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66] 엄마는 오늘도 김장 중

 
엄마의 절친한 친구는 같은 시장에서 배추를 파는 상인이다. 좋은 배추가 들어오거나 팔다 남은 배추가 있으면 엄마에게 갖다 주신다. 엄마는 당신이 직접 말리고 다듬은 태양초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가 시장 사람들과 나눠드신다. 나는 종종 손 큰 엄마가 노숙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 식구도 아닌 사람들’에게 왜 그런 일을 하냐고 의아해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엄마는 가족의 범위가 다소 넓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단골 정육점 청년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김치를 담가 보내시고, 병원에 입원한 친구 간병하며 담근 김치로 친구 분 자식까지 챙기신다. 사돈 어르신과 일찍 홀몸이 되신 이모의 남편 제사까지 엄마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얼마 전 상회에 들어오신 직원의 어린 아들의 밑반찬까지 챙기시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전시를 위해 그림책 원화를 포장해 전시를 담당하는 분께 보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집 앞 골목에서 그림이 담긴 가방을 건네주게 되었다. 작은 답례라며 자동차 안에서 상자에 담긴 참외를 꺼내 내게 건네 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참외 파는 분께 그림책 만드는 사람에게 줄 참외니까 상태가 가장 좋은 참외로 달라고 하셨단다. 
 
나는 이 귀한 참외를 먹었으니 먹은 값을 해야 한다.
 
가끔 강연을 가면 내 말 몇 마디가 먹을거리가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맛있는 향토음식부터 커피, 빵, 과일… 돌아가는 길에 먹을 간식부터 쌀과 각종 음식 쿠폰들까지. 나는 이 귀한 음식을 먹고 허투루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언제나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집에 돌아와 냉큼 참외 하나를 깎아 먹는데 달고 맛났다. 그림이 참외로 바뀐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의 엄마의 엄마가 살아생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쌀이 되어야 진짜 값진 거라고. 겨우 내 목구멍에 들어가는 밥을 벌고 있는 내가, 많은 사람을 위해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만드는 사람의 자식이라니. 부끄럽지만 다행이다.
 
나와 다른 가족의 의미와 범위를 생각한다.
 
입만 살아있는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 그리고 체온을 가진 사람이다.
 
엄마는 오늘도 김장 중이다. 김장철이 따로 없는 엄마에게 앉아서 일할 때 허리가 덜 아픈 의자를 사드렸다. 영양제와 반찬통도 사드렸다. 그러고 보니 엄마더러 힘내서 김치 담가 달라는 무언의 부탁일지 모르겠다. 
부디, 엄마 김치 먹고 허투루 살지 말아야할 텐데.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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