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시 '하루' [볕뉘읽기 105]

하루

김용택

강이 있다.
건너면 산이다.
산이 시작되는 곳,
밤나무들이 서 있다.
감나무가 있고, 올라가면 묵은 밭이다.
칡들이 어린 팽나무를 타고 오른다.
묵은 밭 위에는 오래된 오동나무 위에 참나무 옆에
참나무 위에 산벚나무 위에 바위 옆에 도리깨나무
옆과 위에 또 아래 참나무 위에 소나무
그리고 소나무들이 다시 모여 있다.
바람이 불고
새들이 바람 속을 날아다녔다.
 
- 월간 시전문지 『유심』  2015년 7월호
 
 
동양과 서양의 언어나 생활습관 차이를 살펴보는 『동과 서』라는 프로그램을 EBS 채널에서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습관의 차이를 소개하는데, 주로 얼굴이나 상반신 중심으로 찍는 서양인들과 달리 동양인들은 인물 못지않게 배경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인간의 얼굴이나 몸이 차지하는 사진의 공간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풍경이 차지하는 공간이 돋보일 정도로 사진을 찍는 마음가짐 속에는 어떤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 인듯합니다. 서양에서 오랜 세월 동안 그림의 대상은 신들의 모습이나 역사적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가문의 조상들이었습니다. 자연의 풍경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근대 이후부터입니다. 그런데 동양화에서는 전통적으로 화폭을 차지하는 것이 대부분 산과 강입니다. 인간은 등장하더라도 미미한 자취를 보여줄 따름이죠. 이런 결과를 보며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자연을 근원으로 섬기고 인간을 자연의 작은 부분으로 여기는 속내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하루’에도 인간의 자취는 배제되어 있거나 미미할 따름입니다. 그저 “묵은 밭” 정도가 인간의 흔적을 드러낼 뿐, 그가 수십 년의 세월을 곁에서 살아온 섬진강과 강 너머의 산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시인의 하루는 철저하게 자연을 향해서 나아가는 정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들이 가족과 이웃처럼 가득 시인을 에워싸고 있는 산으로 나아가며 시인은 무슨 상념에 잠기고 있을까요? 이렇게 자연에 둘러싸인, 이렇게 자연으로 나아가는 삶이 온전한 삶이라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하루를 자연에 바치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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