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읽기 114] 정현종의 시 「깊은 흙」

 
흙길이었을 때 언덕길은
깊고 깊었다.
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
깊음이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
얄팍한 아스팔트.
 
짐승스런 편리
사람다운 불편.
 
깊은 자연
얕은 문명.
 
- 시집 『한 꽃송이』(1992, 문학과지성사) 중에서
 
 
화장품을 사용할 때마다 제조회사에서 원료비로 들어가는 비용은 제품 가격의 몇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실속 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반성해볼 때가 있습니다. 가격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광고비와 유통비용인데 그 중에는 용기 비용도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 번 사용하고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화장품 병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한 번 쓰고 버릴 포장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됩니다. 정현종 시인이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화장품 용기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편리하지만 지속적인 가치를 지닐 수는 없는 것, 심지어 때로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나쁜 내용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문명의 속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달변의 말을 들려주지만 속은 텅 비었거나 거짓으로 가득한 사기꾼의 처세술이 화장품 병이요, 문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이미지’나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실체가 없거나 진실의 존재를 부정하는 허구의 이미지와 같은 것입니다. 불교에서 우리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환(幻)’이나 영어의 판타지 같은 것도 같은 종류에 속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화려하면서도 거품 같은 껍데기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는 속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문명을 대표하는 아스팔트 포장도 같은 것입니다. 겉은 매끈하고 편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장품 병보다 더 나쁜 문명의 포장에 속하는 까닭은 속의 흙을 감추어버릴 뿐만 아니라 흙의 정기와 영혼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가면을 쓴 얼굴과 소통할 수 없듯이 아스팔트로 뒤덮인 대지와 인간은 소통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숨과 영혼은 대지가 밀어올리는 숨과 영혼과 소통하는 탄력을 흙길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흙길을 갈 때/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한 숟가락 흙 속에」) 강조하기도 합니다. 대지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게 뿜어져 나오는 초록의 계절에 숲길을 걸으면서 “껍데기는 가라”고 힘차게 외치던 어느 민중시인의 시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됩니다.
 

글 /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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