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 승리한 영덕군민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영덕군 영덕읍 ⓒ함께사는길 이성수 
 
11월 10일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영덕읍은 의외로 조용했다. 대신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에서 현장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투표 합법이다. 주민이 결정한다.” “박근혜 대통령 비난하는 도의원, 불순한 외부세력은 영덕을 떠나라” “한수원은 돈과 거짓약속으로 4만 영덕군민을 속이지 말라!” “박근혜 정부 성공 위해 투표 불참 약속하자” 등 현수막 전쟁이 치열하다. 주민들이 아닌 기업들이 내건 현수막도 상당수다. 삼성건설, 대우건설, 한화건설, GS건설, 두산중공업 등 굴지의 건설기업들은 원전 건설로 지역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동참하겠다며 마치 원전 건설이 확정된 것처럼 주민들을 호도했다. 주민들보다 기업들이 더 신규원전 건설에 목을 매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전 건설에 투입되는 사업비가 적지 않다. 국내 23, 24번째 핵발전소인 신월성 1, 2호기의 총사업비로 5조3100억 원이 투입됐다.


주민투표 앞두고 잠들지 못하는 영덕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조용한 거리에 아이들이 나타났다. “내일 주민투표에 꼭 참여해주세요.”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주민투표 홍보지를 나눠주고 엄마는 영덕과 아이들을 위해 주민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들은 어느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도 아니고 누군가 고용한 아르바이트 직원은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저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을 위협하는 핵발전소가 더 이상 세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엄마들이며 원전을 반대하는 영덕 군민들의 주민투표를 돕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한 엄마는 “영덕을 처음 왔는데 이렇게 외진 곳인지 몰랐어요. 이런 곳만 찾아서 정부가 핵발전소를 짓는구나 싶더라고요.”하며 안타까워했다. 목포에서 왔다는 한 엄마는 “영덕에서 목포는 가까워요. 우리 아이의 안전이 걸린 일인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지금 당장 모든 원전을 폐쇄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원전을 짓지 않고 지금 있는 원전을 서서히 줄여나가면 언젠가 핵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왜 자꾸 신규 원전을 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말했다.

“그짝은 찬성이요 반대요?” 한 사내가 물었다. “오전에 한수원 직원들을 만났는데 투표하지 말라고 하대요.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아 골치 아파요.”라며 한숨을 쉰다.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그건 주민들 권리입니다. 주민투표는 영덕주민들만 할 수 있습니다. 주민투표에 꼭 참여하셔서 권리를 행사하세요.”라며 아이 엄마가 답했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영덕주민도 내일 주민투표를 기다리는 주민과 자원봉사자들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주민들이 영덕 지켜야지 누가 지켜요”

 
천막으로 마련된 주민투표소는 새벽부터 불을 밝히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11일 새벽 4시. 아직 어두운 하늘엔 별이 총총 박혔다. 제1투표소인 영덕읍사무소 인근 주차장에 천막으로 친 투표소가 마련됐다. 오늘 투표소 사무원으로 자원 활동에 나선 시민들은 일찍부터 나와 주민들을 맞을 준비로 바쁘다. 영덕군 9개 읍면에 20개의 투표소가 꾸려졌다. 각 투표소에는 투표소 관리위원장, 변호사, 투표소 관리관, 투표참관인, 투표사무원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됐다. 주민투표에 대해 물리적, 행정적 지원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중앙정부와 영덕군을 대신해 주민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새벽 5시 50분.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는 이번 주민투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관리 감독할 것을 약속합니다.” 투표사무원들의 선서가 이어지고 주민들이 투표장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6시. 드디어 주민투표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투표장에 나선 한 주민은 “주민자치가 뭡니까. 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하겠다는데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찬성하는 사람도 와서 투표하고 반대하는 사람도 와서 투표해야죠. 전 제 권리 행사하러 왔습니다.”라며 당당히 투표장에 들어섰다. 신분증과 선거인명부를 확인한 후 투표용지를 받아든 주민은 기표소 안에 들어가 투표를 한 후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투표소와 별다를 게 없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지면서 주민들도 많아졌다. 일부 투표소는 밖으로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전혀 몰랐어요. 영덕 시장가니깐 원전 들어온다 카데요. 원전 들어오면 좋을 게 뭐가 있어요. 누가 원전에서 나온 대게니 과일이니 사먹겠어요. 걱정돼서 잠이 안 왔어요. 주민투표를 통해서 우리 군민들 의사를 보여주려고 왔어요. 영덕을 지켜야죠. 누가 하겠어요. 우리 주민들이 해야지.” 지품면 투표소에서 만난 신미영(가명 51세) 씨는 주민투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게거리에서 가게를 한다는 한 주민은 “원전 들어오면 망해요. (한수원과 정부가) 지역경제 살아난다고 하는데 그건 일시적이죠. 장기적으로 봐야지. 청정해역 못 지키면 다 망해요.”라며 투표소에 들어갔다. 올해 90세인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한 걸음 옮기기도 힘에 부치지만 혼자서 버스를 타고 투표소까지 왔다. 유모차를 끌고 투표소를 찾은 한 할머니는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달라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투표소를 찾은 주민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영덕군에 사는 이상현 씨는 “군수를 잘못 뽑아서 이리 된기다. 처음부터 주민들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으면 이렇게까지 안하지 않나. 발전소 들어올 부지에 전임군수가 땅까지 사놨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영해면에서 농사짓는 김진기 씨는 “이 핵이 89년부터 주민갈등을 만들어 왔어요. 이 갈등을 불식시켜야 영덕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표가 그것을 불식시키는 기회입니다.”라며 이번 주민투표의 의미를 설명했다.

오후 6시를 넘기면서 퇴근을 한 직장인들도 투표소를 찾았다. 투표 마감 시간인 8시를 몇 분 남기고 오일시장 옥상에 마련된 제2투표소로 한 가족이 달려왔다. 아이 손을 꼭 잡은 부부는 투
표를 마치고 돌아갔다.


한수원에 이어 공무원까지 투표 방해


주민투표 둘째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제의 투표율에 놀란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을 사단법인 천지원전추진위 소속 특별위원회라고 밝힌 단체는 아침부터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이 집계한 투표율과 투표관리위원회가 발표한 투표율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투표율을 누가 어떻게 집계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기자회견 공지를 한 한수원은 자리에 없었다. 한수원이 찬성하는 주민들을 앞세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수원은 차량을 동원해 투표에 참가하지 말라며 방송을 하는 등 주민투표를 방해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한수원은 그동안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마을을 돌며 주민투표는 불법이라며 투표장에 가지 말라고 홍보해왔다. 투표 당일에는 투표소가 마련된 곳에 집회신고를 내고 각 투표소에 차량을 배치해 투표장을 감시했다. 카메라나 블랙박스로 투표장을 몰래 촬영하다 걸린 곳도 적지 않았다. 곳곳에서 감시하는 한수원과 항의하는 주민들 사이에 마찰이 발생했다. “저게 우릴 감시하는 거지 뭡니까. 주민들이 겁먹고 투표하러 오겠어요?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저렇게 하겠어요?” 주민 임금식 씨(58세)는 분통을 터트렸다.

첫째 날에 이어 한수원의 투표 방해 행위는 더 노골적이었다. 당장 투표장 주변을 서성이는 수상한 이들이 늘었다. 오일시장 옥상에 마련된 투표소 입구에는 5명의 사내들이 지키고 서서 투표장을 향하는 주민들과 투표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몇 명은 몸을 숨기고 군민이라고 밝힌 사내 둘은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다른 투표소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투표 방해에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마을입구에 서서 주민들을 돌려보내거나 마을 회관을 찾아 투표하지 말라며 지키고 섰다는 제보들이 잇따랐다. 공무원들 무서워 투표를 망설이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각 마을 주민대표들은 걱정했다.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는 이들의 우려는 구체적이었다. 농자재 지원이나 차상위계층 선정과 노인복지 등 각종 혜택 등을 공무원들이 담당하다보니 이들에게 밉보였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했다. 대게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은 당장 그물코 크기 단속에 걸릴까 걱정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마을에는 투표에 참여하는 주민은 보상금이 깎인다는 유언비어도 돌았다.

궂은 날씨에 이어 한수원과 정부의 방해 행위로 주민투표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걸음은 전날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투표 사무원들과 투표추진 주민들은 투표 마감 시간인 8시까지 투표소를 지키며 주민들을 맞았다.


이것이 바로 민심 원전 반대 1만274표

 
각 투표소에서 도착한 투표함을 개표하는 개표 사무원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오후 9시 15분 영덕읍에 마련한 개표소에 지품면과 달산읍 투표함을 시작으로 각 투표소 투표함이 도착했다. 20개의 투표함을 일일이 확인하고 11시 46분 드디어 투표함이 개봉됐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개표 작업은 날이 바뀌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총 투표자 1만1209명 중 유치 찬성 865표, 반대 1만274표”

노진철 주민투표관리위원장이 개표결과를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밤을 새고 개표소를 지킨 주민들은 한수원과 정부의 방해를 한탄하면서도 그럼에도 1만 명이 넘는 군민이 투표에 참여하고 또 반대표를 던졌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축하를 건넸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 온전히 주민들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무사히 마치고 한수원과 정부의 방해에도 군민들은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며 기뻐했다. 영덕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삼척에서 온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성원기 교수는 “삼척이나 영덕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고 주민들은 주민투표로 민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살아있습니다.”라며 영덕 군민들을 축하했다.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든 주민들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민심은 확인됐다. 핵발전소 백지화하라.”
 
"이것이 민심이다 영덕 핵발전소 백지화하라" ⓒ함께사는길 이성수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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