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옆에 살다 암 걸린 주민들

고리핵발전소 단지 ⓒ함께사는길 이성수
 
80년대 말에 전국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한 무렵, 1986년 4월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핵무기에 대한 위험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핵발전소 역시 핵무기와 같이 상당한 살상력과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하고 그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내에도 핵발전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편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은 핵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변화를 이미 생활에서 직접 체험을 하고 있었다. 고리의 경우 인근 해역에서 어종이 변해 어획량이 줄어들고, 미역 양식을 하고 있는 어민들의 경우 양식장에서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은 질병들이 발생해 한국전력(당시 사업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일부는 보상금도 지급 받은 터였다. 
 
그러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서 지역의 변화를 단지 보상의 차원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규명하고, 주민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주민들에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생긴 데에는 1988년과 1989년에 발생한 고리 핵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건과 영광 핵발전소 지역의 무뇌아 사산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들로 고리와 영광 지역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대국민 발표(1989년 8월)와 국정감사(1989년 9월)를 통해 핵발전소의 가동이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미치는 건강상의 영향을 평가하고 인과관계를 규명하기로 약속을 해야만 했다.  
 
정부의 대국민 발표에 따라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가 진행됐다. 1991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약 19년 2개월에 걸쳐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 1만1367명과 대조지역 주민 2만4809명의 암 발생 상태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난 2011년 12월에 발표되었다.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2011,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핵발전소 주변지역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원거리 대조지역 여성에 비해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의 경우에도 주변지역 여성의 발병률이 원거리 대조지역 여성보다 1.5배 높았다. 그러나 보고서의 최종 결과에는 핵발전소와 주변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 위험도의 인과관계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명시되었다.  
 

소송의 시작, 균도네 가족

 
균도는 1급 발달장애인이다. 균도 아버지인 이진섭 씨는 2011년 직장암(대장암)을 발견했다. 2012년 2월에는 균도 어머니에게서 갑상선암이 발견되었다. 앞서 균도의 외할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고 위 절제 수술을 했다. 모두 고리핵발전소 인근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처음에 이진섭 씨는 “우리 가족의 불행”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12월 서울대학교 원자력의학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접하게 되고, 고리핵발전소의 ‘짝퉁’ 부품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쩌면 우리가족의 불행이 핵발전소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환경연합의 전 사무처장이자 당시 부산녹색당의 대표였던 구자상 씨의 설득으로 2012년 7월, 균도네 가족은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은 당시 부산환경연합의 감사였던 변영철 변호사가 맡았다. 
 
환경피해 보상 소송에서 대개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한다. 즉 피해사실이 특정 기업에서 유발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를 피해자들이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피해사실의 인과관계를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해명할 수 없는 분야도 있고 증명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경오염 유발 기업이 피해자보다 기술경제적으로 원인조사에 용이하고 은폐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특히나 핵 발전 사업의 경우 국책사업과 영업비밀 보호라는 명분으로 그동안 최소한의 운영 정보조차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균도네 가족이 피해사실을 한수원의 책임이라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균도네 가족은 소송을 시작하며 피해사실의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니라 환경오염을 유발시킨 기업에 묻는 문화가 시작되길 기대했다. 즉 핵발전소의 운영이 지역주민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수원이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균도네 소송에서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의 역학조사 보고서가 중요 증거로 채택되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민사2부 최호식 판사는 2014년 10월 “한수원은 원고 박금선 씨에게 1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균도네 가족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보고서를 근거로 균도 어머니인 박금선 씨의 갑상선암 발병에 대해 한수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업의 운영이 지역주민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입증책임을 요구했다. 그것이 무해하다는 증명을 하지 못하는 한 기업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사회형평의 관념에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균도네 소송의 1심 재판 결과는 핵발전소의 운영으로 인한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일 뿐만 아니라 한수원이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반증의 책임을 요구하고, 이러한 법의 적용을 받아들인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618명의 갑상선암 피해자들

 
지난 2017년 10월 11일 환경연합과 갑상선암 피해 주민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균도네 소송 1심 판결 직후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균도네 소송 결과와 갑상선암 공동 소송을 알리는 설명회가 각 핵발전소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약 2개월 동안 301명의 갑상선암 피해자들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균도네 소송을 이끌었던 법무법인 민심(대표 변영철)과 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민변 소속의 변호사들이 모여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16일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은 갑상선암 피해 공동소송의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 제출 이후 소송인단 추가모집으로 현재 618명의 갑상선암 피해자들과 그 가족 1898명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공동소송은 지난해 3월 9번째 변론이 진행된 후 소강상태에 있다. 재판부에서 선행사건인 균도네 소송 항소심 결과를 지켜본 후 재판을 속개하자는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12일은 균도네 소송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판결 선고를 하루 앞둔 12월 11일 변론재개를 알려왔다. 이는 판결선고를 앞두고 균도네 소송 변호인단이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한수원은 일관되게 핵발전소의 방사성물질 외부 방출이 주민 갑상선암 발병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신들은 법적 허용범위 내에서 방사성폐기물을 배출하였고, 선량한도 역시 허용범위를 준수해왔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그러나 균도네 소송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리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이 1978년과 1979년에 ‘선량한도’를 초과해 피폭당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한국전력은 핵발전소의 기체 및 액체 방사성폐기물 배출에 따른 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내부 장기 피폭을 조사하고 보고서 ‘고리1호기 환경방사능 종합평가(1980. 9.)’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79년 유아의 액체 방사성폐기물에 의한 내부 장기 피폭은 29.6mrem/yr(갑상선), 기체 방사성폐기물로의 의한 내부 장기 피폭은 10.29 mrem/yr(갑상선)으로 나타났다. 1977년 조사에서는 대장에서 피폭선량을 조사했는데 유아의 액체 방사성폐기물과 기체 방사성 폐기물에 의한 내부 장기 피폭은 각각 0.451 mrem/yr, 0.000163 mrem/yr이었다. 장기의 민감도를 고려한다 해도 내부 장기 피폭이 급격히 증가했다. 성인이나 소아의 경우 수치상의 차이는 있지만 피폭량이 증가한 것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당시 우리나라는 선량한도에 대한 별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고리1호기 환경방사능 종합평가(1980. 9.)’ 보고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 NRC(원자력규제위원회)의 규정을 적용해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액체 방사성 폐기물 방출에 따른 경수로 한 호기당 내부 장기 선량한도는 연간 10mrems을 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방사성물질로 인한 내부 장기 피폭선량은 경수로 한 호기당 연간 15mrems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1979년 당시 고리핵발전소의 기체액체 방사성물질 배출로 인한 내부피폭은 모두 이 기준을 위반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공동소송의 원고 618명 중 74명이 과다 피폭이 발생한 1979년에 고리핵발전소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판결을 앞둔 균도네 소송의 변론이 재개되었고, 오는 3월 20일 12번째 변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질 수도 져서도 안 되는 소송

 
균도네 소송과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의 공동소송을 맡고 있는 변영철 변호사는 지난 2월 12일 부산에서 열린 ‘핵발전소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자 소송의 쟁점과 의의’ 강연에서 이 소송을 두고 “질 수 없는 재판”이라 했다. 이는 소송의 진행과정에서 한수원의 책임이 명확해지고 있고, 상식에 기초한 판결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한수원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 “져서는 안 되는 소송”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간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면서 값싼 전기를 사용하고, 소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균도네 소송과 공동소송을 통해 우리사회가 이들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재판 결과를 통해 우리 모두의 양심이 다시 빛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부산지역 선임활동가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