇄성 해역으로 육지로부터 오염물질의 유입이 거의 없어, 1980년대 이전에는 수질의 유지가 가능하여 연안어업과 양식을 위한 천혜의 어장이었다.’(충남대학교, 1996). 

서쪽으로는 태안과 안면도, 북동쪽으로는 서산시 그리고 동쪽으로는 홍성군과 보령시의 육지부로 둘러쳐져 있는 항아리를 엎어 놓은 형상의 만, 천수만. 방조제 축조를 통한 갯벌 매립 전 천수만은 위의 내용처럼 황해의 뭇 생명을 잉태하고 보육하던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어패류를 채취해 생계를 이어가던 충남 서북부 지역 어민들에게는 귀한 생계의 터전이었다.  


생명의 자궁을 막은 금권연합

1970년 후반, 천수만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가의 왕회장으로 군림하던 정주영 씨가 1978년 말 중공건설경기의 하강으로 해외 건설현장에 투입되었던 중장비 등의 활용 방안을 생각하던 중 천수만 간척 사업을 구상하면서부터다.   

군사 정권 말기이던 1979년, 현대건설은 박정희 정권을 설득해 ‘국토확장 및 간척농지 조성, 식량증산 및 자급률 제고, 농산물 증산에 의한 수입대체, 소득증대로 국민생활 향상 및 안정, 수자원 확보’를 명분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도 검토했다가 폐해가 클 것이라는 것을 알고 폐기 처분했던 천수만 간척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79년 8월 24일, 현대건설은 1979년 1월 10일 고시된 농수산부 고시 제3041호인 「공유수면 매립법 민간기업 참여에 의한 대규모 간척농지개발사업 시행 규칙」이라는 기업과 정부의 이해타산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법규를 근거로 ‘서산 A, B지구 매립면허’를 취득한다.

이후 현대건설은 중동 개발에 투입되었다 철수하면서 사용처를 찾던 중장비들을 총동원하여 1980년 5월부터 천수만의 입구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1982년 10월 26일 결국 서산시 부석면 창리와 태안군 남면 당암리를 잇는 1228미터의 천수만 B지구 방조제에 의해 물길과 생명길이 막혔다. 방조제 안쪽에 만들어진 담수호는 양측 지명을 따서 ‘부남호’라 부르기 시작했다. 1984년 3월 10일, 현대건설은 소위 정주영 공법이라는 폐유조선을 이용한 공법을 통해 6458미터의 방조제로 천수만 A지구의 마지막 자궁까지 틀어막았다. 섬이었던 간월도가 육지와 연결되고 방조제로 조성된 담수호가 ‘간월호’다.

1985년 8월 14일, 현대건설은 64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매립공사 시작 후 15년 만에 매립지 안의 논 조성 공사까지 완료했다. 주민들의 생계터전이었던 천수만 갯벌 등 1만5409헥타르, 약 461만 평을 없애는 대신 두 담수호 1200만 평은 국가 소유가 되고 나머지  1만1039헥타르(3310만 평 정도)의 간척농지 등은 정주영 개인 소유로 만들고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황금어장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주민들

현대가 군사정권과의 야합을 통해 공공재였던 천수만 갯벌 등을 사유화하면서 지역주민들은 보상을 둘러싸고 피눈물을 흘리고 지역 갈등을 겪는 등 지역공동체가 와해됐다. 

천수만 간척을 계획한 정부는 1979년부터 방조제 안에 포함되는 지역에서 어업권을 받아 굴과 바지락 양식을 하던 주민들에게 3년마다 갱신하던 양식장 어업권 허가를 내주지 않기 시작했다. 대대로 양식장을 해오던 지역주민들에게는 한 푼의 보상도 없었다. 보상이라는 것은 바닷가와의 거리 등에 의해 가구당 A급 지역은 300만 원 정도, B급 지역은 150~200만 원 정도, C급 지역은 80만 원에 불과했다. 한 사람이 부업으로 바닷가에 나가 한철 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도 안 되는 금액을 영구 보상금액으로 책정하고 지급한 것이다. 

그러나 C급 지역에서는 이마저도 받지 못하게 되자 주민들의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간척에 의한 피해 보상 요구에 있어 초기에는 지역의 이장과 유지 등 소위 지역의 전통적인 지도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가 초기 보상을 추진한 전통적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청장년층으로 주도세력이 바뀌었다. 

보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역에서는 지도력 이양 등에 따른 세대 사이의 긴장, 보상 요구 금액 등과 관련해서는 업종과 지역 구분 등에 따르는 긴장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보상과 관련해 피해가 큰 부석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래의 연구 자료를 참조하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가 시행한 천수만 간척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피해 보상 요구에 대하여 현대 측과 주민들 간의 타결은 1983~1985년 및 1987~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차는 법적인 허가를 받은 양식장에 대한 것이며 제2차는 관행어업에 대한 것으로 한때 부석면의 26개 부락 전부가 참여하기도 하는 대규모 갈등으로 발전하였다.’(국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한경구, 2003)


말도 되지 않는 보상 금액으로 황금 어장을 빼앗긴 주민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천수만 갯벌이 방조제로 막히고 나자 산란장과 보육장을 잃은 천수만에서는 어류 생산량이 약 62퍼센트나 급감한다.  

조기가 많이 잡혀 조기를 널어 말리던 천수만 안의 작은 섬, 조구널 지역에도 조기는 찾아 볼 수도 없고 방조제 축조로 바뀐 바닷물의 흐름으로 전에 없던 퇴적물과 주민들의 걱정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굴 양식장 등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던 일부 주민들은 보상금을 줄이기 위한 현대와 정부의 획책으로 대대로 물려받아 평생을 투자했던 양식장 허가를 받지 못해 소작농으로도 전락했다. 풍부한 어패류 생산으로 풍요롭던 지역에 돈이 마르기 시작하자 많은 젊은층이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떠났다. 


철새도래지마저 수탈 시작 

많은 주민들이 떠나고 난 천수만에는 남아 있는 주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려는지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현대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대규모 기계화 영농을 하면서 발생하는 낙곡과 담수호의 물고기 등으로 풍부한 먹잇감과 편안한 휴식 여건이 조성되면서 320여 종 하루 최대 50여만 마리의 새들이 천수만을 보금자리로 삼은 것이다. 천수만 간척지는 동북아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철새들의 이동 경로상 세계적으로 중요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자금난을 겪던 현대건설은 간척농지 중 3분의 2 정도를 일반인들에게 분양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불렀다. 무분별한 사람들의 출입과 전에 비해 과도하게 투입되는 비료와 농약이 철새도래지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의 수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초, 현대건설은 천수만 B지구 간척 농지 중 일반분양에서 제외시킨 2058헥타르(약 617만 평) 농지이자 철새도래지를 기업도시와 웰빙 레저 특구라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아 개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말이 기업도시와 특구이지 18홀의 골프장 8개 즉 144홀의 골프장과 수천여 개 객실의 회색 콘크리트 숙박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천수만의 갯벌은 매립되어 현대 소유의 부동산이 됐고 모든 부동산이 그러하듯 토지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반도 갯벌 숨통 조이는 삽날

갯벌 매립은 거대 자본과 토건 세력에 의해 국민의 공유재산을 빼앗아 사유화하는 대표적인 수탈 방법이다. 천수만은 그러한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었던 천수만은 정부 내 개발 부처들과 또 이들과 연결된 토목 건설자본의 마수에 걸려 수탈당했다. 그 생채기는 중단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중에 있다. 

이러한 비극이 비단 천수만 만의 비극이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33킬로미터로 세계 최대의 방조제 길이를 자랑한다는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4만 헥타르가 넘는 갯벌과 연안 습지 그리고 그곳에 관계하며 삶을 영위하던 주민들이 권력과 자본의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천수만 바로 위쪽 “이슬이 모여 구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가로림만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토건세력들이 조력발전댐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전국적으로 그 규모와 속도를 더한 삽날들이 수많은 갯벌, 연안 습지의 생명과 하천, 온 누리 물길에 깃든 수많은 원주민들의 앞마당까지 호시탐탐 넘보며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개발이익동맹군이 단기적 사익을 노려 항구적 공익을 도륙하는 가장 극렬한 사례로서 갯벌 매립은 존재한다. 끊임없이 환경·사회적 약자들을 수탈해 자본 축적을 꾀하는 토목건설 자본을 중심에 둔 개발이익동맹에 의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고리의 해체 시작은 이익동맹의 하수인이 되지 않겠다는 시민적 각성과 실천에서 비롯될 것이다.


글·사진 이평주 환경운동연합 습지보전위원회 위원장 서산태안환경연합 사무국장 lpj@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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