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러 가요

별꽃
 
식물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 도감도 제대로 볼 줄 몰라 이름을 모르는 식물이 있으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봐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많은 식물의 이름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야생에서 직접 보고 싶어지는 식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주로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그랬습니다. 변산바람꽃을 비롯하여 복수초, 노루귀, 얼레지, 깽깽이풀, 처녀치마 같은 주로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이 많았습니다. 귀한 인연을 이어가는 중인 ‘새 사진 찍는 스님’,포천의 도연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아직 야생에서 만나지 못한 꽃’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장 꽃을 보러 가자!”고 하셔서 우리는 벌떡 일어서 그대로 달려나갔습니다. 한참을 차로 달려 간 곳은 포천과 화천 경계의 광덕산이었습니다. 이른 봄이라 높은 산 여기저기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었던지라 기대가 컸습니다. ‘복수초’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였습니다. 늦은 봄 다른 지역의 복수초는 본 적 있지만 복수초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의 이미지가 있는 터라 광덕산 복수초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눈 속에서 꽃이 피다니, 얼마나 극적입니까? 
 
곳곳에 눈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일반적으로 복수초가 피어나는 시기여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생각했던 ‘눈 속에 핀 복수초’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간혹 눈이 주변에 가까이 있는 개체는 꽃이 개화되지 않은 상태로 힘이 없거나, 꽃이 피어있는 개체의 주변에는 넓게 눈이 녹아 있는 모습뿐이었습니다. ‘눈 속에 피는 복수초’의 이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사실 촬영자들이 만든 ‘인위적인 작품’이 다수고 실제 자연 속에서 ‘눈 속에 핀 복수초’는 흔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인위적인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극적 효과를 목적으로 주변 눈을 모아 복수초가 피어있는 곳에 뿌린 후 사진을 찍고, 눈이 없는 경우 준비해 온 얼음을 갈아 눈 효과를 내기도 한답니다. 참 정성입니다. 근데 그럴 정성도 부족한 이는 그냥 꽃을 꺾어서 녹지 않은 눈에 꼽아 놓은 후 사진에 담는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눈보다 반짝이는 모습을 담기 위해 소금을 눈 대신 뿌려 사진을 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른 봄 소식을 알려주었던 눈을 이겨내고 꽃을 피웠던 복수초 사진 중 일부는 이런 연출에 의해 담겨졌던 것입니다. 
 
복수초
 
또 언젠가 새 사진에 푹 빠진 분의 사진 찍는 법에 관해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이는 동백나무 꽃과 함께 동박새의 모습을 담으려고 동백꽃 화분과 새를 구입해서 비닐하우스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다들 그분을 비웃었지만, 차라리 그게 ‘눈 속의 복수초’를 연출하는 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힘들게 그 험하고 먼 산까지 가서 눈을 뿌리는 연출까지하며 사진을 담아야 할까요. 그냥 복수초 화분 하나 사서 내가 찍고 싶은대로 마음껏 연출 사진을 찍는다면 사람도, 자연도 고생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 때의 광덕산행 이후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다시 도연스님과 찾아간 광덕산에는 복수초 이외에도 모데미풀, 너도바람꽃,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앉은부채 등 봄 꽃을 대표하는 식물이 가득했습니다. 광덕산은 이제 봄만 되면 사진을 담는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멋진 사진을 위해 주변 정리를 하느라 식물을 감싸던 낙엽은 치워지고, 볼품 없고 연약한 개체는 잘라버리고 어울리지 않게 이끼를 까는 이들도 있습니다. 야생화로 유명한 풍도나, 천마산 등 야생화로 유명한 지역이면 어김없이 비슷한 모습입니다. 
 
식물 공부를 하기 전 얘깁니다. 우연히 숲 해설을 들으며 산행을 하게 됐습니다. 숲길을 걷다 처음 보는 화려한 꽃을 보았고 ‘딱 한 개체만 고고하게 핀 꽃’을 보며 내심 ‘필시 저건 해설을 위해 저이가 심어 둔 걸 거야!’ 지레 짐작했습니다. 이듬해 동네 뒷산 약수터를 가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연천 산행길, 숲에서 딱 한 개체만 보았던 그 꽃이 뒷산 가득 피어있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식물에 관심이 있다면 다 알만한 꽃인 ‘큰까치수염’이었습니다. 큰까치수염이 피었던 약수터는 늘 다녔던 곳이었지만 그때까지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큰 녀석이 말이죠.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카메라를 사들고 마을 뒷산을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늘 봄 꽃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봄에 지인들과 동네 뒷산을 한차례씩 오르는 것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큰까치수염
 
먼 곳에서 피는 봄꽃에 대한 그리움도 작지 않았습니다. 충남 예산에서 만났던 변산바람꽃이며, 광덕산의 복수초가 가까이 피어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께서 ‘봄에 동네 뒷산에서 피는 노란 꽃이 복수초 아니냐?’고 하시고 다른 동네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5년 이상 봄마다 동네 뒷산에서 복수초를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결과적으로 찾지 못했습니다. ‘아, 다른 꽃을 착각하셨던 거구나. 노란 꽃이면 양지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죠. 그러다 2019년 조사지역을 운 좋게 우리 동네 뒷산으로 배정받게 됐습니다. 조사를 진행하던 중 복수초 이야기가 또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누구나 전화 기능이 있는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덕에 동네 분이 찍었다는 복수초 사진을 어머니께서 보여 주시는 겁니다. “이럴수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는데요.” 제 말에 어머니가 “같이 가보자!” 하셔서 손에 이끌려 가보니 ‘정말 이럴수가!’ 20년 가까이 그렇게 지나 다녔던 곳에 복수초가 있었습니다. 한두 개체도 아니고 무리로 피어있었습니다. 
 
또 봄이 옵니다. 2월부터 남쪽에서 꽃 소식을 들으면 안달이 납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있던 1월 어느 날, 담 아래에서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별꽃’을 봅니다. 볕이 좋고 차가운 바람만 막아주면 12월이고 1월이고 낮은 자세로 잘도 꽃 피우는 녀석입니다. 별꽃을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매년 먼 곳 숲 속의 화려한 봄꽃이 그리워 조바심 치며 달려가는 제 등을 동네 뒷산에 피는 봄꽃들이 바라보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많은 곳에서 꽃이 피고, 꽃을 보러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집 담벼락 아래, 우리 동네 뒷산에 보물들이 숨어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가까이 귀한 것들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끼고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 김경훈 DMZ자연연구소장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