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날아간 핵발전소

고리핵발전소 ⓒ함께사는길 이성수
 
54일 동안 이어진 ‘기록적 장마’가 끝나갈 무렵, 부산은 부산역 일대가 침수될 정도로 ‘기록적 폭우’가 내렸다.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와 주택, 상가가 침수되며 3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 가운데 핵발전소가 침수되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기록적 폭우가 내린 지 한 달이 지난 8월 25일, 부산의 한 언론을 통해 신고리 34호기가 침수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홍수 피해가 발생한 7월 23일, 신고리 34호기의 스위치야드 관리동과 가스절연모선(GIB) 터널이 침수되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한수원은 발전소 침수 사실을 부산시는 물론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기자의 취재 중 우연히 핵발전소 침수 사실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핵발전소가 물에 잠긴 사실을 한 달도 더 지나 실토한 것도 문제지만, “물을 퍼냈기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는 한수원의 태도는 더 문제적이다.  
 
그리고 곧 태풍이 북상했다. 기록적 장마와 폭우에 이어 역대급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에 부산을 비롯해 전국이 긴장했다. 그리고 역대급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은 역대급 피해를 낳았다. 시설물의 붕괴와 정전, 침수는 말할 것 없고,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들의 전면 유리창들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 가운데 핵발전소 가동이 중단되었다는 속보가 줄줄이 뜨기 시작했다. 
 

태풍에 줄줄이 날아간 핵발전소 

 
시작은 신고리 12호기였다. 9월 2일 저녁부터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던 가운데, 자정을 지난 직후인 9월 3일 0시 59분, 신고리 12호기의 소외전원이 나가 원자로 가동이 정지되었다. 이어 2시 15분, 신고리 3호기 터빈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변압기 쪽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2시 24분과 54분에 고리 12호기의 소외전원이 나가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각인 2시 53분과 3시 1분에는 고리 34호기의 계전기도 고장이 나 원자로가 정지했고, 결국 하루가 지난 9월 4일 오전 2시 29분에 소외전원까지 나가버렸다. 
 
공식적으로는 9월 3일에 발생한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고리지역 핵발전소 전체 8기 중 4기의 발전소가 가동을 멈췄다. 그러나 영구정지와 계획예방정비로 정지되어 있던 고리 1호기와 2호기 역시 소외전원이 나가버려 사실상 6기의 핵발전소가 비상상황에 놓였다.
 
태풍으로 인한 고리 핵발전소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리 3호기에서는 원자로 보충수 저장탱크가 파손되었고, 고리 4호기에서는 터빈건물 외부 판넬이 날아가 버렸다. 신고리 3호기 역시 터빈건물 지붕이 날아가는 등 원자로 정지 사고 외에도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마이삭’을 능가하는 태풍이 또 다시 북상했다. 태풍 ‘하이선’이 상륙하기 전 고리지역 6개의 핵발전소 소외전원은 모두 복구되었지만, ‘마이삭’으로 손상된 시설물들은 임시로 봉합한 채 더 큰 위력을 가진 태풍을 맞아야 했다. 
 
그리고 태풍 ‘하이선’이 부산을 지나간 오전 8시와 9시 사이, 고리핵발전소는 또 다시 터빈건물(신고리 2호기) 지붕과 자제창고(고리 2발전소) 지붕이 날아가고, 빗물(고리 2발전소)과 토사(고리 2발전소)가 유입되는 등 큰 고비를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부산을 지난 태풍은 경주 월성핵발전소와 울진 한울핵발전소를 향해 북진했다. 태풍 ‘하이선’이 경주를 통과하던 오전 8시 38분과 9시 18분, 월성 2호기와 3호기의 터빈이 정지했다. 그리고 태풍이 울진을 지나간 후인 오후 5시 45분, 한울핵발전소 액체폐기물처리계통에서 방사선 경보가 발생했다. 한울 23호기 액체폐기물 증발시설의 가열기 튜브가 새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것이다. 
 
그렇게 연이은 태풍으로 숨죽여 긴장했던 악몽 같았던 시간이 지나갔다. 
 

역대급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이 염분?

 
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하루 뒤 한수원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번 원자로 정지 사고가 염분에 의해 발생한 사고라 원인을 발표했다. 역대급 태풍으로 염분을 머금은 물보라가 평소보다 멀리 날아가 발전소 전기 기설에 가 닿았고, 전기가 잘 통하는 염분의 특성상 송전시설에 문제가 생겨 발전소가 정지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모두 바닷가에 있는데, 염분 때문이라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나아가 한수원은 소외전원이 나갔더라도 비상디젤발전기가 자동으로 작동해 원자로가 안전하게 정지되었고, 이 외에도 이동형 발전기가 준비되어 있어 이번 사고의 수준이 과장되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분명 ‘역대급’ 사고다. 고리에는 8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이 8기의 핵발전소 중 6기의 핵발전소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고리 1호기와 고리 2호기가 각각 영구정지와 계획예방정비로 정지되어 있었다지만 고준위핵폐기물이 저장되어 있어, 이들 발전소의 전원상실 사고는 가동 중인 발전소의 전원상실 사고만큼이나 위험하다. 월성핵발전소에는 6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이중 월성 2호기와 3호기의 터빈이 정지했다. 월성 1호기와 4호기가 각각 영구정지와 계획예방정비로 멈춰 있은 상태여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이들 발전소가 가동 중에 있었다면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이러한 상황은 울진도 마찬가지다. 한울 2호기와 3호기의 액체폐기물처리계통에서 경보가 발생했다. 다행히 한울 1호기와 한울 6호기는 계획예방정비로 멈춰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산과 울산, 경주와 울진의 20기의 핵발전소 중 연이은 두 번의 태풍에 무사히 가동을 할 수 있었던 핵발전소는 단 6기에 불과했다.
 

기후위기 시대 점점 더 위험해지는 핵발전소 

 
핵발전소의 소외전원 상실은 결코 가벼운 사고가 아니다. 소외전원 상실을 대비해 두 대씩의 비상디젤발전기를 설치해 놓았다고는 하나 지난 2012년 고리 1호기는 이 두 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모두 작동하지 않아 블랙아웃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블랙아웃 사태가 길어지면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사고로까지 발생할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는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까지 고려해 이동형 발전차량을 구비해 놓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6기의 핵발전소가 한꺼번에 소외전원이 상실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동형 발전차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밀집이 왜 위험한지 누누이 말해 왔다.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수 개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한 개의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는 인접한 다른 발전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개의 핵발전소에서 동시에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대응인력 부족으로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핵발전의 특성상 동시다발 사고로 인한 전력공급의 중단은 전력망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대규모 정전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장마와 폭우, 태풍으로는 핵발전소가 폭발하지도, 대규모 정전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 천운이다. 그러나 내일은 모르겠다. 기후위기로 예측이 불가능한 기상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에 따라 핵발전소 역시 예측 불가능한 위기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이번 태풍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핵발전을 멈추면 그만큼 위험이 줄어든다. 고준위핵폐기물이 남아 있어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공동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핵발전을 하루 빨리 멈추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일 것이다.
 
 
글 / 정수희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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