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아 참,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 요즘 힘드네요.” 평소에도 걸걸하신 계장님의 목소리에 오늘따라 피곤함이 묻어난다.

2009년 12월 6일, 의항 2리 개목마을에 들어갔다. 내태배 갯벌에서 떠오르는 유막과 함께 30센티미터 이상 아래에 그대로 갇혀있던 기름펄이 떨어져 나왔다. 짐작은 했고 계속 보아왔지만 아직도 기름만 보면 “어휴, 이걸 어쩌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굴착기로 갯벌을 걷어내자 그 사이사이 꿈틀거리는 쏙, 갯가재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2008년 초부터 개목마을 해안가 일대에서 대량 폐사했던 쏙들이 2009년 4월부터 조금씩 잡힌다더니 어느새 번식도 했는지 작은 개체들도 여럿이다. 방법이 없다고 사람도 손을 뗀 기름 찬 갯벌을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은 결국 갯생물들이었다. 


손해사정은 남의 손으로, 우리 정부는 뭐하나?

온 땅과 하늘이 검게 보이던 그 날이 벌써 2년 전이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주민들의 삶터와 열심히 기름을 닦았던 온 국민들의 마음에도 햇살이 깃들면 좋으련만 들려오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답답하기만 하다.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선주 책임제한절차에 따른 제한채권 신고액은 전국에서 12만6444건, 3조7533억 원에 달한다. 그중 국제유류보상기금(IOPC)에 청구되어 지급된 금액은 138건, 22억3000만 원으로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IOPC의 해외 기름유출사고 보상사례를 보면 1997년 일본 나홋카호 73퍼센트, 1999년 프랑스 에리카호 60퍼센트, 2002년 스페인 프레스티지호 16퍼센트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수치들이다. 거기다 16퍼센트를 보상받은 스페인은 IOPC의 보상 전에 이미 정부가 주민피해를 95퍼센트를 보상했다. 한국의 IOPC 기금 분담률은 일본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렇게만 보자면 IOPC 기금이란 열심히 쏟아 붇고 제대로 타먹지도 못하는 보험에 지나지 않지 않나? 1993년에 일어난 제5금동호 사고의 보상률은 11.6퍼센트,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의 보상률은 27퍼센트, 이번엔 또 몇 퍼센트의 보상률로 어민들을 울리려는지, 매번 런던 회의에 가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낮은 보상률의 첫 번째 이유는 무자료 영업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 IOPC의 ‘무허가 피해 무보상 원칙’은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에도 존재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수의 사고해역 주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12년이 흐르도록 달라진 것은 없다. 서류작성 대행과 무허가어업 사전관리를 통한 신고제 확립, 사고발생시 증빙서류작성 매뉴얼구축 등 구체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낮은 보상률의 또 한 가지 이유는 어쨌거나 정부의 입체적인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사고 직후 국영보험사를 통해 피해사정에 나서며 IOPC를 상대했던 스페인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피해보상 전문가를 고용하면서 비용을 부담한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은 정부마저 IOPC의 사정금액에 한정된 특별법(IOPC의 최종 피해 산정액 중 기금 한도액 3216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정부가 부담한다.)을 만들었고 손해사정의 과정은 IOPC라는 국제기구와 주민들 간에 민사적인 일로 밀어두고 있다. 의항2리에서 청구된 311건 중 유일하게 카드단말기를 사용한 횟집 주인은 수백 장의 서류를 제출했지만 IOPC에서 기름피해로 인한 소득감소가 아니라며 12퍼센트의 사정금액을 통보받았다. 횟집에 양식장, 굴 채취까지 해온지라 제대로 된 사정을 받아보려고 외국도 가보고 영국 보험사측도 만나보고 나서 깨달은 것은 “다 끝났구나.”라는 한 가지 사실이란다. 노력중이라는 정부말만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마을의 맨손어업인들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단다. 


삼성이 뒷짐만 지고 있는 이유

한국 정부가 가해자 삼성이 아닌 IOPC에 매달려 있는 동안 IOPC는 ‘삼성중공업의 무모한 항해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다.’며 13억6700만 위안(약 2795억 원)의 구상권청구소송을 중국 닝보해사법원에 내면서 조선소 출자금 약 4600억 원도 가압류했다.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선주보험사(P&I)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추가로 냈다. 

삼성이 한국기업인데도 이들이 중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당연히 승소 가능성 때문이다. 각국 법률가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한국에서 삼성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한국정부의 삼성 감싸기를 이제 그들도 알고 있다. 

IOPC와 P&I가 포기한 한국에서의 선주책임제한절차 개시신청(삼성이 56억으로 모든 민사적 책임액을 제한해달라는 신청)의 2심이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이다. 2심마저 법원이 삼성 손을 번쩍 들어준다면 시민들과 피해 주민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중선체 의무화, 이번엔 제대로 되려나

현재 IOPC 보상금은 3216억 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 23개국이 가입해 있는 <추가기금협약>에 가입하게 되면 보상액은 1조2000억 원까지 가능하다. 이 추가분담금은 국내 정유사들의 몫이다. ‘1조2000억 보상 가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국토부가 여러 차례 내보냈지만 가입 시 1조2000억 보상이 가능하도록 국내 관련법을 개정했다는 얘기뿐이다. 

2008년 12월 중 가입여부를 결정했다가(2008년 11월 11일 부처 보도자료) 2009년 6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간다더니 12월 현재 여전히 정유사들과의 의견 조율을 위해 국회에 계류중이라고 한다. 추가기금 협약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여론이 일지 않으면 정유사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12월 6일 환경연합은 2007년 사고 이후에도 313척의 단일선체 유조선이 운항되어왔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고 KBS 『시사기획 쌈』은 단일선체 이용실태에 대한 국내외 상황을 보도했다. 2009년 국토해양부의 단일선체 운항 목표치는 30퍼센트였으나 현재 19.6퍼센트까지 감축한 상태다. 12월 17일 간담회 자리에 나온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여전히 “계약변경의 어려움”만을 이야기했고 SK에너지와 GS칼텍스 관계자들은 “비용이 아니라 이중선체 공급가능성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은 빼지 않는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정유사들에게 추가 감축 목표치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칼바람이 부는 12월, 정유사들이 칼 같은 목표치를 내놓지 않는다면 2010년은 또 다시 불안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정나래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특별대책위원회 사무국 간사  nadanarae@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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