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공론화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7월 30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 지역주민, 종교계, 전문가들은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공론화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정세균 국무총리는 8월 21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아래 맥스터)의 수용능력이 2022년에는 포화상태로 예상된다”며, 맥스터 증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 81.4%가 증설에 찬성했다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지역주민들과 의견수렴을 위해 노력해주신 재검토위원회 위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감사인사와는 달리 해당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는 일제히 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월성핵발전소가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 주민들은 산업부가 있는 세종시를 찾아 집회를 열고 맥스터 추가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경주시민대책위도 즉각 성명을 내 정세균 총리의 “맥스터 건설 망언을 규탄한다”며 경주지역 공론조작 진상조사에 즉각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도 “월성핵발전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100만 명의 울산시민이 거주하는데, 정부는 끝내 울산시민 의견수렴을 하지 않을 셈인가”라며 정부 결정을 규탄했다.  
 

조작 의혹 편파 공론화

 
지역에서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번 공론조사 자체가 조작이 의심될 정도로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 증설을 결정할 시민참여단을 모집할 때 반대하는 주민들을 배제하고 찬성 주민 위주로 구성했다는 의혹이다. 실제 경주지역실행기구에서 숙의토론에 앞서 실시한 1차 설문(6월 27일)에서 경주 양남면 시민참여단 39명 중 반대 1명(2.6%), 감포읍 참여자 31명 중 반대 1명(3.2%)에 불과해 반대 주민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같은 시기 한길리서치에서 양남면 주민 8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맥스터 반대가 55.8%로 찬성 44.2%보다 높게 나왔다.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냐는 문제제기에 대해 산업부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는 찬반을 고려하지 않고 시민참여단을 랜덤으로 선정했다는 설명만 하고 그 자료조차 공개하고 있지 않다. 찬반 의견을 묻는 대부분의 공론조사에서 모집단의 찬반 비율을 반영해 표본을 구성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시민참여단을 구성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지역에서는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협력업체 직원 및 가족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조작이 의심되는 여러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공개적인 검증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해명이나 자료공개조차 없이 맥스터 증설을 강행하는 결정을 성급하게 내렸다. 이렇게 낸 결론을 과연 누가 수용할 수 있겠는가. 
 

피해지역을 배제한 공론화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 건설에 있어 피해범위에 해당하는 울산 지역은 아예 의견수렴을 진행하지 않았다. 행정구역으로는 월성핵발전소가 경주시 양남면에 소재하지만 울산 북구와 불과 7km 거리에 인접해 있다. 울산북구 주민들은 실제 경주시내보다 월성핵발전소로부터 훨씬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핵발전소 방사선 사고에 대비해 설정한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에는 울산시민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정부가 의견수렴에서 배제한 울산 북구 주민들은 스스로 월성 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해 반대 뜻을 밝혔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울산시장, 울산북구청장, 울산시의회 등도 울산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부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도 회의에서 울산지역의 의견을 경주지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듣겠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울산지역의 의견수렴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된 설명조차 없다. 답답했던 울산북구 주민들은 지난 6월 5, 6일 민간주도로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5만479명(총 유권자의 28.82%)의 북구주민이 투표에 참여해 그중 4만7829명(94.8%)이 반대하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왔다. 이를 정부에 전달했지만 이 역시 무시되었다. 
 

국민이 모르는 공론화

 
이번 사용후핵연료 재검토는 지난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공론화를 바로잡고자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그 기회를 걷어찼다. 10만 년 이상 위험이 지속되는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안전한 처분과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는 어려운 일이다.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꼼수를 부려서는 단 한발자국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최종 처분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대안검토, 합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를 형식적으로 건너뛴 채 당장 포화에 달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추진 근거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 성공적인 공론화를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한 전국단위(종합계획) 공론화 후에 지역(임시저장) 공론화를 진행하기로 한 원칙마저 깨뜨렸다. 
 
그 결과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언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시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건설 의견을 묻는 공론화가 진행됐다. 심지어 정부는 전국단위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는 계획부터 발표했다. 당초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종합적인 밑그림 속에서 임시저장시설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지역 수용성을 묻겠다는 의미는 완전히 퇴색되었다. 
 
그러다보니 해당 지역을 빼고는 핵발전소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공론화에 주인공은커녕 관객조차 될 수 없었다. 불과 3개월 동안 총 13회의 공개 토론회를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비교해 봐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는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총 3회의 공개토론회만 개최했다. 이렇게 공론화를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온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정답을 풀지 못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겠는가. 
 

주인공을 배제한 공론화

 
공론화가 이처럼 파행과 실패를 맞이한 책임은 누구보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있다. 시민사회와 지역에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면 중도에 사퇴할 수 있다며 ‘중립’인사로만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 
 
핵폐기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한 위원 구성으로 위원회 운영에서 많은 시간을 내용 파악하는 데 허비했다. 또한 위원들은 핵폐기물과 핵발전소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공론화는 기계적인 형식과 절차로 설계됐다. 더구나 재검토위원회는 시민사회나 지역을 공론화의 주체가 아니라 토론회 발표자료나 발표자로만 도구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결국 짜 맞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공론화에 시민사회는 들러리를 설 수 없었다.
 
급기야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정정화 위원장마저 반쪽 공론화를 진행할 수 없다며 사퇴하게 되었다. 정 위원장은 사퇴의 변에서 “산업부는 포화가 임박한 월성원전 임시저장시설(맥스터) 확충에만 급급하다는 탈핵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으며, 보다 적극적이고 진솔한 소통을 통해 신뢰를 얻지 못한 1차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 증설여부에 대한 의견수렴을 주관하는 지역실행기구도 위원 구성의 대표성과 공정성 문제로 파행”을 겪고 있으며 “공론화의 기본원칙(숙의성, 대표성, 공정성, 수용성 등)을 담보할 수 없게 된 상황”임을 밝혔다.    
 

증설 결정 철회해야

 
환경운동연합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함께 인류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핵폐기물의 문제점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6월 2일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했다 ⓒ환경운동연합
 
뼈아프지만 이번 사용후핵연료 재검토는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공론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엉터리로 만들어진 결과로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정부는 현재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과정이 공정성, 숙의성, 대표성, 수용성 등 모든 면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지킨 공론화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반복적으로 핵산업계의 이해에만 얽매어 공론화를 망친 산업부에 이 일을 계속 맡겨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책임 아래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독립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구 구성이 필요하다. 10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 만큼 당장의 문제를 피하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그래도 임시저장시설은 마련했다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안일한 인식은 더 큰 저항만 불러오고 지역의 갈등만 부추길 것이다. 공론화는 실패할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결정 철회하고 제대로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 
 
 
글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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