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42] 한 사람의 어떤 마음

 
집을 정리하다 오래된 그림을 보관한 상자를 발견했다. 4대강사업을 반대할 당시 그린 그림을 다시 꺼내 보았다. 그림 안에 강은 흐르고 싶다는 문구가 생경하게 다가온다.
 
강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고 많은 동식물은 생명수를 잃고 죽어간다. 내가 그린 그림 한 장으로 세상은 눈곱만큼도 달라지지 못하는 걸 알면서 오늘도 난 무언가를 반대하는 그림을 그리고 살려내고 싶다는 문구를 새겨 넣는다.
 
대단한 환경운동가도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도 아닌데 나는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염세적인 성향은 그대로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가 저절로 인간을 찾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변화는 어렵고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땐 아름다운 것만 화폭에 담을 줄 알았다. 그게 그림이고 예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나 정물 혹은 미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내게 영감을 주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다.
 
동물원에서 신음하는 동물, 가정 학대를 당한 아동, 과도한 노동에 지친 사람, 죽어가는 강과 잘려나가는 나무를 보며 나는 붓을 드는 이유를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약고 게으른 사람일지 모른다. 현장에서 고통의 순간을 묵도하고 행동하는 일이 귀찮고 괴로워 작업대에 앉아 붓을 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마음을 변명하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본 고통과 현실을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예술가에게 어떤 의무나 책임이 있어서가 아니다. 지구 한 편을 빌려 살아가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가지는 ‘어떤 마음이’ 있다고 말이다.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자면 내가 저지른 잘못을 위해 붓을 든다고 말하고 싶다.
 
마음이 어떤 소리를 낸다고 믿고 싶다.
 
얼마 전, 동네에서 펼쳐진 지역 축제를 구경하는데 풍물패가 나와 흥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접하기 힘든 광경이라 유심히 바라봤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바라고 기원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인간적이고 흥겨웠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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