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습지에는 누가 와서 살까요?

우리나라의 논은 습지의 범주상 인공습지에 해당한다. 자연습지보다 생태적 기능이나 역할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다양한 생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의 주식, 쌀을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논 습지에서 이루어진 농업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서 ‘벼’라는 작물을 재배하면서 독특한 농경문화를 형성해왔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요즘 국제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농약 사용 등으로 인해 논 습지와 그 주변에서 서식하던 생물들의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많은 종들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고, 논 습지 생태계가 비정상적인 생태계로 바뀌어 왔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지역에서나마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논으로 되살리기 위해 유기농업, 자연농업, 즉 논 농업을 활용한 생물다양성 농업이 실천되고 있다.
 
논 습지에서 먹이를 찾는 황로 무리
 
 

논 습지는 농촌 생물다양성의 근간

 
논 습지에 서식하는 생물은 조류, 어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곤충류, 갑각류, 초본류, 수목 등이다. 자연퇴비를 주면서 관리하는 논 습지는 흙의 영양분이 풍부하여 많은 미생물이 번식한다. 그러면 미생물을 먹이로 하는 생물 또한 늘어난다. 먹이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논은 일정 기간 수위가 안정되어 있고 수온도 높아 어린 개체가 자라는데 적합한 장소를 제공한다. 많은 생물이 논에서 알을 낳거나 새끼를 키운다. 예를 들면 미꾸라지나 송사리, 메기 등의 물고기는 수로를 터전으로 살아가지만 산란기가 되면 논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또 물방개나 잠자리 등도 논에 와서 알을 낳는다. 논에는 개구리의 유생인 올챙이도 많이 자란다.
 
논을 둘러싼 물의 순환은 다양한 수서생물의 번식지, 먹이터, 서식처가 됨과 동시에 바다→ 강→ 논, 혹은 산→ 강→ 논으로 생물이 왕래하는 이동통로가 되어 생물을 길러왔다. 또 논두렁은 물을 저장하는 둑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통행 장소이기도 해서 수시로 풀베기 작업을 해 왔다. 이 풀베기 작업에 의해 다양한 식물이 공존하는 풀밭으로 유지 관리되어 왔다. 더욱이 이 논두렁은 논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피난장소, 월동장소, 산란장소 그리고 가까운 산으로 이동하는 경로로서 중요한 장소이다.
 
논에는 백로 등의 새도 찾아온다. 백로류는 주로 마을산을 보금자리로 이용하고 논을 먹이터로 이용한다. 이들 논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논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논 주변의 숲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극히 일부 논 습지에서만 발견되는 뜸부기(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와 논 습지 주변 농가에서 번식을 하는 제비는 중요한 지표종이라 할 수 있다. 겨울철이 되면, 월동을 위해 황새, 두루미류, 기러기류, 오리류 등 겨울철새들이 논경지에 찾아와 떨어진 벼 이삭이나 드렁허리, 미꾸라지, 우렁이 등의 먹이를 먹고 휴식을 취한다.
 
농촌은 논뿐만 아니라 밭, 초지, 수로, 저수지, 마을산 등의 다양한 환경이 모자이크 형태로 조합돼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이 다양한 것도 농촌에 생물이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이다. 즉 논의 생물다양성은 논과 그 주변의 밭, 수로, 웅덩이, 습지, 초지, 잡목림, 주택림 등 다양한 환경이 필요하다.
 
논은 생물에게 있어서 물을 끌어들이고 물 빼기, 모내기와 벼 베기 작업 등 오랜 시간 동안 사계절의 변화처럼 매년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그 변화에 대처하는 적응 방법을 터득하여 같은 시기, 같은 환경에 매년 나타난다. 그래서 논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농민들의 농사일에 생활을 맞춤으로써 스스로의 생활을 적응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 기준에 맞는 논습지 보전과 관리 정책 필요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국가 간의 협약이 체결되어 국제적인 움직임이 확대되어 왔다. 람사르협약은 1971년에 이란의 람사르지역에서 개최된 습지회의에서 세계인의 환경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체결되었다. 1992년에는 지구 환경정상회의(리우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생물다양성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람사르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에서 논 습지와 관련한 결의문이 채택되어 생물다양성 증진에 논습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공식 인정하게 되었다.
 
먼저 2008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제안으로 ‘논 습지에 대한 결의문 Ⅹ-31’이 채택되었다. 람사르협약 결의문 Ⅹ-31의 서문에는 습지 시스템으로서 논습지의 생태학적 또는 문화적 역할과 가치의 유지와 향상을 명문화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논 농업’의 실천을 위해 논의 식물상, 동물상 및 생태적 기능과 논과 습지시스템으로서 생태학적 가치를 유지해 온 논 농업과 공동체 안에서 발전해 온 문화에 대해 심층조사를 권장했다. 당사국에 대해 ‘지속가능한 농법과 물 관리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이런 농법과 지역의 정보를 정부 간, 농업인, 보전기관으로 넓혀 정보를 교환할 것을 최종 결의문에 함께 포함시켰다. 즉 전통적으로 생물다양성의 향상에 기여하도록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해서는 그것을 ‘농업유산’으로서 인정하고 농업인을 중심으로 한 정보교환과 연구의 장 제공을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최종 결의문에는 쌀이 적어도 114개 나라에서 생산되어 세계의 절반 이상의 주식으로서 세계 칼로리 공급의 20퍼센트를 점하고 있고, 논 습지는 사람의 건강, 식량안전보장, 빈곤 감소, 지속가능한 습지관리에 공헌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 향상의 관점에서 논이 곤충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등으로 구성된 생태계를 유지하고 물새의 이동경로 및 개체군의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논에 관한 수생생물의 다양성이 농촌사람들의 영양, 건강, 행복에 공헌하며, 앞으로 농업 생물다양성지표를 국제적으로 작성해서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인공습지인 논 습지, 자연습지 등 습지와 하천유역관리지침을 각국이 작성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결의문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국제중요농업유산체계(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 GIAHS)와도 연계시킬 것을 포함시켰다.
 
이 결의문의 채택으로 지속가능한 논 농업이 생물다양성 향상에 공헌한다고 하는 것을 세계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결의문은 이후 생물다양성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CBD COP10)에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정부는 ‘습지보전법’에서 논 습지를 습지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논 습지를 염전과 함께 인공습지로 규정하고 습지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논 습지에 대한 생물다양성의 증진 책임과 관리 권한을 농림축산식품부가 역할을 맡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경부가 199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도’도 농림축산식품부로 이관하고 대상지역과 예산규모를 더욱 늘려서 자연농업, 유기농업 등 친환경 농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논 습지의 생물다양성 증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람사르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개최국으로 모범을 보이는 행위가 될 것이며 국가적 위상 또한 높아질 것이다.
 

글·사진 주용기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juyk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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