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읽기 28] 머나먼 돌멩이

머나먼 돌멩이

이덕규

흘러가는 뭉게구름이라도 한번 베어보겠다는 듯이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서
수수억 년 벼르고 벼르던 예각의
날 선 돌멩이 하나가 한순간, 새카만 계곡 아래 흐르는 물속으로 투신하는 걸 보았네

여기서부터 다시 멀고 험하다네

거센 물살에 떠밀려 치고받히며 만신창이로 구르고 구르다가
읍내 개울 옆 순댓국밥집 마당에서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닳고 닳은 몽돌까지

—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2009)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모든 경전의 첫 부분에는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의 탄생에 대한 비밀이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삶의 중요한 
비밀이 하나 더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비밀이란 바로 시간의 운행질서다. 
삼라만상의 시작에서 인간의 탄생은 대체로 마지막 부분에 
자리 잡고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 그러한 운행질서의 비밀인 셈이다. 
시간의 순서나 크기에서 인간의 삶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는 사실을 경전이 첫 부분에 기록해놓은 이치가 
이 시대에 새삼스러운 까닭은 인간이 그러한 시간의 질서를 거스르는 
문명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의 속도감이야말로 삼라만상을 이끄는 
시간의 운행질서를 파괴하고 위반하는 주범이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덕규 시인이 ‘돌멩이’에게 부려놓는 시간에 대한 
명상이야말로 경전의 시간질서를 되새기고 현대문명을 반성하는 역할을 
참신하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절벽 꼭대기에서/수수억 년” 매달려있던 “돌멩이 하나가 한순간, 
새카만 계곡 아래 흐르는 물속으로 투신하는” 모양이야말로 
인간의 짧은 생애와 비교될 만한 연상효과를 갖는다. 
그런데 ‘돌멩이’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거센 물살에 떠밀려 치고받히며 만신창이로 구르”는 과정을 겪어내고
 마침내는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닳고 닳은 몽돌”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시달린 과정 끝에 맞이하는 삶의 결과가 
보잘 것 없는 겸손과 봉사의 자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시인의 상상력은 
‘돌멩이’의 기나긴 세월에 비해 한없이 짧은 인간의 삶이 추구하는 
오만과 이기심을 반성하게 하는 효과도 만들어낸다. 
인류보다 크고 장구한 자연의 존재가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인류에게 봉사하는 
이 아름답고 절실한 장면이야말로 지극히 종교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큰 존재가 오히려 작은 존재를 섬기는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우리 인간들은 계속 외면하고 살아가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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