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물과 수련

물과 수련

 

채호기


새벽에 물가에 가는 것은 물의 입술에 키스하기 위해서이다.
안개는 나체를 가볍게 덮고 있는 물의 이불이며
입술을 가까이 했을 때 뺨에 코에
예민한 솜털에 닿는 물의 입김은
氣化하는 저 흰 수련의 향기이다.

 

물은 밤에 우울한 水深이었다가 새벽의 첫 빛이
닿는 순간 육체가 된다. 쓸쓸함의 육체!
쓸쓸함의 입술에 닿는 희미하게 망설이며
떨며 반짝이는 빛.

 

안개가 걷히고 소리도 없이 어느새
물기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저 수련은
밤새 물방울로 빚은 물의 꽃.

 

물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적신다.

 

물이 밤새 휘갈긴 수련을 읽는다.

 

 

- 시집 『수련』(문학과지성사, 2002)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내가 사는 방학동에는 ‘발바닥 공원’이라 불리는 조그만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공원에는 조그만 연못도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 그 연못에는 노란 수련꽃이 만개한 상태다. 수련은 별로 깨끗하지 못한 연못의 수질을 지켜주는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역설적인 존재조건으로 말미암아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더러운 것을 빨아먹으면서 수질을 정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피워내는 연꽃의 속성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인간의 속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채호기 시인이 수련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상념은 얼핏 연꽃의 다른 속성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수련이라기보다 호수 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련의 향기”를 “물의 입김”이라고 받아들이는 시선에서 그런 느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물은 밤에 우울한 水深(수심)이었다가 새벽의 첫 빛이/닿는 순간 육체가 된다”라는 표현에서 의미심장한 변화를 감지할 수가 있다. 호수 물을 ‘육체’로 만들어주는 “새벽의 첫 빛”이 무엇인지를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시의 다음 내용에서 “수련은 밤새 물방울로 빚은 물의 꽃”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 우리는 “새벽의 첫 빛”이 “수련”임을 그리고 그것이 물의 “육체”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호수 물이나 수련 중에 어떤 것의 존재 가치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는 호수와 수련의 육화된 관계가 더욱 절실한 존재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은 바로 ‘상생(相生)’의 이치를 실현하는 것이리라. 호수와 수련의 관계에서 ‘새벽’이라는 시간대를 특히 주목하는 것도 가장 순수하고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정화시키고 환경을 살리는 방법도 이 시에 나타난 호수 물과 수련의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단지 물이 정화되기 위해서 수련이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과 수련은 서로 지체를 이루는 한 몸으로 피어나는 관계를 생명의 질서로 이룩해내는 것이다. 호수와 수련의 관계처럼 강과 인간의 관계도 같아지기를 갈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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