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약자들의 여름 나기

에너지 복지 더 키워야 비극 막는다

 
한 여름 폭염은 서울 달동네 취약계층을 더 힘들게 한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지난 5월 22일 0시 기준으로 우리나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만1142명이었고 격리중인 환자는 716명이었으며 사망자는 264명이었다. 사망자의 수와 치명율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높았다. 20세 이하 확진자 그룹에서는 사망자가 없었으나 30대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0.76퍼센트였고 치명률은 0.16퍼센트였다. 80세 이상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48.5퍼센트 가까이 뛰어올랐고 치명률은 26.12퍼센트에 달했다. 80세 이상 노령자 4명이 코로나19에 걸린다면 1명은 확실히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은 기본 체력이 약한 것에 더해 대부분 기저질환을 한두 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는 고위험군에 노인을 포함시키고 특별한 생활관리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대, 가장 위기의 존재는 노인인 것이다.
 
 
코로나와 폭염 그리고 가난한 노인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집에서 에너지 약자들의 여름나기는 더욱 힘들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신체적 약자이기 때문에 노인의 위험성이 더 높은 것은 보건의학적 조건이지만, 여기에 ‘돌볼 이가 없는 독거노인’, ‘수입이 없거나 적은 가난한 노인’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더해지면 코로나19로 인한 고위험군 중에서도 누가 더 위험한지 명백해진다. 가난한 독거노인, 노인 내외만으로 이루어진 노인가구가 그들이다. 노인이라도 젊은 세대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중위 소득 이상 가구의 노인들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기초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영양이 담긴 식사를 할 수 있으며, 마스크와 세정제 등 생활방역 도구 구매 비용 마련에 애로가 없고 무더위와 추위 때에 충분한 냉난방기기를 가동할 수 있는 노인들은 비록 신체적 약자이긴 해도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그러나 아파도 오늘 벌지 않으면 내일 굶어야 하고, 아파도 내가 밥을 끓이지 않으면 약은 고사하고 밥조차 먹을 수 없으며, 단열은커녕 한 줌 햇빛이 들기도 힘든 작은 창 혹은 아예 창조차 없는 열악한 주거(흔히 하꼬방이라 불리는)에서 홀로 또는 두 내외만 사는 노인가구들은 이 가혹한 전염병 시대에 두드러지는 약자들이다. 그리고 이제 여름이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6~8월) 날씨 전망을 통해 ‘올해는 평년기온 23.6℃보다 0.5~1.5℃ 높고 작년 평균기온 24.1℃보다는 0.5~1℃ 높을 것’이라고 예보했다. 또 기상청은 지난 5월 8일, 변화된 더위 특성을 반영하여 ‘폭염특보 발표기준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폭염특보는 지금까지 하루 ‘최고기온’만을 기준으로 발표했는데 앞으로 기온과 습도를 반영한 하루 ‘최고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삼아 ‘실제로 폭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루 최고체감온도가 33℃를 넘으면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35℃를 넘으면 폭염경보가 발령되게 된다. 폭염특보 기준이 바뀌면서 폭염특보 발표 횟수는 전국적으로 3.7일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온인데 폭염특보만 더 자주 나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사실 더위로 인한 인체 피해는 체감기온에 의한 것이어서 더 정확한 ‘더위 예보’가 가능해진다. 바뀐 기준 덕분에 폭염특보의 온열질환사망자 감지율은 과거 기준보다 약 17퍼센트 높아질 것(42.6% →49.9%)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예측되는 그런 폭염을 회피할 자구책이 ‘가난한 에너지 빈곤층 노인들에게 있는가’이다.  
 

집에 냉방기 없고 쉼터에는 감염 우려 있고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난 2011년부터 각각 여름과 겨울에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를 해오고 있다. 그간의 조사에서 사소한 변화는 있었지만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연령별 조사 대상자의 규모 가운데 가장 대면적을 차지하는 이들이 70세 이상의 고령자라는 점이 그것이다. 가구유형을 보아도 가장 대면적을 차지해 온 것이 ‘노인세대’였다. 
 
2019년 여름 조사에서도 이런 특징들이 두드러졌다(2020년 올해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음). 2019년 조사는, 전국 6개 도시의 303가구를 방문해 ‘주요 인적사항·주거생활·에너지 이용 사항·에너지복지정책 관련 사항’ 등 총 4가지 항목에 관해, 1대 1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조사 응답자 중 가장 다수는 71세 이상의 노인세대였다. 이들이 303가구 중 200가구나 돼 66퍼센트를 차지했다. 전체 월평균 가구소득은 65만 원이었는데 31만 원 이상 50만 원 이하 가구가 167가구(55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60만 원 이상 90만 원 이하 가구가 70가구(23퍼센트)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평균 주택면적은 약 47.9제곱미터(14.5평) 로 조사됐다. 창문이 없는 지하 거주도 4가구나 됐고, 창문이 있어도 앞·옆집과의 간격이 좁거나 창호가 오래돼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 또한 21가구(7퍼센트)나 됐다. 아예 별도 거주공간 없이 상가, 공장, 또는 3평 미만의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 
 
열악한 주거지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운 수준의 벌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노인들, 그들이 주요 ‘에너지 빈곤층’인 것이다.
 
냉장고가 없거나(18가구), 선풍기와 에어컨 모두 없는(3가구) 가구도 있었다. 조사 시점인 6월은 폭염으로 인한 건강 이상을 느낄 시기가 아니어서 전년도(2018년)를 기준으로 질문하자 ‘폭염에 의한 건강 이상 경험자(복수응답)’는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48퍼센트로 나타났다. 주요 증상은 ‘어지러움과 두통’이었다. 그중 8퍼센트는 ‘호흡이 곤란한 상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심각성을 드러냈다. 폭염으로 건강 피해를 입는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무더위쉼터’ 운영 사실에 대해 조사 대상자의 73퍼센트가 알고는 있었지만 35퍼센트만이 실제로 ‘이용했다’고 답했다. 이용한 횟수도 10회 미만이었고 주된 이용 장소는 경로당이 55퍼센트, 복지관이 20퍼센트, 은행이 16퍼센트였다. 쉼터를 찾지 않은 194명의 응답자에게 “왜 쉼터를 안 가냐?” 물으니 가장 많은 답변은 “마음이 불편(67명)하다”였는데 “몰라서 이용 못했다(53명)”는 답보다 많았다. 
 
에너지 빈곤층은 폭염이 오면 대부분 몸이 아프고 더러는 목숨이 위험(호흡 곤란)한 지경까지 가며, 열악한 주거에서 그런 폭염을 견딜 수 없어 쉼터를 가고자 해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이들인 것이다. 
 

바우처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19가 생명을 위협하고,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에, 제대로된 냉방기기 없이 폭염에 노출되는 가난한 노인들을 구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겨울철 난방용 ‘에너지바우처’ 제도가 운영돼 왔지만 2019년부터는 여름철에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등유·엘피지·연탄의 요금을 깎아주거나 별도의 결제용 카드(국민행복카드)를 지급해 에너지 구비비용을 구매한 만큼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여름철에는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바우처만큼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바우처를 신청할 수 있는 가구는 먼저, 생계급여나 의료급여의 수급자이면서, 가족 구성원 중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중증질환자·희귀질환자·중증난치질환자가 있거나, 한부모가족 소년소년가정인 가구이다. 2019년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대상 가구 수는 전국적으로 60여 만 가구에 이르렀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소득 활동이 멈춘 2020년 올해에는 그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우처는 가구원 수를 고려해 차등 지급된다. 2019년 1인가구의 여름과 겨울 바우처 합계액은 9만1000원, 2인가구는 12만8000원, 3인 이상 가구는 15만6000원이었다. “고맙지만, 충분하진 않아요.” 에너지시민연대의 조사에서 만난 응답자는 바우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답변’을 했다. 
 
 
에너지바우처제도 담당 중앙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2020년 예산에서 에너지 복지 분야 예산은 전년보다 729억 원 증가한 2563억 원이다. 이 가운데 에너지바우처 관련 총예산은 전년보다 697억 원이나 늘어난 1634억 원이다. 액수로만 보면 42퍼센트 이상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바우처 지급용 예산은 단지 20억 원이 늘어났을 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가 에너지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소액이라도 바우처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맙지만, 충분하지 않다!’
 

예산보다 더 적은 건 정책의지

 
올해는 예년보다 더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 때문에 에너지 약자들이 폭염을 피해 ‘무더위쉼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루벌이’로 생계를 잇는 다수의 에너지 빈곤층으로서는 예년 이하의 소득을 가지고 생활방역비용과 늘어날 게 확실시 되는 냉방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냉방비용과 마스크와 세정제 등 생활방역 비용, 폭염으로 인한 질환 발생시의 진료·치료비용 가운데 ‘가난한 노인들’은 무엇을 포기하려 할까? 전염병과 폭염, 빈곤의 삼중고에 놓인 에너지 빈곤층을 긴급하게 구조할 대책이 필요하다. ‘돌봄 나눔에 나설 의지가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활동가들 그리고 더 많은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에너지 빈곤층 중에도 독거노인층 등 우리 사회의 더 아픈 손가락들을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에너지 복지 정책에 ‘돌봄 플랫폼’을 까는 시도를 하기 바란다. 노인들을 가난과 전염병과 폭염 속에 방치하는 사회가 미래를 말할 순 없다.
 
 
글 /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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