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54] 점

 
낯선 곳에 이사를 온 나는 마을을 산책하며 마을주민들과 글과 그림을 공부하는 모임을 기획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정을 붙이며 살고 싶은 마음과 아파트 관리비를 벌기 위해 생각한 강의였다. 일정 수입이 생기면 출간을 앞둔 책을 작업할 여유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기획했던 강의 일정이 늦춰지고 그사이 첫 산문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미뤄졌던 첫 강의가 시작되는 5월이 왔다. 
 
시곗바늘이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자 마을 예술창작소 유리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낯선 사람들이 내게 첫인사를 건넸다. 수강생은 전부 주부들이었고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목표였다. 나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글과 그림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수강생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었다.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일단 센터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강의를 홍보하는 문안에 강사 이름이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건넨 첫 농담이기도 했고 내가 경험 없는 강사이자 유명하지 않은 작가라는 고백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글과 그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점에서 부담감을 느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자격이 충분한지는 언제나 답 없는 질문이었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면서 적지 않은 부업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나는 모든 것에 미숙했다. 스스로 세운 교육계획안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활자에 불과했다. 아이들과 함께 떠들며 그림공부를 할 때와 많은 것이 달랐다.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경험 부족에서 오는 미숙함도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 때문에 생긴 오해가 더 컸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고 시댁과 친정이 나뉘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하교 시간에 맞춰 자신의 일상을 계획하는 여자들. 내가 안다고 생각했으나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를 나열하고 종이 위에 작은 점을 그려 보자고 했다. 아무렇게나 그려진 점을 이어 낙서를 해보자고 했다.
 
우연히 떨어진 작은 점처럼 우리는 만났다.
 
시간을 되짚어 보며 지금, 그들에게 보내는 나의 첫 문장이다.
문득 지나간 추억이 떠오른다.
이것도 코로나가 내게 준 특별한 감정 혹은 정서일지 모른다.
이제 함께 모여 공부하기 어려운 우리들. 
그때는 몰랐던, 그저 당연했던 시간 그리고 우리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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