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공론화의 신기원을 창조한 월성원전 “맥스터”

요즘 20대 청년들은 요강을 알고 있을까? 40대 이상은 요강을 사용해 본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화장실이 마당 한편에 있는 옛 농가에서는 요강이 필수품이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특히 추운 겨울이면 화장실 가는 일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방에 놓인 요강에 급한 볼일을 본 후 아침에 요강을 화장실에 비웠다.
 
핵발전소를 흔히들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한다. 사람이 단식하면 길게는 한 달도 버틸 수 있음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러나 똥오줌을 싸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잘 먹는 것보다 잘 비우는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잘 비우기 위해서 화장실은 꼭 필요한 시설이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강남의 10억 원대 아파트에 살라고 해도 화장실이 없다면, “나는 싫소이다!”
 

화장실 없는 핵발전소

경주지역 21개 시민사회는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를 위해 경주역 광장에 천막농성장을 차렸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처럼 중요한 화장실이 핵발전소에 없다면 믿어지는가?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당연히 있다. 다만, 원자로에서 핵연료로 사용하고 꺼낸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를 처분할 곳이 없어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빗댄 것이다. 그렇다. 핵발전소는 분명 화장실(고준위핵쓰레기장) 없이 건설됐고, 핵발전소 운영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은 화장실의 설계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했을까? 화장실 대신 ‘요강’으로 급한 볼일을 해결했다. 방안에 두고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잠시 소변기로 사용하던 요강을 핵발전소는 화장실처럼 사용해왔다. 더욱더 놀라운 건 소변이 아니라 대변을 봐왔다. 요강에 똥이 차면 옆에 요강을 하나 더 갖다 놓고, 가득 차면 또 가져다 놓는 식으로 지금까지 연명해왔다. 상상해 보라, 방안에 똥이 가득 찬 요강이 계속 늘어나는 모습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의 비극이다.
 
서설이 길었다. 경주 이야기를 하자. 월성원전에 추가로 건설하려는 맥스터가 바로 요강에 해당한다. 맥스터(MACSTOR)는 ‘Moudular Air Cooled STORage’ 의 약자로 사용후핵연료를 조밀하게 저장하는 건식저장시설이다. 경주시민은 맥스터를 “불법 핵쓰레기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먼저, 왜 “핵쓰레기장”인가? 화장실(핵쓰레기장)이 없는 조건에서 요강(맥스터)이 실질적인 화장실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29년째 운영 중이고 추가로 건설하려는 맥스터는 수명이 50년이다. 이것이 핵쓰레기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요강으로 만들어진 불량 화장실이다.
 
다음으로, 왜 “불법”인가? 정부는 2016년까지 화장실을 건설해서 요강을 비워주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1998년 제249차 원자력위원회,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이 그것이다. 또한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 때 2016년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약속했다. 핵쓰레기는 방사능의 농도에 따라 크게 고준위핵폐기물과 중저준위핵폐기물로 구분한다. 정부는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를 통해 중저준위핵쓰레기장 경주 건설을 확정한다. 방폐장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줄임말로써 중저준위핵쓰레기장을 일컫는다. 경주시민은 고준위핵폐기물을 2016년까지 반출한다는 약속을 믿고 89.5%의 압도적 찬성으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18조에도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맥스터는 경주에 건설할 수 없는 불법 시설물이다.
 

경주시민들 “맥스터 용납할 수 없다”

 
지난 7월 18일 핵 없는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사회와 경주 시민들은 지난 7월 18일 경주역 광장에서 핵쓰레기장 저지 범국민행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경주 시내를 행진하며 엉터리 공론화를 규탄하고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 반대를 외쳤다 ⓒ경주환경운동연합
 
경주지역 21개 시민사회는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경주시민대책위’(이하 경주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5월 14일 경주역 광장에 천막농성장을 차렸다. 7월 22일 현재 70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천막농성장에는 정수기, 냉장고, 선풍기, 모기장이 있다. 단체들이 돌아가며 천막농성장에서 24시간 생활한다. 천막농성장 주변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2016년 고준위핵폐기물 반출 약속 이행하라!” “2005년 방폐장 약속 위반” 등 글귀들이 천막농성장을 에워싸고 있다.
 
천막농성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에 경주시청 출입문 여러 곳에서 피켓을 든다. “맥스터 찬성하는 주낙영 시장은 한수원 직원인가? 경주시장인가?” 저녁 시간엔 10여 명 주요 도로에서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퇴근하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다. 토요일마다 집중 서명 캠페인 또는 시가행진을 펼친다.
 
천막농성장에 격려와 지지 방문이 이어지고 여론의 변화가 뚜렷이 느껴진다. 내용을 알면 알수록 경주시민은 맥스터를 용납할 수 없다. 특히 노년층 반대가 높다. 어느 날 연세 지긋한 상공회의소 전 회장이 천막농성장을 찾아왔다. “방폐장 유치하면 고준위는 가져간다 않겠나! 그래서 우리가 찬성 운동 열심히 했지, 그란데 여기다 자꾸 지으면 안 되지. 내 연배 어른들을 많이 만나 봐.” 15년이 지났으나 경주를 태풍으로 흔들어놓았던 2005년 주민투표의 기억이 뼛속에 각인되어 있다.
 
경주시민대책위의 천막농성장 옆에 맥스터 찬성단체 천막이 설치됐다. 한수원 노동조합을 비롯해 협력업체 노동조합이 모여서 설치했다. 찬성단체 천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늘막만 있고 낮에 3시간 정도 활동하고 사라진다. 이곳에서 부채, 박카스, 물티슈 등을 배포하며 맥스터 찬성 서명을 받는다. 특히, 부채가 잘 팔렸다. 할 수 없이 경주시민대책위도 거금 100만 원을 들여서 반대 부채를 2000개 만들었다. 찬성단체 천막에는 “월성원전은 영원히 경주를 떠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인다. 섬뜩하다. 한수원 노동조합 등은 맥스터를 반대하면 일자리를 잃고 경주 경제가 망한다고 호도하고 있다. 몇 차례 찬반 토론회에서 일자리는 보장되고 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미미함이 확인됐으나,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엔 충분한 구호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맥스터 찬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찬핵 인사인 정범진 교수를 초청하여 5월 20일 경주시 공무원 직무교육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 거리 두기를 어기고 공무원들을 강당에 빼곡히 모아놓았다. 주낙영 시장의 찬핵 행보가 본격화되면서 관변단체들이 “맥스터 건설 찬성” 현수막을 전역에 게시했다. 그때마다 시청 담당 부서에 적극적으로 불법 현수막 신고를 하고 철거를 요청했다. 다행히 현수막은 오래가지 못했다.
 

위원장마저 사퇴한 막장 공론화

 
지난 7월 18일 핵 없는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사회와 경주 시민들은 지난 7월 18일 경주역 광장에서 핵쓰레기장 저지 범국민행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경주 시내를 행진하며 엉터리 공론화를 규탄하고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 반대를 외쳤다 ⓒ경주환경운동연합
 
맥스터를 둘러싼 갈등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한 공론화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경주 월성원전의 맥스터도 공론화 의제에 포함시켰다. 박근혜 정부 때 맥스터 추가건설을 확정했으나, 당시 공론화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가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보다 못하다는 성토가 많다. 2019년 5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공론화를 총괄하는 기구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위원 15명을 임명했다. 공론화 업무를 맡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검토위원회는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밀실 불통 불공정 공론화로 몰아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정정화 재검토위원장이 6월 26일 사퇴했겠는가! 정정화 위원장은 “공론화의 기본원칙(숙의성, 대표성, 공정성, 수용성 등)을 담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더 이상 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퇴했다. 특히, 경주지역의 공론화가 불공정하다고 강조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지역 공론화를 담당하는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의 11명 위원을 맥스터 찬성 인사로 구성했다.
 
경주지역 공론화는 7월 18일, 19일 이틀에 걸친 시민참여단 150명의 숙의토론으로 막을 내렸다. 뒷말이 무성하다. “150명을 찬성하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한수원 협력업체 직원이 30명은 넘는다”, “한수원이 개입됐다.” 등등 무수한 의혹을 남기고 있다. 특히,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설치된 노트북을 들고 각 가정을 방문해서 150명이 골방에서 이틀간 화상 토론을 진행한 것은 막장 공론화의 끝판왕이다. 공론화의 신기원이 아닐 수 없다. 
 
막장 공론화에도 희망이 있다면, 월성원전 맥스터가 있는 경주시 양남면 주민들의 항거다. 7월 18일 양남면 주민들은 공론화 저지 및 맥스터 반대를 외치며 800여 명이 경주역 광장에 모였다. 같은 시각 전국의 시민사회 회원 300여 명도 “핵쓰레기장 저지 범국민행동”으로 경주 시내를 행진하고 있었다. 양남주민들과 시민사회는 경주역 광장에서 만나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잊지 못할 7월 18일을 보냈다.
 
 
글 /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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