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약자와 약소국 더 괴롭히는 기후불평등 _ 최예용



몇 년 전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유엔의 기후변화 국제회의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후변화협약의 향배를 거머쥔 강대국, 미국 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마침 미국 대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장이 언론인과 참관인들로 가득 찼다. 미국 대표가 단상에 올라 자리를 잡는 순간,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는 순식간에 미국대표의 얼굴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케익이었다. 케익은 보기좋게 명중했고 미국 대표의 일그러진 얼굴만큼이나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후를 악화시키는 최대의 원인국가인 미국이 기후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국제적인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데 대한 언론인 출신 환경운동가의 항의행동이었다.

지구온난화의 주요원인물질인 이산화탄소의 세계방출량의 25퍼센트 이상을 배출하는 미국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기후협약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전세계 지도자들와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제기한 이래 12년의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 사이 매년 수백만, 수천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이상기후로 인한 이재민이 되어 고통받고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금전적 피해는 가히 천문학적인 기록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실천마저 거부하는 미국정부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후불평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자연재해의 일종이다. 폭염, 홍수, 한파, 폭설 그리고 가뭄과 같은 이상기후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겪어와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후들이 과거와 달리 극심한 형태를 띠면서 더욱 심화되고 예측이 매우 힘들 정도로 불규칙해진다는 데 있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기상이변의 원인이 바로 인간의 활동에 있다는 점에 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적용되는 기상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원인과 결과에 있어 사회적, 경제적 나아가 국제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국제사회에서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들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오염원은 오히려 사회적 강자, 경제적 강자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국과 같은 국제적 강자들이 주범으로 지목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후변화’라는 말이 다소 가치중립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마치 자연과학적인 문제인 듯 느껴지지만 사실은 ‘매우 불평등한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기후불평등의 문제’라고 정의하는 환경운동가와 과학자들이 많다.

여기서 두 가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야 하는데, 하나는 핵발전소를 통한 전기공급 시스템을 지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거대화를 극복하는 지역균형발전전략을 추구하는 일이다. 폭염과 홍수 등의 이상기후 피해가 거대도시지역에서 더욱 극단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문제가 사실상 현대 산업화의 근본적 결함인 반환경에너지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현대 도시화의 문제와 과학기술의 문제가 같이 결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육체적 약자인 노약자가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 아래서 차별받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3년 유럽전력 특히 프랑스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히트웨이브 즉 ‘이상고온현상’으로 피서철 집에 홀로 남은 독거노인들과 병약자들이 만 명 넘게 사망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욱 컸을 것이다. 소위 한 국가가 갖고 있는 사회안전망의 주변부에 살고 있거나 아예 안전망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폭염과 홍수 등 이상기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사례는 경제선진국이라고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며 한 국가의 사회안전망 내용이 폭염과 홍수 등 이상기후로 인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풍부해져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희생자들
한 국가 내에서의 이상기후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문제가 지구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달라질까? 크게 다르지 않게 확대 재생산된 형태와 규모로 재현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앞서 예로든 미국의 경우, 소수의 미국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여 지구온난화의 주범격이 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의 에너지사용 행태를 유지하기 위해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전쟁을 고의로 야기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서구 경제선진국들의 과거 경제발전과정에서 내뿜은 온실가스가 주원인이 되어 현재와 같은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문제는 아직 발효되지 않고 있는 기후협약의 기본정신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데 ‘차별화된 온실가스 저감목표설정’이 그것이다. 즉, 과거에 온실가스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었는지가 의무감축목표를 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현실을 매우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기후변화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지역과 사람들은 대부분 저개발국가들 즉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 몰려있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작은 섬나라들이다. 국제사회에서의 남과 북, 즉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 사이의 갈등은 기후문제에서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이 문제의 해결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모든 나라들이 기존의 화석연료발전과 핵발전 방식에서 풍력과 태양력 등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도입하기 시작하고 ‘기후문제의 사회적, 국제적 불평등’의 측면을 받아들인다면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사회적인 존재로 더위 자체가 참기 힘들다기보다는 사회적·국가적 차별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가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지역별 극단적 기상. 기후사건의 영향

1980년대 1990년대
사건수 사망자수
(천명)
피영향자
(백만명)
사건수 사망자수
(천명)
피영향자
(백만명)
아프리카 243 417 137.8 247 10 104.3
동부유럽 66 2 0.1 150 5 12.4
동부지중해 94 162 17.8 139 14 36.1
남아메리카/
카리브연안
265 12 54.1 298 59 30.7
동남아시아 242 54 850.5 286 458 427.4
서태평양지역 375 36 273.1 381 48 1,199.8
개도국 563 10 2.8 577 6 40.8
총계 1,848 692 1,336 2,078 601 1,851
                                                      '기후변화와 건강.위해성 그리고 대응' 2003, 세계보건기구(WHO) 경고
앞서 예로 든 네델란드 헤이그의 유엔 기후변화 회의장에서 일어난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한다. 2주일에 걸친 회의가 끝나가는데도 특별한 성과를 보이지 않자 회의 마지막 날에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경고액션을 전개했다. 작은 트럭 위에 대형스피커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회의장이 떠나갈 정도의 싸이렌을 울려댄 것이다. ‘기후경고’라고 불린 이 시위는 2시간여 계속되어 모든 정부대표단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린피스는 경찰에 의해 쉽게 제지당할 것을 예상하여 트럭적재함을 쇠창살로 아예 봉해버렸고 자동차 키를 빼돌려 경찰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기후경고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당신들 정부대표단은 2주일 동안 도대체 무슨 성과를 냈는가? 기후협상은 다름 아닌 돈거래일 뿐이다.’


최예용 choiyy@kfem.or.kr
(사)시민환경연구소 기획실장

기후변화협약은 이제 생존의 조건이다

기후협약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세계환경정상회의에서 발의됐다. 이 협약은 2년뒤인 1994년에 발효되었고 구체적인 지구온난화물질 감축을 위한 협상이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당사국총회라고 부른다. 1997년 일본의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산업선진국들을 중심으로 1990년도 배출량 기준으로 5.5퍼센트를 2012년까지 감축하자는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져 이를 교토의정서라 부른다. 2001년 7월 독일의 본에서 열린 6차 당사국총회는 전년 11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회의의 연장회의로 이 자리에서 참가국들은 미국을 제외하고 남은 나라들끼리 교토의정서을 비준키로 의견을 모았고 그 해 12월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열린 7차 회의에서 세부협상을 마무리지었다. 문제는 러시아의 비준으로 교토의정서가 강제력을 갖는 국제법으로서 기능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과학자들과 주요 국제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물질 총배출량의 60퍼센트를 빠른 시일 내에 감축해야 지구기후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교토의정서의 합의내용을 신속하게 지키지 못하는 동안 기후오염물질배출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비 선진국들의 배출량은 평균 6퍼센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 항공산업의 배출량은 40퍼센트 증가했다. 동구유럽은 사회변화로 40퍼센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세계는 한국과 중국 등 현재 이산화탄소를 주도적으로 배출하는 나라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는 2차 감축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모에서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배출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1차 감축대상에서는 빠졌지만 이제 더 이상 선진국책임론을 거론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 3차 대상에나 포함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기후문제와 관련한 입장의 전부이다. 국내적으로는 기후물질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후문제와 관련 한국이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2차 감축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직접 챙겨야 한다. 국무회의를 통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기업과 국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기후문제는 에너지개혁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기후위기는 친환경 사회로 가는 중요한 기회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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