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 부안 주민투표,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부안 주민투표,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지난 4일 산업자원부가 ‘부안 사태’와 ‘주민투표’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 발
표한 이후 적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어왔던 부안 핵폐기장 찬반주민투표가 지난 14일 예정대
로 치러졌다. 총 유권자 5만2108명, 총 3만7540명이 투표한 주민투표는 72퍼센트의 투표율을 기
록, 찬성 2146명, 반대 3만4472명으로 최종 집계돼 주민들의 반대의사가 92퍼센트에 달하는 것으
로 공식 확인됐다.

재투표 실시돼도 투표결과 뒤바뀔 가능성 없어
14일 부안 핵폐기장 찬반주민투표 결과 압도적인 반대의사가 높게 나타나 부안 지역에 핵폐기장
을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무산될 조짐이다.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정부와 산업자원부
는 공식적인 수용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통해 부안 주민들의 의사를 보여
준 ‘정치적 효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안대책위의 이현민 정책실장은 “부안 핵폐기장 반대 입장이 주민투표 결과를 통해 명백히 드
러났고 투표 결과가 법률적 효력은 없지만 정치적 의미를 갖기에 충분한 만큼 이에 대한 수용 여
부는 여전히 정부의 몫”이라고 책임을 강조했다.
한편 지난 10일 핵폐기장 유치 찬성 대규모 집회와 ‘주민투표 불가’를 주장하면서 공무원들까
지 앞세우기까지 한 부안군은 이날 주민투표에 대해 “강제적으로 주민들이 동원돼 실시된 비민
주적 투표”라며 투표자체를 부인했다. 투표 당일 위도에서는 위도발전협의회의 정영복 회장과
찬성측 주민 20여명이 오전 6시부터 진리 마을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를 점거, 투표를 저지하는 상
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경호 속에서 차분하게 이루어진 주민투표는 40여 명의 변
호사, 700여 명의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인사들이 투·개표 자원 활동에 참여해 공정성과 투명성
을 확보했다. 또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의 주관 하에 주민투표 실시 이전 읍·면 합동 찬반토론
회와 군 전체 합동토론회를 갖는 등 총 14회에 걸친 토론회를 실시해 투표에 대한 명분도 이미
확보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정부가 주민투표를 다시 실시한다 하더라도, 이는 “정부와 전라북도, 부안
군에 대한 부안 주민들의 ‘불신’과 ‘냉소’만을 키우는 일”이라고 대책위의 이현민 실장은
말한다. 때문에 법적 효력이 있는 또다른 투표가 실시된다 해도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을 것
으로 보인다.

자발적 주민 참여,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자체 찬반주민투표가 성공리에 끝난 뒤 부안 주민들은 주민투표의 결과를 떠나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에 대해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군수
한 사람만의 의견이 모든 부안 주민들의 의견일 수는 없다”며 부안읍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박미
숙 씨는 “찬반주민투표를 통해 의사를 개진하게 돼 속이 다 후련하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
다.
주민투표일인 14일 당일, 부안의 각 읍·면 주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냈다. 부안 각 지역
의 청년회와 개인택시 조합 자원봉사자들은 투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차량을 무료로 운행해 유
권자를 실어 날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마을주민 자원봉사자들은 직접 가구를 방문,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돕기도 했다.
부안 주민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대책위의 이 실장은 “지난 여름부터 고통을
함께 해 온 주민들이 서로를 알고 실천해 만든 자생적 문화이자 새로운 부안 공동체를 향한 문화
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부안 주민들 스스로가 갈등과 아픔을 함께 치유하고 부안 공
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부안 공동체의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 실장은 “지금까지의 공동체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면 지금 부안은 아래로부터 주민적 합의
에 기초해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주민투표가 그런 셈이다.
부안 주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큰 상황에서 이를 주민들과 함께 치유하기
위해 앞으로의 대책위 활동 방향도 이러한 기조가 될 것이라고 이 실장은 덧붙였다. 앞으로 부안
대책위는 대책위의 향후 활동과 대책위의 존속 여부를 놓고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대책위가 제시하고 있는 향후 대책위의 모습은 △부안 발전방향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고민
하는 부안발전포럼(가칭)이나 지속가능한 부안발전위원회(가칭)로의 전환 △대책위는 그대로 존
속하면서 새로운 기구를 결성 병행하여 운영해 나갈 것인가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주민투표 일정을 마친 주민투표관리위원회(이하 주관위)는 투표결과의 정부 수용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당분간 존속할 것으로 보인다. 주관위의 사무처장인 하승수 변호사는 “찬반주민투
표 결과가 공시된 만큼 정부가 앞으로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할 수 있도록 주관위 차원에서 최선
을 다할 것”이라고 부안 군민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정부, 어리석은 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핵폐기장 부지선정 문제가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당초 정부는 오는 6월과 7월 「주민투표
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투표를 실시, 그 결과에 따르겠다고 입장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배
경에는 ‘반대측의 거센 분위기가 수그러들고 찬반토론이 차분하게 진행되면 찬성여론이 높아지
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자체 찬반주민투표 실시가 끝난 지금, 부안 주민들
의 의사가 명확히 드러난 만큼 이제 그런 기대는 할 수 없게 됐다.
부안대책위의 고영조 대변인은 “부안 주민들이 독자적인 주민투표를 강행하게 된 책임은 정부측
에 있기에 재투표를 실시하는 것보다 정부가 솔선해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의 김인경 교무도 “군민을 위한 군민에 의한 군민의 정치를 이제서
야 부안에서 실현하게 됐다”며 “부안 군민의 힘으로 우리나라의 새역사를 시작한 만큼 결과 수
용은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주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이
확증된 상황에서 정부가 재투표를 한다해도 정부는 정책 실패를 거듭 공식 입증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찬성측은 앞으로도 홍보활동과 함께 오는 9월 이후 다시 투표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
혀 찬반쪽 사이의 마찰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전라북도와 부안군은 주민투표가 있
은 14일 “핵폐기장 유치를 위한 예비신청을 받는 오는 9월 15일 이후 주민투표를 다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민투표는 7개월여 동안 끌어온 부안 사태의 민심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다. 지난해 7월 부안군이 정부에 핵폐기장 부지 유치신청을 하면서 불거진 부안 사태의 가장 큰
쟁점은 정부나 부안군이 주민의 뜻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부안대책위는 주
민투표 다음날인 15일 ‘부안선언’을 통해 “이번 주민투표로 통치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자치시
대의 서막을 열었다”며 “정부는 핵폐기장 추진계획을 철회해 군민들을 생업에 복귀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관위의 박원순 위원장은 “이제 정책의 차원을 넘어 주민의 이해와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려 준 이번 주민투표를 계기로 정부는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ㅣ 부안 주민투표관리 자원봉사자 이오철 씨

부안 핵폐기장 찬반주민투표가 실시됐던 지난 2월 14일. 주민투표를 성공으로 이끈 데에는 자원
봉사자들의 몫도 매우 컸다. 서울에서 7년간 교직생활을 하다 요양차 고향인 부안에 내려와 주민
투표관리 자원봉사를 자청했던 이오철 씨. 이씨를 만나 부안 주민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참여
정치의 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 주민투표가 성공리에 끝났다. 소감은
주민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부안 주민들은 주민 자신들이 이룩해 낸 성과에 뿌듯해 하고 있다.
이제 어떠한 큰 어려움이 생긴다 하더라도 주민들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힘이 생겼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례 드문 주민투표를 이루어 냈다는 데에도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 이제 주민
들 반대의 목소리가 투표결과로 확인된 만큼 하루 빨리 백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주민투표 준비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는데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로 주민투표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
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지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을 청년회는 물론 부녀회, 대학생들
까지 나서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직접 발로 뛰어가며 선거공고와 홍보에 직접 나섰
다.

- 주민들의 주민투표관리 자원봉사에 대한 열의도 매우 높았다고 들었다
주민들 스스로가 참여한 자원활동은 누가 지시하고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해 이루어졌다. 또한 주민들 서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상의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해 일이 순조
롭게 진행됐다. 더욱이 부안 지역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지역 주민이 자원활동조직을 꾸려 운
영했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했다. 지역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부안 주민들의 결실이 주
민투표를 계기로 이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백지훈 기자 backjh@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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