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13] 이형기의 시 「죽지 않는 도시」_ 이경호

이 도시의 시민들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어제 분명히 죽었는데도
오늘은 또 거뜬히 살아나서
조간을 펼쳐든 스트랄드브라그* 씨의 아침 식탁
그것은 위대한 생명공학의 승리
인공합성의 디엔에이 주사 한 대가
시민들의 영생불사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어진 채
오토바이의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대는 젊은 폭주족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수술한 배를 그냥 덮어버린 노인이
내기 장기를 두다가 싸운다
아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장사를 망치고 죽을 지경인 장의사 주인도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파리를 날린다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계산은
전설이 되어버린 도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누구도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
젊어도 늙고
늙어도 늙고
태어날 때부터 이미 폭삭 늙어서
온통 노욕과 고집불통만 칡넝쿨처럼 칭칭
무성하게 뻗어난 도시
실연한 백발의 노처녀가 드디어 목을 맨다
그러나 결코 죽을 수는 없는
차가운 디엔에이의 위력
스스로 개발한 첨단의 생명공학이
죽음에의 길마저 차단해버린 문명의 막바지에서
시민들의 소망은 하나밖에 없다
아 죽고 싶다

  -『죽지 않는 도시』(고려원, 1994) 중에서
* 스트랄드브라그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영생불사하는 종족의 이름이다
‘파괴공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있다. 몇 년 전에 이태원의 외국인아파트가 발파해체되는 광경이 텔레비전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외국에서는 흔하게 시도되는 이 공법은 주위 환경에 피해를 미치지 않고 건물을 해체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언제부터인가 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쓸모 있는 건물들을 무너뜨리는 일에 그 기술이 자주 사용되는 것을 목도하곤 한다. 그런데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없애버리는 일의 문제점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함부로 변경하는 일의 부작용에 비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것 중의 가장 으뜸가는 것은 아마도 목숨일 것이다. 생명은 타고나는 것이므로 그것을 함부로 끊거나 연장하려고 하는 일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자연에 큰 위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욕망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그 욕망이 삶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형기 시인의 작품은 바로 그러한 집착의 부작용을 희화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이채롭다. 무엇보다도 “생명공학의 승리”가 수명 연장의 가능성을 삶의 고통을 연장하는 일로 바꾸어놓는 충격적인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 보이고 있다. 모든 자연의 생명이 소중한 까닭은 그것이 일정한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는 운명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그것들은 어린 상태에서 자라나 젊음을 구가하고는 마침내 시들어 사라지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다. 그렇게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한 삶으로 받아들여지며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일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진국들은 수명 연장의 혜택(?)으로 ‘노인국가’가 되어가고 사회복지비용의 증가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그런 국가유형에 소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수명 연장의 집착이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경시하게 만들고 마침내 “시민들의 소망은 하나밖에 없다 / 아 죽고 싶다”는 끔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결과가 예상될 때 어쩌면 인간의 생명에 대한 ‘파괴공학’의 기술도 도입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호 leekh724@hanmail.net
문학평론가, 『문학의 현기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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